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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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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교회

노시로 키요지

디모데전서 3 15,16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음이니라

지역모임에 대해서 주님께로부터 교제를 받은 것을 교제드리고자 합니다. 지역교회에 대해서는 명문화되어 있는 가운데 지역모임의 머리는 그리스도라는 명문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몸된교회에 대해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라는 것이 에베소서에 있습니다. 또한 지역교회에 대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라는 문장은 성경에 없습니다. 그러나 몸된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라고 나와있습니다. 만약 지역모임 하나하나가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된다면 그것은 큰 일입니다. 마태복음 18 18~20에 보면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래서 우리가 모일 때에는 주님이 중요한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그래서 지역모임에 주님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런 의미에서 지역모임의 머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명문은 없어도 주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가 되는 것입니다. 15절에는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장로의 집은 장로의 집입니다. 집사의 가정은 그 집사의 집입니다. 하나님의 집은 하나님의 가정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이라는 말에서 생각이 되는 것은 거기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집에 대해서 흥미가 없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것도 없습니다. 예를 들면 그리스도인의 자녀가 주일학교에서 성경을 잘 가르침 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해서도 배워 잘 알게 됩니다. 배운 그대로 믿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자녀나 믿지 않는 사람의 자녀나 같습니다. 만약 그리스도인의 자녀가 그 성경 배운 것을 인정받아서 모임에서 영접을 했다하더라도 어찌하던 회개하여 믿지 않으면 안됩니다. 복음의 진리 안에 보면 회개하여 믿는 것이 복음의 진리입니다. 자기가 마땅히 지옥에 던지어질 사람인 것을 알고 회개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리스도에 대해서, 성경에 대해서 지식적으로 안다고 해서 그 지식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한 믿음이 없이 권함을 받아서 영접이 되었다 할지라도 그 사람은 성장함이 없습니다. 구원받은 자 만이 모임의 존귀함과 그 귀함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는 회개하고 믿어서 주님이 임재해 계신 곳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믿음을 가진 자에 의해서 하나님의 교회는 구성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집이라는 이 말에서 교제가운데 드려졌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하나님의 집은 하나님의 교제가 행하여 지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집은 놀라운 곳입니다. 바울은 서신을 쓸 때마다 매번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썼습니다. 그래서 모임은 그 은혜와 평강이 있는 곳입니다. 달리 말하면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입니다. 그 복음을 믿고 피차간에 평강을 갖는 것입니다. 그 복음을 순종하는데가 하나님의 교회인 것입니다. 구약 율법이 하나님의 교회는 필요치 않습니다. 우리들은 복음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신서는 복음을 설명하는 것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모임이기 때문에 질서가 필요합니다. 그 모임에 질서를 위해서 장로와 집사들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모임에 질서가 없다면 평강을 유지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장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그 장로에 대한 자격이 기록된 데가 3 2절에 “감독(장로)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라는 말을 했습니다. 집사들도 이러이러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 자격이 어떠하든 괜찮다고 기록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이 조건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마땅히 있어야 하는 말이며 강한 말입니다.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었으면 바람직하다’라는 투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장로들은 다스립니다. 그래서 자기 가정을 다스린다고 하는 조건이 있습니다. “자기 집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보겠느냐”고 말하고 있습니다. 집을 다스리는 경험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새로 입교한 자, 즉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은 장로가 되어서는 아니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경험이 필요합니다.

장로는 그 장로의 가정을 살핀다는 점에서 조건이 엄합니다. 여성에 대해서도 흠이 있으면 안되며 폭력을 휘둘러서도 안됩니다. 또한 술에 지배되어 있는 사람도 안됩니다. 이런 연유로 해서 그 조건이 엄합니다. 집사들도 동일합니다. 8절에 집사들은 일구이언하지 아니하며 라고 했습니다. 장로의 경우는 술에 지배되지 아니하고집사는 술에 인박이지 아니하고라고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것처럼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양쪽 다 술을 마셔서는 안되지만 약간의 조건의 차이가 있습니다. 말하자면 장로보다 집사가 조건이 유연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장로는 하나님의 집을 다스리므로 이러한 조건이 필요한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교회는 거룩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래서 장로에게는 “아담하며” 라는 말이 있습니다. 모임에는 여러가지 문제나 사건들이 발생합니다. 그 실례가 고린도 모임이었습니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느냐 하면 고린도 모임 내에서 분파가 생겼습니다. 이것은 어려운 문제이고 큰 문제였습니다. 또 남성과 여성의 문제도 발생했습니다. 또한 지식 있는 선배가 우상신전에서 음식을 먹는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떡을 떼기 위해 모였지만 거기에는 혼란이 발생했습니다. 또한 부한 그리스도인들과 가난한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차별이 발생했습니다. 나아가서 은사활용에도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방언의 은사가 있는 사람들이 모임의 시간을 독점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와같이 은사 사용에 혼란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여자들이 공적으로 말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한 혼란이 현실적으로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그러한 문제들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문제가 없는 거룩한 지역모임이 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 때문에 장로들은 애를 쓸 것입니다. 그래서 장로들이 필요한 것이며, 장로에 대한 엄격한 조건이 필요한 것입니다.

지역모임은 질서가 있는 모임으로서 정리 정돈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가정은 질서가 있기 때문에 복됩니다. 가정에 대한 에베소서에서도 베드로 서신에서도 나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남편은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듯이 아내를 사랑하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러한 남편은 최고의 남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내는 주 안에서 남편에게 순복하라고 가르치며 자녀들도 주 안에서 부모에게 공경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실제로 가정이 그렇게 가르쳐져서 말씀대로 가정이 존재하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한 믿는 자들의 가정의 모본으로서 위에 있는 가정이 장로의 가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장로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선배들로부터 제가 가르침 받은 것은 이런 것이었는데 장로는 직업 야구단의 감독처럼 되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 야구 감독은 그 위에 오너가 있습니다. 감독은 그 선수들에 대해서 책임을 집니다. 만약 대외적으로 문제가 발생하게 되면 그 감독이 책임을 지게 되는 것입니다. 모임의 장로인 감독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그 모임에 대한 책임을 집니다. 말씀에 따라 먹이고 있는지 아닌지 주님께 책임을 추궁 당할 것입니다. 모임이 하나님의 집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자신이 머리인 것처럼 행동했던 장로들이 과거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집에 오너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의 집에서는 기도하고 말씀을 가르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야구 감독은 선수들이 그 실력에 맞도록 잘 인도할 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사를 따라서 모임은 하나님을 섬깁니다.

은사에 따라서 일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은사를 따라 일한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것입니다. 예를 들면 교파 같은 경우에는 목사가 은사가 없더라도 신학을 해서 자격을 얻게 되면 목사가 됩니다. 영적인 능력과 힘이 없어도 자격이 있으면 목사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일에 보증은 바로 자격입니다. 주님의 모임에 일의 자격은 은사를 따라서 일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은사를 주시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여성은 공적으로 가르침을 하지 않을지라도 자매들의 역할은 큽니다. 누가복음 초반에 보면 여성들이 나와있습니다. 마지막에도 마리아와 살로메 같은 여인들이 향료를 가지고 왔습니다. 주님을 사랑해서 일을 잘 했습니다. 여성은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장로로 선택을 받는 일은 없습니다, 창조의 질서 때문에 여성은 가르쳐서는 안된다고 디모데서에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것은 능력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질서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섬길 때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질서정연하게 인도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모임에는 사랑이 있는데 이것은 모임의 특징입니다. 첫번째로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형제자매들을 사랑합니다. 또한 사랑을 가지고 복음을 말합니다. 사랑이 있기 때문에 모임은 복됩니다. 복음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우리들에게 주어졌습니다. 그 복음을 순종한다면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사랑하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사랑한다는 것은 안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빌립보서 1 8~10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여기서 보면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지고 빌립보 성도들을 사모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었을 때 하나님이 바울을 증명해 주셨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9절에서 바울은 기도했습니다. 일본어 성경에 따르면 빌립보 성도들의 “사랑이 참된 지식과 식별력으로 점점 풍성하게 되어”라고 되어 있습니다.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당신이 말하는 무엇이든지 다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사랑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런 경우도 사랑해야 되지 않습니까?’라고 질문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일본어 성경에는 “사랑의 참된 지식, 모든 총명을 “식별력”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모임 장소 이층에 살고 있는데 물질을 도와 달라고 구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임이기 때문에 나를 도와주어야 당연하다고 하면서 물질을 달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가지 이유를 갖다 댑니다. 만약 거기서 속임을 당한다면 식별력이 없는 사람이 되고 속임을 당해서 가게 되면 그 사람은 그리스도인들은 쉽게 속는다고 할 것입니다. 사랑을 실행하는데도 총명이 필요하고 참된 지식이 필요합니다. 어느 교파는 불량자를 돕는 것이 교회의 임무이고 그것이 선이라고 선전하는 곳도 있습니다. 사람의 필요를 도울 수는 있겠으나 그것이 모임의 일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집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 속에는 하나님의 집에는 그리스도인들의 필요를 채운다는 의미가 그 속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을 위해서 모임을 위해서 그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놀라운 은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모임은 원조단체가 아닙니다. 디모데서에는 참과부를 도우라고 편지하고 있습니다. 과부를 돕되 과부의 조건으로 60이 덜 되지 아니하고 도울 친척이 없는 과부로 조건이 정해져 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는 도울 수 있는 능력을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습니다. 그래서 모임은 사랑을 실행할 때에 다른 말씀을 잘 음미해서 그 말씀에 따라서 식별력(총명)과 참된 지식을 가지고 실행해야 할 것입니다. 모임은 이와 같은 사랑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이 사랑을 가지고 피차간에 교제하면 그 모임은 복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임은 질서가 있고, 사랑이 있고, 거룩함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으로써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자부심을 가져도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머리가 되어 있고 예수 그리스도가 쫓겨나 있는 모임에 간다면 슬플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는 일곱 모임이 있는데 라오디게아 모임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쫓아내었습니다. 그래서 안약을 사서 보게 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또한 옷을 사서 입으라고 권면하고 있는데 그런 식으로 라오디게아 교회는 권함을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은 어느 경우에도 통용이 됩니다. 인간이 머리도 아니고 인간이 지배하는 데도 아닙니다. 인간의 조직에 의한 자격을 가진 사람이 목회하는데도 아닙니다. 영적인 사람이 그 은사를 가지고 하나님의 모임에서 섬기는 것입니다.

다시 디모데전서 3 15절에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진리가 없으면 안됩니다. 진리는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요한복음 17장에서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기둥처럼 높은 곳에서 빛을 비추는 발하는 것처럼 서술되어 있습니다. 진리의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나타내는 하나님의 교회는 진리 위에 서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진리를 증거하면서 그 진리 위에 서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진리를 잘못 가르치지 않도록 피차간에 잘못된 방향으로 가지 않도록 주의를 해야 할 것입니다. 모임에 대한 진리가 여러가지로 가르쳐지고 있습니다

고린도 전서 14 29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변할 것이요”

여기에 예언하는 자들은 현재 이해하기로 하나님께로 말씀을 부여 받아서 말하는 사람으로 바꾸어 말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별(음미=일본어성경)할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진리를 말하지만 분별이 필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한 사람이 자기가 전하는 말이 절대적인 진리라고 말하는 사람이 과거에도 있어왔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모임에 독재자 같은 사람이 등장하면 자기 가르침이 절대적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여기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듣는 사람들은 분별할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다른 이들이라고 했기 때문에 이 말을 듣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다른 이들이 분별한 가운데 말한 사람에게 충고하거나 권할 때 그 사람이 받아들이면 그 사람은 정정을 받거나 자라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만약 그리스도인 부부가 모임에 참석을 했는데 남편이 말한 것을 부인이 듣고 집에 가서 교제차원에서 말을 해도 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말하는 사람들의 부인들은 자기 남편의 교제하는 것을 잘 듣고서 교제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분명하게 “분별(음미)할 것이요”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 속에는 말하는 사람의 주장이 모두 옳지는 않다는 것을 이 이면 속에는 전제를 하고 있습니다.

21절에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고 했는데 이것을 보면 동시에 두 사람이 말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아마 이 때는 방언을 한답시고 두세 사람이 동시에 일어나서 말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봉사에는 어쨌던 듣는 사람들에게 덕을 세우는 것이 목적입니다. 26절 마지막에는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고 했습니다. 자기를 나타내고자 하는 자는 듣는 사람의 덕을 고려하지 않습니다. 자기 주장을 하는 사람은 상대방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모임으로 모일 때는 주님의 이름 아래서 피차간에 덕을 세우는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31절에 “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해서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이 권면을 받고 배우게 한다는 목적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혹 모임에서도 그룹교제를 하는데 그 그룹교제는 이 말씀에 위반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룹교제를 하게 되면 모든 사람이라고 한 이 말씀에 들어가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원칙적으로 그 모임에 소속된 모든 사람이 모여서 듣기도 하고 가르치기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룹교제를 하게 되면 물론 특별한 사정이 있어 한다 할지라도 이 말씀에 위배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는 젊은 사람들은 힘이 있기 때문에 젊은 사람끼리만 말씀을 공부하자라는 모임들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모든 사람이 참여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 만약에 그룹별로 모두가 모이지 않는 가운데 가르치게 되면 그 가르침 가운데 잘못된 가르침이 들어갈 소지가 많습니다. 젊은 사람들만 모여서 분별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모임은 이와 같이 동일한 특권이 부여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지역 모임의 운영은 이 말씀에 따라 하면 문제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316절에 보면 그리스도 자신이 잘 서술되어 있는데 하나님의 지역교회에서는 그리스도가 드러나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사람을 나타내는 곳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만을 나타내면 믿지 않는 사람들은 흥미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교회라는 데는 연극을 한다든지 음악회를 하면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흥미를 끄는 일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거룩하지 않은 자들이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거룩하게 되었다는 것은 이 세상에 있는 것들로부터 구별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사고방식이나 세상의 삶의 방식과는 성별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7장에서 주님께서는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버리셨습니다. 우리들 모두 나 자신도 모임도 말씀에 따라서 성별되기를 바랍니다.

(2009 10 28일(수) 강서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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