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Recent Post

theWord Bible Software

Category

예수님의 기도

노시로 키요지

요한복음 17 1~5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17장에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으로서의 기도라고 가르쳐지고 있습니다. 요전에 일본에서 말씀집회가 있었습니다. 어떤 형제님이 "이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라고 가르쳤습니다. 같은 집회에서 다음 형제님이 앞에 나가서 " 17장은 기도라기보다도 아버지 하나님과의 교제다"라고 가르쳤습니다. 저는 양쪽 다라고 생각합니다. 요한복음 10장에는 목자로서의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 있습니다. 최고의 목자장이십니다. 목자장은 양들을 사랑해서 양들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십니다. 10장의 목자는 대단히 놀라운 분이십니다. 실제로 100마리의 양을 친 어떤 사람이 양에 대해서 이렇게 증거를 했습니다. "양은 발이 느리다. 양은 약하다, 양은 어리석다"라고 증거했습니다. 동일하게 그리스도인들도 급속하게 진보되면서 생활하는 것은 어려운 것 같습니다. 한걸음 한걸음씩 성장하는 듯 합니다. 양은 대적과 싸울 수가 없습니다. 양은 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길을 잃으면 독수리에게도 먹히기도 하고 늑대에게도 잡아 먹힙니다. 약하기 때문에 목자가 필요합니다. 우리들도 이와 같이 모임 내에서 실제적인 목자가 필요합니다. 왜 양들이 어리석은가 물어봤더니 양들은 자기가 가는 길에 위험을 알아차리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우리에서 나가게 되면 돌아오는 길을 모른다고 실제 목자는 말했는데 그래서 찾으러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도 일면 그런 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약하다는 것을 알면 기도하면서 매어 달리겠지요. 어리석다고 자신을 생각한다면 말씀을 읽고 배우겠지요. 또한 선배들의 모본을 보겠지요. 저는 그 실제 목자의 증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0장에는 목자로서의 그리스도가 나타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목자는 대적으로부터 양들을 지켰습니다.

17장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셨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 내용 속에는 지식이 없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 아버지를 알고 계셨습니다. 또한 믿는 자들의 양상(樣相)과 필요를 아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위하고 또한 제자들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우리들은 마태복음 산상수훈에 나와있는 주기도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 교회들에서 그것을 의식처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를 아시고 우리들을 아시는 가운데 기도해 주셨습니다. 또한 주님 자신을 위해서도 기도하셨습니다. 1절에 보면 하나님 아버지를 향하여 "때가 이르렀사오니"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이 때는 십자가의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 때에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라고 하셨는데 아버지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기도는 십자가가 완전하게 성공할 수 있도록 하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십자가로 말미암아 완전하게 드러났습니다. 그 때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이 완전하게 나타난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다고 말했습니다. 이 세상에 많은 권세가들은 자기를 나타내기 위해서 권세를 취합니다. 왕은 자기의 영광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는 최고의 영광을 가지신 것은우리들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 자신을 위해서 권세를 가진 것이 아니고 믿는 자들에게 영생을 주기 위해서 권세를 가진 것을 말합니다. 5절에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씀하신다고 생각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완성하신 다음에 지금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 여러가지 보고를 하셨습니다. 일본모임에서 말씀집회 시간에 이 말씀은 기도라기 보다는 교제라고 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버지 하나님께 보고를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4절에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33년 동안에 그리스도의 삶 속에는 죄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셨습니다. 여러가지 기적을 행해서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영화를 드러내셨습니다. 33년 동안 아버지 하나님의 하라고 하신 그 일을 행하셔서 아버지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래서 반듯하게 아버지 하나님께 보고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받아들여졌는가는 8절에 나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로부터 오신 것을 제자들이 알았다고 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의지에 의해서 보냄을 받았다는 것을 제자들이 알았다고 했습니다. 10절에 보면 믿는 자들이 예수님께 영광을 돌렸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기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말씀을 받아들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의 주라는 것을 알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기 때문에 그것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다고 아버지 하나님께 보고를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보고를 하셨는데 말씀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영생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영원히 시간과 관계없는 생명입니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께는 시간과 관계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처음이요 나중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시간을 경험하신 것은 출생해서 승천하실 때까지만 시간을 경험하신 것입니다. 그 이외에는 예수 그리스도는 시간에 제약을 받는 일이 없으셨습니다. 우리는 그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생명의 본질인 그 성질은 무엇이겠습니까? 생명의 본질이라는 것은 생명이 있다는 것만이 아니고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에 그 생명의 본질이 있는 것입니다. 동물들에게는 생각, 그 사상이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재능이 있는 동물일지라도 사람과 같은 사고방식이 없는 것입니다. 인간의 최고 됨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며 영원히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26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저희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저희 안에 있고 나도 저희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알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 하나님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를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사랑이시라는 것을 명백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들에게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복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22장에 보면 하나님 아버지 곁에서 생활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얼굴을 본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잘 모르지만 하늘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나타낸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여기 보면 "또 알게 하리니" 라고 한 말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명백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노인이 사는 시설에 들어가서 살다 보면 점점 노화되어서 늙어갑니다. 누울 때도 있고 먹을 것도 있고 병들면 그 안에 의사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점점 안다는 것이 없어집니다. 안다는 것이 점점 없어지기 때문에 살아 있다는 것이 점점 쇠약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이 계신 하늘에 가게 되면 여기 기록된 것처럼 점점 하나님의 이름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굉장한 일이 아닙니까! 이와같이 영생에 대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설명해 주셨습니다. 건강, 재산, 명예, 이런 것들은 점점 쇠태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기쁨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뿐만 아니라 주님이 지금 계신 그곳에 가도 더욱더 우리들에게 하나님에 대해 알려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살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더 놀라운 말씀을 해주셨는데 24절에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들과 함께 영원히 있고 싶어하십니다. 이 장면에서는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부활하시고 하늘로 가시지만 그러나 제자들과 함께 있고 싶다는 원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사랑해 주시는 분과 함께 있기 때문에 복된 것입니다. 사랑을 알게 되고 하나님을 알게 되기 때문에 하늘나라는 더욱더 좋은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믿는 자들을 위하여 여러가지로 기도하셨지만 그 중에 하나는 말씀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주님이 주신 말씀을 지켰다고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께 보고를 드렸습니다. 말씀을 주셨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계시지 않더라도 하나님 아버지와 말씀을 통하여 교제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읽고 감동을 입기도 하고 감사가 나오기도 합니다. 말씀을 믿는 거기에 힘이 있습니다. 복된 말씀을 주셨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이 멸망하지 않도록 보호해 주셨습니다.

12 "내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와 지키었나이다 그 중에 하나도 멸망치 않고 오직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그 중에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오직 멸망의 자식뿐이라"고 하신 멸망의 자식은 유다를 말하는 것입니다. 나머지는 주님께서 모두 보전해 주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께서 유다외에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는다고 한 말씀 그대로 제자들을 지켜주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전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하나님 아버지의 능력으로 지켰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에게는 이 말씀을 믿기 때문에 평안이 있는 것입니다. 믿는자에게는 멸망하는 일이 없습니다. 믿는 자들을 위하여 앞으로도 지켜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또 하나는 말씀을 믿는 자들에게 주셨기 때문에 이 세상과 말씀을 받은 자들은 서로 원수가 되었습니다. 그와같이 세상과 대적이 되어 있기 때문에 악한 자들로부터 지켜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이 악한 자는 곧 마귀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이 악한 자로부터 보호 받도록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그만 이 사단의 존재를 잊어버립니다. 많은 문제들 가운데 그 이면에 사단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들은 경계를 할 것이고 선택도 잘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베드로서에 따르면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삼킬 자를 찾는다고 일러주었습니다. 베드로는 마귀를 경험했습니다. 세번이나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했습니다. 베드로는 그 때 자기 힘으로 괜찮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악한자로부터 지켜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회개의 길로 인도함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금방 구원받은 후 하늘나라로 데려가지 않고 세상에 두지만 악한 자로부터 지켜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 다음은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라고 성별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주님을 보낸 것처럼 내가 저희를 세상에 보내기 때문에 세상에서 저희를 지켜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이 세상에 사는 방식이라든가 이 세상의 가치관으로부터 믿는 자들은 지켜 달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여기에 진리로 거룩하게 해달라는 말씀은 죄로부터라기보다도 이 세상의 사는 방식, 이 세상의 사고방식, 이 세상의 가치관으로부터 지켜달라는 기도일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가 없으시기 때문에 거룩하실 필요가 없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들어오신지 얼마 안되어서 마귀는 예수 그리스도를 시험했습니다. 떡에 대해서, 가진 것에 대해서, 이 세상의 영예를 줄터이니 나에게 절하라는 마귀의 시험이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 자신을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거룩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그 거룩인 성별은 모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처럼 말씀으로 말미암아 거룩 즉 성별이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사는 방식으로부터 성별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다음에 하나가 되는 것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제자들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거룩 즉 성별이 되면 자연히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남편이나 아내가 거룩 즉 말씀으로 성별이 되면 더욱 더 하나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 문장의 뜻은 말씀으로 말미암아 거룩히 되고 성별이 되므로 하나가 된다는 일련의 프로세스를 가지고 있습니다. 형제자매들이 말씀으로 말미암아 성별이 되면 될수록 더욱 더 하나가 될 것입니다.

또 하나는 이 제자들로 말미암아 이방인들에게 전도가 행해집니다.이 생명을 얻는 이 일은 몸된 교회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제자들은 대체로 유대인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전도를 하여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아서 몸된교회가 형성이 되었습니다. 21절에 보면 모임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22절에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라고 나와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셔서 부활의 영광 가운데 들어가신 것처럼 믿는 자들에게 부활의 약속을 주어 영광을 주었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들이 하나가 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내게 주신 이 영광은 부활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가 된 것입니다. 로마서에 의하면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했는데 우리들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광이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와 교제할 수 있습니다. 23절에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가 부활하심으로 영광을 얻은 것처럼 믿는 자들에게 부활의 영광을 미리 주셔서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에게 그 영광을 알릴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17장을 읽게되면 하나님 아버지를 위해서 기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영광과 영화를 나타나게 해달라고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또한 우리들에게도 영광을 주신 것을 이 기도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전부를 생각하면 제자들을 위한 기도가 아니겠습니까? 이것을 읽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가를 조금 알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 아버지를 나타내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17장을 충분하게 다 교제할 수 없습니다. 이 정도로 교제할 수 있는 것에 대해 기쁘게 생각합니다.

(2009 10 29() 강서모임)

'주옥같은 말씀들 > 노시로 , 이치가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님의 다시 오심  (0) 2009.12.03
복음에 합당하게  (1) 2009.12.02
사랑의 모본  (0) 2009.12.02
에베소서  (0) 2009.12.01
지역교회  (0) 2009.11.25
회개  (0) 2009.11.24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  (0) 2009.11.23
  (0) 2009.11.23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