블로그 이미지
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Recent Post

theWord Bible Software

Category

주님의 다시 오심

노시로 키요지

데살로니가전서 1 10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말하니 이는 장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최근 일본에서 주님께서 공중에서 오시는 것과 지상에서 오시는 것은 같은 것이라는 가르침이 있었는데 그것은 틀렸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공중으로 오시는 것과 지상으로 오시는 것에 대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데살로니가 모임은 바울로 말미암아 생겨났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에 들어가서 3주간 밖에 전도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과 데살로니가 사람들이 바울을 박해했기 때문에 옆에 있는 도시로 피난을 했습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충분하게 말씀을 가르칠 수가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살로니가 사람들은 놀라운 믿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것에 대해 3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3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

그들의 믿음의 역사가 행동으로 드러났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성도들을 위해서 수고를 했는데 그것은 사랑의 수고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최대의 바램인 주님의 오심을 인내를 가지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믿음은 놀랍다고 생각합니다. 주 예수님이 앞으로 올 심판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실 것을 나타내는 것이 10절의 장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에서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노하심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6장에서 19장까지는 정말로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6 16,17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여기에 보면 진노의 큰 날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바로 이것이 6장에서 19장까지 진노의 큰 날로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 10절에 나와 있는 것처럼 장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이라는 말씀에서 주님의 오심에 연관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환난시대라는 것은 어린양의 진노의 큰 날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는 그 진노하심을 당하지 않고 그 진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충분한 가르침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2장부터 이 일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4 15~18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

이것은 공중으로 오심에 대한 광경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여기 말씀에 있는 그대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는 것입니다. 여기는 주님 자신이 몸소 오시는 것입니다. 주님 자신을 천사라고 기록되어있지 않습니다. 주님이 대리를 보낸다고도 되어 있지 않습니다. 일본에서 선명씨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인이라고 가르쳤습니다만 그것은 틀립니다. 16절에는 일본어 표현에서는 주님이 몸소(친히) 혼자 오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에 있어서 영광입니다. 한 나라의 왕이 우리 각자를 맞이하기 위해서 우리 각자의 집에 오는 것은 일반적으로 없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그분께서 우리를 맞이하기 위해서 친히 몸소 오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단한 일이 아닙니까! 공중에서라고 되어 있는데 18절에 의하면 주님께서 오신다는 것이 위로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 공중에서 오는 것과 지상에서 오는 것이 같다고 주장하는 그 사람의 하는 말이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환난을 통과해야 된다고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1 10절에서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주님이시기 때문에 구원받은 성도들은 환난을 통과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교회가 환난을 통과한다면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오신다고 해도 환난을 통과한다면 주님의 오심에 대한 기쁨보다도 환난을 통과한다는 것을 염려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공중에 오심에 대해서는 믿는 성도들의 소망이요, 위로입니다. 교회가 환난을 통과한다면 위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공중으로 오심과 지상으로 오심이 하나라고 하는 가르침은 잘못된 가르침입니다.

어느 영국 형제님의 간증을 들었는데 어떤 자매님이 아침에 일어나서 창문 커튼을 열 때마다 주님이 오늘 오실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한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기다리는 것은 모든 고통에 대한 위로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다시 오심은 기쁨이고, 위로고, 또한 소망인 것입니다. 공중으로 오심에 대한 가르침은 복음서에서는 한 곳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14 1절부터 몇 절에 걸쳐 공중으로 오심이 나와 있습니다. 주님께서 너희는 근심하지 말라 내가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맞으러 오겠다고 하신 그곳입니다. 그 말씀에 주님이 제자들을 맞으러 오시기 때문에 공중으로 오심은 믿는 자들을 맞으러 오시는 것이 분명합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 주님의 오심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와 마가는 주님의 지상으로 오심에 대한 기록입니다. 특히 지상으로 오심에 대한 그 일은 이스라엘과 관련이 됩니다. 우리는 다니엘서 9장에 나오는 70이레에 대한 가르침에서 69이레가 이미 지났고 한 이레가 남았다는 것을 가르침 받았습니다. 70이레는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왕이 일어나기까지 69이레가 된다는 것을 분명히 말하고 있는데 그 70이레의 시기에는 교회가 포함되어 있지 않는 것입니다. 69이레가 이미 성취되었습니다. 영국에 있는 어떤 분이 그것을 계산해서 우리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공중에 오심부터 시작하여 한 이레가 시작되는데 그것이 바로 환난시대인 것입니다. 마태와 마가복음에 보면 주님이 오실 때 한 사람은 남고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거기에 데려감을 당하는 사람이 망하는 사람입니다. 거기에 남아있는 사람이 천년왕국에 들어가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 마가복음에서 주님의 오심에 대해서는 공중재림과 관계가 없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종종 잘못된 가르침을 하는 사람들은 종말론을 말하면서 긴장을 고조시키는 가르침을 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태 마가복음에 주님의 오심에 관한 여러가지 가르침들은 주님의 공중재림과는 사실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을 구별한 다음에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지상으로 오심에 대한 광경은 스가랴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스가랴서 14 3~5

그 때에 여호와께서 나가사 그 열국을 치시되 이왕 전쟁 날에 싸운 것같이 하시리라 그 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편 감람 산에 서실 것이요 감람 산은 그 한가운데가 동서로 갈라져 매우 큰 골짜기가 되어서 산 절반은 북으로, 절반은 남으로 옮기고 그 산 골짜기는 아셀까지 미칠지라 너희가 그의 산 골짜기로 도망하되 유다 왕 웃시야 때에 지진을 피하여 도망하던 것같이 하리라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임하실 것이요 모든 거룩한 자가 주와 함께 하리라

여기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발이 감람산에 서실 것이기 때문에 공중으로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공중으로 오심과 지상으로 오심은 별개인 것입니다. 감람산에 서실 것이요라고 해서 분명히 장소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신약에 있는 모든 성도가 공중으로 이끌려 올라가 모이는 것과 주님께서 지상으로 발을 딛고 오시는 것과는 구별되는 것입니다.

9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즉 주님께서 전 세계를 지배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부터 천년왕국으로 들어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환난시대 이후에 이 사태를 수습하시고 왕으로서 천년왕국에 들어가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는 예루살렘이기 때문에 특별히 이스라엘과 관련이 되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교회와 이스라엘은 별개입니다. 공중으로 오심이 있은 이후부터는 이스라엘에 관한 시계가 움직인다고 가르쳐지고 있습니다. 로마서에도 이스라엘의 때와 이방인의 때가 다른 것을 구별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당한 가운데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언제가는 주님의 이름으로 복을 받을 때가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확연하게 지상으로 오심과 공중으로 오심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마 제가 말씀드린 이런 잘못된 가르침이 한국에도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한 가르침이 들어오기 전에 확실히 알아두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만약에 하나님의 구원받은 신약 성도들이 환난을 통과한다면 주님이 몸된교회에 속해 있기 때문에 주님은 몸된교회의 머리이시므로 주님이 머리로써 자신의 몸과 싸우는 결과가 되므로 몸된교회가 환난을 통과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당신의 몸과 싸울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환난을 통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오시는 것을 확인하게 되면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최대의 소망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단은 미래에 일어날 일을 가지고 그리스도인들을 속이는 것입니다. 주님은 때를 말하지 않으셨는데 사단은 때를 계산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말씀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도록 활동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확신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지 공중재림론이나 지상재림론 하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사도행전 1장에서는 이렇게 약속하셨는데 주님이 공중으로 가는 것을 제자들이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공중으로 간 그대로 오시리라고 옆에 있는 전언자가 분명히 말해주었습니다. 주님께서 공중으로 가신 그대로 오시리라고 했기 때문에 만약에 주님이 진노가운데 오시면 그 공중으로 올라가시는 모습과는 맞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데살로니가전서 1장에 그 노하심에서 구하신다는 것은 큰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에서는 책망 받지 않는 세가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사람들은 전도를 잘 했기 때문에 전도하라고 말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1 8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지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바울이 전도하라고 말할 필요도 없이 자기들이 사는 지역과 그 주변 지역에 전도의 효과가 퍼져나갔습니다. 9,10절에서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가를 믿지 않는 자들이 증거했습니다. 9절에 저희가의 저희는 믿지 않는 자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라는 말은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를 말하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자들이 말하는 것 즉 우상을 버리고라는 말을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들었습니다. 우상을 버린 것만이 아니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라고 했습니다. 10절에는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말하니라고 했습니다. 저희라고 하는 믿지 않는 자들이 볼 때 우상을 버리고,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놀라운 믿는 자들입니다. 또 하나 놀라운 점은

데살로니가전서 4 9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너희가 친히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

형제 사랑에 대해서 서로 사랑하라고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서로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전도하고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고 형제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놀라운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주의할 점도 있었습니다. 이 데살로니가는 선배들의 가르침에 따르면 인구가 20만 정도 되는 항구도시였습니다. 로마 군대의 해군기지가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로마의 직할 성이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이 데살로니가에는 음행이라는 이 풍습이 데살로니가의 악행이었다고 합니다. 인구가 많고 로마군인들이 있고 로마 해군의 기지가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4 3절을 보면 충고를 받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 2~6

우리가 주 예수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무슨 명령으로 준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취할 줄을 알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좇지 말고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고 증거한 것과 같이 이 모든 일에 주께서 신원하여 주심이니라

그래서 이 도시는 음란이 성행했던 도시였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변의 풍습이 나쁘게 되면 그 풍습이 모임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성도들의 거룩함입니다. 그래서 거기에 속고 유혹되지 않도록 미리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문제가 있었다고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말씀집회에 오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씀교제는 예방주사와 같은 것입니다. 문제가 발생한 다음에 문제를 고치는 것과 문제가 발생되기 전에 말씀을 통해 예방하는 것과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습니다. 지금 당장 가르치는 말씀이 당장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말씀을 미리 가르침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말씀은 우리들을 지켜주는 것입니다. 물론 혼자서 성경을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말씀을 가르침 받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또 한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 11절에서는 일을 하지 않는 것 같은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또 너희에게 명한 것같이 종용하여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라고 말함과 동시에 데살로니가후서로 가면 더 엄한 말을 합니다.

데살로니가후서 3 10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이것은 이렇게 생각이 되는데 주님께서 이제 곧 오신다고 해서 일을 하지 않고 전도만 했는지 모르지만 전도한다는 핑계로 다른 성도들에게 짐을 지웠던 것입니다. 이러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몸을 지키기 위해서 또한 증거를 위해서 반듯하게 일을 하라고 바울은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3 7,8

어떻게 우리를 본받아야 할 것을 너희가 스스로 아나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규모 없이 행하지 아니하며 누구에게서든지 양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사랑으로 돕는 것은 괜찮은 것이지만 이와 같이 일을 하지 않으므로 다른 성도들에게 누를 끼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닙니다. 이러므로 말미암아 바울은 모본을 보이기 위해서 일하면서 전도를 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가르침과 동시에 모본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믿음적으로 그와 같은 본들을 본받는 것은 복된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장에는 믿는 자들이 본받는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5절 중반~7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으니라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는지라

여기를 보면 바울은 주님을 본받았습니다. 6절을 보면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라고 했습니다. 주님을 본 받을 뿐만 아니라 우리라고 하는 사도를 본받았습니다. 7절에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주님과 바울을 본받은 다음에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의하면 실제로 건전한 성도들의 본을 받는 것은 좋습니다. 물론 나쁜 본은 받아서는 안됩니다. 또 한가지 좋은 점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사도바울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습니다.

2 13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

일본에서도 어떤 사람이 나는 사복음서는 강하게 믿는다. 그러나 베드로의 신학과 바울의 신학은 믿지 않는다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서신서를 무시했습니다. 그러면 모임 생활에는 혼란이 생겨버립니다. 복음서나 서신서나 다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바울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복되었습니다. 복음서만 믿는다면 교회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할 것입니다. 복음서에서 모임에 대해 가르치는 곳은 두 곳 밖에 없습니다. 마태복음 16장과 18장에 기록되어 있을 따름입니다. 교회의 진리는 서신서에 있으며 공중에 오는 가르침도 서신서에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 사도들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반듯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에 좋은 모임이었습니다. 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박해를 받아도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래서 복된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핍박받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몇 번이고 방문하려고 시도를 했었습니다. 사단은 역사를 해서 그런 박해를 받고 있는 성도들을 방문하지 못하도록 막았습니다. 두 세 번 갈려고 했지만 결국은 바울은 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정말로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자기 대신에 디모데를 파견하여 그 상황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데살로니가전후서를 썼던 것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과 영적으로 하나였습니다. 핍박이 있어도 믿음을 지켰기 때문에 바울 자신에게 위로라고 말했습니다.

3 7,8

이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너희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위로를 받았노라 그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

그들이 믿음에 서 있는 것은 바울에게 위로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너희들은 나의 면류관이라고 하였으며 바울의 자랑거리였습니다. 이런 연유로 해서 데살로니가전서는 대단히 중요한 문서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는 공중으로 오심에 대해서 기록되어 있으며 후서는 지상재림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지상으로 오시기 전에 요한계시록의 짐승이라는 존재가 반드시 등장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상재림에 대한 그러한 표적이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공중으로 오심에 따르는 그러한 표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후서는 주님의 지상재림에 관한 말씀이 주를 이루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전서는 주님의 공중의 오심이 중심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공중으로 오심은 대단히 놀라운 것이기 때문에 이 주님을 계속 기다리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009 10 18일(일) 전주남부모임)

'주옥같은 말씀들 > 노시로 , 이치가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님과 우리와의 관계  (0) 2015.05.28
주님의 기도  (0) 2015.05.26
복음  (0) 2009.12.03
베드로  (0) 2009.12.03
복음에 합당하게  (1) 2009.12.02
사랑의 모본  (0) 2009.12.02
에베소서  (0) 2009.12.01
주 예수님의 기도  (0) 2009.11.25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