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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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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노시로 키요지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습니다. 동경에 있는 간다라는 지역에 의사 일을 하고 있던 스끼야마라는 형제님을 통해서 복음을 전해 받았습니다. 큰 도로에 접한 장소에 모임 장소가 있었습니다. 스끼야마 형제님은 그 거리에 나와서 10년 동안 매일 밤 복음을 전했습니다. 10년 동안 매일 밤 복음을 전하여 구원받은 사람이 3사람인가 4사람인가 된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매일 매일 복음을 전했습니다. 저는 그 전도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 때는 전쟁 중이었기 때문에 창문으로 불빛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하고 집회를 했었습니다. 스끼야마 형제님의 부인되신 자매님이 결핵에 걸렸는데도 형제님은 계속 복음을 전했습니다. 저는 그 때 그 전도지를 받고 복음관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도로는 야간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이 많이 통과하는 도로였습니다. 그 때 모임에서 도로를 향해 문을 열어놓고 전도집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다른 종교를 믿는 친구가 한 사람 있었습니다. 참으로 진지하고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그 친구에게 감화를 받아서 종교를 가져도 좋겠구나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근방에 복음관이 있었기 때문에 저는 그 복음관으로 가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저는 성경에 나오게 된 하나님을 믿게 된 것은 전도한 분이 저에게 일러주었기 때문에 믿게 되었습니다. 간다라는 그 거리는 야스쿠니 신사가 가까운 거리입니다. 그 당시에 일본에서는 전쟁에 가서 죽게 되면 당신들은 신이 됩니다라고 가르쳤습니다. 그것이 일본의 신도라고 하는 종교입니다. 제가 가르침 받기를 자기 이름으로 만약에 사람을 죽이게 되면 형무소를 가거나 재판에 회부되고, 그러나 국가를 위해서 전사를 하게 되면 신이 된다고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가르침을 받은 가운데 창세기 1 1절을 제가 읽고 창세기에 나오는 하나님은 진짜 하나님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일본의 신과는 다르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국가의 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창세기 1 1절을 읽고 이 분이야말로 정말로 하나님이다라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제가 믿게 된 동기였습니다. 제가 그 해 4월 달에 복음관에 가서 8월 달에 침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침례를 받을 즈음에 어떤 형제님이 저를 테스트 했습니다. 묻기를 이런 전시이기 때문에 당신이 믿게 되면 형무소를 가거나 죽을 수도 있는데 그래도 믿겠느냐?고 했습니다. 저는 젊었기 때문에 예 어쩔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을 하므로 저는 그 테스터에 합격을 하고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 때부터 오늘날까지 제가 주님의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한번도 의심한 적이 없습니다. 26살 때 결혼을 해서 자녀가 한 명 있었습니다. 그 해에 니이가타 지역으로 개척전도를 나가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7 11~19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한 촌에 들어가시니 문둥병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거늘 보시고 가라사대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저희가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그 중에 하나가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 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니 저는 사마리아인이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여기에 10명의 문둥병자가 있습니다. 동네에 살지 못하기 때문에 동네와 떨어져서 살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문둥병자는 부정하기 때문에 예수님께 접근할 수 없어 멀리 서서 긍휼히 여겨 달라고 소리쳤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사장에게 가서 너희 몸을 보이라고 하셨습니다. 10명이 다 나음을 받았습니다. 그 중에 아홉명은 나았지만 사례(예배)하러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아홉명은 아마 유대인이었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문둥병이 나으면 제사장에게 갈 수 있지만 이방인은 제사장에게 가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제사장에게 가기 전에 나았습니다. 이 사마리아인은 정말로 은혜를 느꼈다고 생각합니다. 아홉명은 제사장에게 갔지만 이 사마리아인은 제사장에게 가지 않고 예수님께 진심으로 사례하기 위해 왔습니다. 16절에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예배)하니라고 했습니다. 사마리아인입니다. 여기에 예배의 실례가 예시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구원받았느냐 하면 예배드리기 위해서 구원받았습니다.

저는 이전에 신도라는 종교를 가졌습니다. 입학시험을 할 때는 신사에 가서 경배를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의하면 우리가 예배를 드려야 할 분은 한 분 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정말로 놀라운 일이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일본에는 신이 800만명 있다고 합니다. 성경에는 신이 한 분 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사마리아인은 예배를 배웠습니다.

요한복음 4 20~24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여기에 보면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고 했습니다. 이 여자는 주님께로부터 예배를 가르침 받았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이 산에서 했고 유대인들은 성전에 들어가서 예배를 했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에서의 참된 예배자는 23절에 있는대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정말로 복됩니다. 장소에 구애됨이 없이 어디서나 예배드릴 수가 있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이 기뻐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카톨릭처럼 스탠드 글래스가 있는 건물에 들어가서 오르간을 울리면서 드리는 예배가 아닙니다. 신약에는 제사장들 즉 사람에 의한 제사장들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신약에 있어서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인을 통해서 예배를 가르쳤습니다. 참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영광입니다.

사실 오늘은 에베소서의 말씀을 교제드리고 싶습니다.

에베소서 1장에 보면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함이라는 말이 3번 나옵니다. 에베소서 1장에 따르면 우리는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 즉 영적인 복을 받았습니다. 이 세상의 복은 돈이 있고 머리가 좋고 건강한 것을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3절 중반에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졌습니다. 4절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택함이 언급되어 있는데 택함이라는 말은 좀 어려운 말입니다. 예를 들면 서울 대학 들어가는 사람은 어떤 면에서 택함받은 사람만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나갈 수 있다고 4절에서 말합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것은 영광입니다. 대부분의 복을 말할 때 에베소서에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라고 표현 되는 말들이 눈에 띕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믿는 것을 말합니다. 일본사람들처럼 신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사람들은 죄인들입니다. 결코 하나님과 사람들은 이런 상태에서는 교제할 수 없는 입장인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중보자로 가운데 서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들과 교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소위 말하는 적당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죄인이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절대로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하지 않고는 사람들과 교제할 수 없습니다. 5절에 의하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며 놀라운 신분입니다. 여기는 아무런 차별이 없습니다. 자녀라는 말은 사랑이라는 말과 연관이 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택하시고 사랑하셔서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그래서 6절에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7절에서는 죄사함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드님으로 말미암아 죄가 용서 되었습니다. 그래서 구원은 완전한 것입니다. 아드님의 피로 말미암는 구속인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축복이 아닙니까? 선한 이유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고 이미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을 받은 것입니다. 이 구속이라는 것은 우리들의 과거 현재 미래를 다 포함하는 것입니다. 또 이 분께서는 우리들에게 영적인 지혜를 주셨습니다. 나아가서는 장래 일까지 알려 주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에베소서는 몸된교회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서 하나님께로부터 받게 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받는다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놀라운 것입니다. 이것이 2절에 이미 계획되었고 그리스도 안에서 실행이 되었습니다. 12절에는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3,4절에서는 성령이 주어진 일에 대해서 언급되고 있습니다. 13,4절에서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차별이 없다는 전제 가운데 13절에 보면 구원의 복음을 듣고라고 말했습니다. 12절은 유대인(우리)에 관한 이야기가 되고 있으며 13절은 이방인(너희)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모두 복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습니다. 복음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이 주어집니다. 14절은 기업 즉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는 보증으로 성령이 주어졌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믿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소유라는 보장으로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으로 말미암아 믿는 한 멸망하는 일이 없습니다.

때때로 사단은 그리스도인들이 실패하면 구원받지 않은 것이 아니냐? 또는 구원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냐?고 유혹을 합니다. 어떤 다른 사람이 그렇게 말할 경우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구원을 잃어버릴 수가 있다고 가르치는 데가 있는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카톨릭의 경우는 믿어도 카톨릭이 제시하는 7가지 의식을 행하지 않는다면 구원받지 않는다고 가르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만약에 그것을 믿지 않는다면 연옥으로 들어간다고 가르칩니다. 그로 말미암아 오히려 결과적으로는 그리스도를 교회의 종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만든 의식을 지키는 것을 조건부로 해서 구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믿게 되면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확신을 갖는 것은 놀라운 것입니다. 예를 들면 연약함으로 말미암아 실족했다고 할지라도 회개하게 되면 실족한 입장에서 회복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은 위대한 은혜입니다. 그래서 14절 중반에서는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축복으로부터 에베소 사람들에게 몸된교회에 관한 진리를 가르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교회가 왜 중요한고 하니 21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이 몸된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모든 정사, 권세, 능력, 주관하는 자 이 모든 것 위에 뛰어나신 분이 몸된교회의 머리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국가보다도 능가하는 가운데 계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종교가 아닙니다.

일본은 전시에 모든 종교를 문부성이라는 한 부처 밑에 통합을 시켰습니다. 그 때 일본 신도를 나머지 종교보다도 뛰어나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신도라는 이 종교는 내무부에 해당하는 내무성에서 관장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그들 위에 계신 분이기에 존귀한 것입니다. 이 교회는 이방인과 유대인의 구별이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2 4~6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6절에 나타나 있는 함께 속에는 이방인과 유대인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2 14절에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둘을 하나로 만드셨습니다. 이것은 몸된교회의 한 면입니다. 저는 그리스도인이 되고 나서 교회진리에 관한 가르침을 받지 못했습니다만 복음은 자주 들었습니다. 그 과정을 말씀드리면 전쟁이 끝난 다음에 그리스도인들이 다시 모이기 시작했는데 동경시내에 모임이 3개 밖에 없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몸된교회에 대한 가르침이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세 모임이 공동으로 말씀집회를 했습니다. 그 때 우리는 모르고 그 집회를 대회라고 했습니다. 그 대회를 개최하면서 누가 가르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나왔습니다, 또한 그 때부터 대회라는 이 말이 과연 성경적인가라는 의문도 나왔습니다. 대회라는 말에 대한 성경적인 근거가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도 나왔습니다. 제가 교회에 대해서 최초로 들은 설명은 이것이었습니다. 동경에 그 당시 모임이 세 개 있었습니다. 모임이 세 개는 마치 컵이 세 개가 있는데 한꺼번에 모으면 하나인 것처럼 그렇게 교회가 설명된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컵 세 개를 하나로 모을 수 있듯이 대회가 가능하다라는 이야기였습니다. 그것은 지역교회 세 개가 모여서 하나가 된다는 사고방식이 되는 것입니다. 처음에 해외에서 온 전도자들이 세 개의 모임이 대회라는 말을 사용해도 가만히 참고 그렇지 않다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대회가 아니고 교제다라고 말했습니다. 세 모임이 모이는 그 대회를 누가 인도하느냐는 문제도 발생했습니다. 의논한 결과 이번에는 이 모임, 다음에는 저 모임이라는 결과가 내려졌습니다. 그 일로 말미암아 교회에 대해서 여러가지 배우게 되었는데 지상에는 하나가 되는 모임이라는 개념은 없다. 여기는 이방인과 유대인이 하나가 되어서 교제하는 몸된교회의 원리가 나와있습니다. 세 개의 컵을 하나로 모으면 하나가 된다는 논리처럼 그 당시에 지역교회가 하나씩 하나씩 독립되어 있다는 것도 애매하게 가르쳐졌습니다. 그렇게 되면 마치 교파처럼 가장 강력한 모임, 가장 강력한 지도자가 지배자가 되어 버립니다. 그것은 틀렸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최초의 교회에 관한 생각은 애매했는데 그것은 지역교회와 몸된교회의 구별을 몰랐기 때문에 그러했습니다. 이 세 모임이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사상이 들어오게 되면 어느 한 모임에서 출교를 하게 되면 다른 모임으로 그것을 연락하게 되는 데 그것은 틀렸습니다. 그 모임 하나하나가 직접 하나님께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 모임과 주변 모임 사이에 생긴 문제라면 알려야 하지만 한 모임 내에서 생긴 문제는 출교에 있다 할지라도 알리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지역모임간에 영적인 교제는 나누는 것입니다. 일본에는 그런 경위를 거쳐서 몸된교회와 지역교회의 차이를 알게 되었습니다.

2장을 읽어보면 이방인과 유대인이 구원받는다는 것을 구약성경에 나타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장 초반을 보면 바울은 교회의 비밀을 알림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3 6절에서 여기는 이방인이 구원받는 것뿐만 아니라 유대인과 차별이 없이 함께 하나님의 유업을 받는 후사에 참여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늘에서는 이방인과 유대인의 구별이 없는 것입니다. 에베소서는 우리들에게 평안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리는 깊은 것입니다. 미국은 기독교의 사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이 바로 여기의 차별이 없다는 것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입니다. 없지는 않지만 이번에 오바마씨가 대통령이 된 것도 그러한 사상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불교나 유교, 마호멧 사상을 가진 측에서는 사상자체가 그렇게 안될 것입니다. 물론 미국사람 모두가 다 그리스도인인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국민들은 그 토대로서 성경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에서는 평강, 평안이라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5장으로 가서 여기는 그리스도인들의 본 모습이 나와 있습니다.

22.23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여기서 아내는 그리스도 안에서 남편에게 순종한다는 것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 없이 남편에게 순복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인정한 다음에 남편을 주께 하듯 순복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남편을 순복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남편에게 순복하기 전에 주님께 순복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24절에 교회가 그리스도께 하듯이라는 기준이 나와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모본이고 기준입니다. 25절에는 남편의 책임이 나와있습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서 목숨을 버린 것처럼이 기준입니다. 그와 같이 아내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평화로울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다는 것을 나타내는 장소가 그리스도인의 가정인 것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은혜와 평강이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서신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언급을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인 축복을 받았지만 모임에 그 축복이 있는 것입니다. 모임에는 은혜와 평강이 있는 것입니다. 죄가 있으면 평강이 파괴됩니다. 그래서 죄를 범했으면 모임도 회개하고 개인도 회개하는 것입니다.

6 1절에서는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부모가 결점이 없어서 순복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주님을 순복하기 때문에 부모가 결점이 있더라도 순복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 젊은이들은 매일 자기의 부모를 보면 현실적인 문제로서 결점이 많이 보일 것입니다. 그 당사자인 젊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기 때문에 그 주님을 인해서 부모를 존경하고 순복하는 것입니다.

6 5절에는 종들이 상전에게 순종하는 것이 나옵니다. 현대에도 직장에 들어가게 되면 직장의 상사에게 순종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 직장의 일을 할 때도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듯 순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주를 인정하지 않으면 안될 것을 다니엘을 예를 들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왔습니다. 바벨론에 가자 바벨론 말을 배우고 바벨론식 이름이 주어지고 바벨론의 음식을 먹게끔 강요를 받았습니다. 바벨론의 문학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바벨론 국가의 체제를 다니엘은 인정한 셈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 된 우리들도 어느 다른 나라에 가서 살면 그 나라의 체제를 우선 인정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다니엘은 그렇게 했습니다. 그렇지만 다니엘은 매일 예루살렘 쪽을 향해 창문을 열고 예루살렘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다니엘은 질투로 말미암아 어려움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30일 동안 왕 외에는 아무에게도 기도하면 안된다고 했지만 그런 법령이 있어도 다니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에게 주님께 순종하는 것이 최우선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혁명을 일으킨다든지 이런 것들을 하지 않았습니다. 여기 종들도 회사에서 회사를 반역하는 일들을 그리스도인들은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이 있는 곳에는 평강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에베소서에서는 평강을 말하면서도 6 11절로 가면 싸움이 있습니다. 11절 이후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싸움을 위해서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권면을 받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귀와의 싸움입니다. 여러 문제의 이면에는 마귀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거짓가르침이 들어오는 것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 이면에는 마귀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문제가 발생하면 그 문제 자체에 시선을 빼앗기지 말고 문제 이면에 있는 마귀의 활동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13절에 악한 날은 오늘날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마귀와 싸우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신갑주가 필요합니다. 전신갑주의 첫번째 무기는 진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것과 복음에 대한 것과 그리고 모임에 대한 것을 진리라고 생각해도 좋습니다. 그 다음에 가 나오는데 올바른 행위라고 보아도 좋습니다. 그 다음 복음은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는 것이 우리들의 승리입니다. 빌립보서에서는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고 권면합니다. 복음에 순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복음을 믿는 다는 것과 순종한다는 것이 하나가 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믿음의 방패를 가지며, 여기에 날아오는 화전을 소멸하는 것입니다. 사단은 여러가지 문제를 우리에게 가지고 들어올 것입니다. 그러나 단순한 믿음이야 말로 그것을 막을 수가 있습니다. 구원의 확신은 투구입니다. 이것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단 하나의 공격무기가 있는데 그것은 말씀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암송하고 말씀을 읽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 다음에는 기도가 기록이 되어 있는데 전쟁을 하게 되면 반드시 상관에게 설명을 하고 보고를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실제 전쟁에서도 일반적으로 참모본부의 지시를 받아서 작전을 수행합니다. 그래서 기도는 우리의 승리로 인도하는 길인 것입니다. 예를 들면 나이가 들어서 모임에 참가하는 것과 말씀에 동참하는 것도 없을 수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그 모임이나 그 일에 전보를 제공해서 기도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공적인 일을 할 수 없는 자매들도 이렇게 기도로서 모임을 지원하고 도울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도 무기인 셈입니다. 평안을 쭉~~ 말해오다가 마지막에는 마귀와의 싸움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이 싸움에서 이겼으면 좋겠습니다.

(2009년 10월 17일(토) 전주남부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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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