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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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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 자매들의 교제

이치카와 토시히사

사도행전 2:41-42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방금 읽은 내용은 예루살렘 지역모임에서 행한 일곱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주님에 의해 일으켜 세워진 최초의 지역교회로써 오늘날의 지역 모임의 모본을 나타내는 일곱 가지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그 말을 받는 사람들,

두 번째는 세례를 받는 것,

세 번째는 제자로서 모임에 영접이 되는 것,

네 번째는 사도들의 말씀을 굳게 지키는 것,

다섯 번째는 교제를 하는 것,

여섯 번째는 떡을 떼는 것,

그리고 일곱 번째는 기도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일곱 가지는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지역교회에서 끊임없이 실행되고 있는 것들입니다. 처음으로 사도들의 증거를 받는 사람들은 그 말을 받아들였습니다. "그 말을"이라고 하는 말은 성령에 의해 베드로에게 주어진 것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말합니다. 따라서 한 사람 한 사람이 말씀을 받아들인다는 내면적인 일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말씀을 받는 사람들이 침례를 받는다는 외면적인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침례는 내면적으로 받아들인 말씀을 외면적으로 받아들이는 주님의 명령인 것입니다. 모임은 이것을 사실로 받아들여서 모임의 교제에 영접하고 있습니다. 모임의 교제는 하나님을 영접한 다음에 모임이 그 사람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받은 사람을 먼저 몸된교회에 받아들여주시는 것입니다. 지역모임은 하나님을 영접한 사람을 지역모임에 영접하는 것입니다. 지역모임의 영접 문제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신약성경은 지역모임에 형제자매들의 영접에 관해서 명확하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번 집회에서는 지역모임의 영접이 주제가 아니기 때문에 깊이 다룰 기회가 없습니다. 이 주제는 한 시간이 주어져도 시간이 모자랄 만큼 중요합니다. 만약 주님의 뜻이 있다면 언젠가는 이 영접의 교제를 갖고 싶습니다. 다음에는 지역모임에 영접된 사람들이 행했던 중요한 네 가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네 가지 중에 첫 번째는 지역모임의 토대가 되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굳게 지키는 것입니다. 사도들의 가르침이야말로 지역모임의 토대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복음서에서 지역모임에 대해 먼저 명령을 하셨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사도행전에서는 지역모임의 구체적인 모본을 남기셨습니다. 그리고 사도들의 관심을 통해서 지역모임에 많은 가르침을 남기셨습니다. 지역모임에 영접된 사람들이 먼저 한 것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굳게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지역모임에 영접된 사람들의 그 다음 일은 교제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에베소 지역모임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해서 교제가 이루어졌습니다.

지금부터 저희들이 교제하고자 하는 또 하나의 주제는 떡을 떼는 일입니다. 주 예수님께서 못박히시기 전날 밤에 친히 이 떡을 떼는 것을 제정하셨습니다. 예루살렘 지역교회는 주님의 명령에 따라서 떡을 뗐다고 하는 모본이 여기에 기록되어있습니다. 또한 사도바울은 어떻게 떡을 떼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떡을 뗀 것도, 그리고 사도들의 가르침을 굳게 지킨 것도 여기서 알 수 있습니다.

네 번째는 지역모임의 또 하나의 목적인 기도가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몸을 가지고 이 땅에 계셨을 때 사람으로서 기도의 많은 본을 남기셨습니다. 또한 기도에 대해서 약속과 명령을 남기셨습니다. 예루살렘 지역모임에 있는 성도들이 사도들의 가르침을 굳게 지키면서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주님이 오실 때까지 지역모임의 기도는 향처럼 계속 올라갈 것입니다.

 

오늘은 지역모임에서 실시했던 교제에 대해서 인도를 받고자 합니다.

먼저 교제라는 말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겠습니다. 교제라는 말은 신약성경에 14번 정도 나타나 있습니다. 신약성경에서 교제라는 말이 최초로 나오는 곳은 행 2:42에 있습니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교제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공유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동일한 물건을 여러 사람이 소유한다는 의미입니다. 또 다른 곳에서는 참여한다는 말로 번역된 곳이 있습니다. 교제의 또 하나의 의미는 나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자기가 갖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준다는 의미로 나눈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어떤 곳에서는 교제라는 말이 서로 나눈다는 말로 해석된 곳도 있습니다. 자기가 갖고 있는 것을 나누어서 다른 사람에게 보충한다는 의미로서 말입니다. 한편에서는 동일한 것을 공유한다는 의미가 있는 반면, 또 다른 한편에서는 갖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과 나눈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공유와 나눈다는 말이 같은 교제라는 말 속에 들어있습니다. 그러한 사도들의 가르침 가운데서 지역모임에서 행하는 교제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9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이 교제라는 말에서는 지역모임에서 행하는 교제에서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지역모임 안에 있는 성도들의 교제는 "불러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더불어"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지역모임 성도들의 교제는 하나님이 불러서 이끌어내어 교제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지역모임 안에 교제는 인간의 노력이나 인간의 무엇으로 생긴 것이 아닌 것을 말합니다. 이 세상에는 인간의 조직에 의한 갖가지 교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지역모임 안에 있는 교제는 근본적으로 이 세상의 교제와는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 즉 하나님의 소명에 의해서 주어진 그 안에서의 교제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노력이나 추구에 의한 교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은 이 교제의 주체자가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지역모임 안에 교제를 생각할 때 하나님이 불러서, 즉 하나님이 소명해서 이루어지는 교제라는 것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지역모임의 교제의 본질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한 교제이기 때문에 그 하나님의 부르심의 뜻을 늘 추구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여기는 늘 인간의 의지나, 형편이나, 사정을 생각하는 것을 들여와서는 안된다는 것을 반드시 생각해야 합니다.

또 하나 지역모임 안에 교제는 예수 그리스도로 더불어 하는 교제임을 잊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지역모임 안에서의 교제는 지역모임에 속한 한 사람 한 사람이 주 예수 그리스도와 개인적으로 교제를 한다는 토대 위에서의 지역모임의 교제가 있습니다. 이 교제는 물리적으로 또는 육체적으로 지역모임 안에 몸이 있다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역모임에 모여 있는 지체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와 개인적으로 영적인 교제를 계속적으로 갖고 있다는 전제하에서 지역모임의 교제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기도로, 말씀으로, 성령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하고 있다는 전제하에서 지역모임의 교제가 성립이 되는 것입니다. 형제 자매들의 교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한 교제이며 예수 그리스도로 더불어 하는 교제인 것입니다.

 

요한일서 1: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이 말씀에 의해서도 성도들의 교제의 두 가지 면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도들이 지역모임 안에서 하는 교제는 어떤 것으로도 바꿀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교제인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과의 교제 가운데 있는 것이며 그것은 아버지와 아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교제입니다. 그것은 아버지에 대해서 알려주시는 그 아드님과 함께하는 교제입니다. 고린도전서에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교제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모임의 머리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와의 교제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일 1:3절에서는 아버지와 아들과의 교제에 우리들이 거기에 넣어졌다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교제가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의 머리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아버지와 아들과의 교제에 들어가 있다는 것을 여기서 나타내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또 하나의 지역모임의 성도들의 교제의 중요성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보내어진 사도들의 증거에 의해 나타난 것입니다. 성도들의 지역모임 안에서의 교제를 준비해 놓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어떻게 교제되는가를 구체적으로 나타낸 것은 사도들입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형제자매들의 교제에 대해서 또 하나를 말하고 있습니다.

고후 13:13, 2:1에서 성령의 교제라는 말을 언급했습니다. 형제 자매들의 교제를 계획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구체적인 교제의 모습을 나타낸 것은 사도들입니다. 그 교제를 복된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분은 우리 가운데 내주하시는 성령이십니다. 처음에 말씀 드렸듯이 형제 자매들의 교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한 교제입니다. 인간의 원함이나 노력에 의한 교제가 아닙니다. 따라서 이 교제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굳게 지키면서 교제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교제의 능력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의 성령이십니다. 따라서 성도들의 교제를 성령의 교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 교제가 행해졌겠습니까?

 

모임의 교제의 실제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고전 10:16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조금 전에 교제에 관한 의미의 두 가지를 보았습니다. 첫 번째는 공유하는 것, 즉 참여하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16절의 공유의 의미로서 "참여"라는 말이 두 번 나오고 있습니다. 여기 "참여"라는 말은 행 2:42 "교제"라는 말과 같은 의미입니다. 이 말씀은 주님께서 만찬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의 만찬은 한 떡과 한 잔에 많은 형제자매들이 참여하는 것입니다. 한 떡과 한 잔에 참여하므로 말미암아 한 사람 한 사람의 성도들이 주님 안에서 하나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여기에 지역모임의 교제의 실제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일 날 한 떡과 한 잔에 참여함으로써 실제로 주님 안에서 공유하고 있다는 것은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떡 떼는 만찬을 중요한 명령으로 우리들에게 명하셨습니다.

지역모임의 실제적인 교제의 두 번째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5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

이 말씀은 사도바울이 빌립보 성도들에게 증거한 말씀입니다. 여기에는 빌립보 성도들이 바울과 함께 복음을 전하는 일에 동참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여기도 교제라는 말이 공유한다는 말로서의 교제라는 말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교제 안에 복음을 증거해서 넓히는 일에 동참하는 것으로 교제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형제자매들은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공유로서 교제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교제(공유)의 실천이 나타나 있습니다. 나아가서 바울은 또 다른 교제라는 의미를 남기고 있습니다.

3: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여기에 바울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함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참여라는 말도 공유의 의미로서 참여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여기에 형제자매들이 교제할 때 공유하는 또 한가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공유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각 지체로서 그리스도의 소유입니다.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다른 지체가 고통을 받는다고 바울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 성도의 고통은 모임 전체의 고통을 말하고 있습니다. 한 성도의 기쁨은 모임 전체의 기쁨을 공유합니다. 여기에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의 교제라는 실천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한다는 말은 머지않아 나타날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한다는 것에 예표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을 때는 늘 앞으로 다가올 영광에 예표로써 고난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신 다음에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고 했습니다. 구약성경에는 늘 그리스도의 고난과 영광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영광을 받으시기 전에 고난을 받으셔야 했습니다. 동일하게 우리는 주님의 구속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앞으로의 영광에 동참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교제의 하나로 매 주일 한 떡과 한 잔에 공유하며 참여함으로 교제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또한 복음에 동참함으로 이 교제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함으로 교제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교제라는 말 속에 공유라는 의미의 말이 있었습니다. 교제라는 말 가운데 서로 나눈다는 의미가 있다는 것도 말씀드렸습니다.

 

13:16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 주기를 잊지 말라 이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

"서로 나눠주기"를 이라는 말에 나눈다는 말이 교제라는 말과 같은 의미입니다. 모임 안에 교제의 또 한 면은 자기가 갖고 있는 것을 서로 나눈다는 의미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성경에는 표현이 없지만 일어 성경에는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눈다고 했는데 가지고 있는 것은 영적이거나 물질적이거나 각자에게 주신 것을 의미합니다. 모임 안에서의 교제는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나눈다는 의미의 교제가 있음을 말씀드립니다. 이 주님이 주신 것을 나눈다는 것은 지역모임 즉 한 모임 안에서만 일어나는 한계는 아닙니다.

고후 8:4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고후 9:13 "이 직무로 증거를 삼아 너희의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것과 저희와 모든 사람을 섬기는 너희의 후한 연보를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13절에서는 아끼지 않고 서로 나눈다(일어 성경)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방인 지역교회가 예루살렘 지역교회의 궁핍함을 보고 선물을 보냈습니다. 그것이 교제의 실제적인 행위였습니다. 지역모임은 각각 독립해서 주님에게 각각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2,3장에서 일곱 지역교회에 대해서 주님께서 말씀하실 때 각 지역교회에 대한 마지막 말씀들 중에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을 들을찌어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모임 안에 있는 형제 자매들의 교제는 각자에게 주님이 주신 은사의 선물들을 서로 나누는 교제 가운데 있습니다. 그 교제는 한 지역모임 안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반복해서 말씀드리지만 지역교회는 각각 독립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을 들을찌어다"라고 명령했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이 주신 은사를 여러 지역모임이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1:6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미치도록 역사하느니라"

빌레몬서는 바울의 가장 개인적인 편지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6절에서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역모임 안에 있는 교제에 대해서 여러가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가르침을 사도 바울은 여러 서신에서 나타내고 있습니다. 빌레몬서의 가르침적인 것은 일체 언급되지 않습니다. 여기는 바울의 살아있는 믿음의 실천에 대한 교제를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종이었던 오네시모를 믿음으로 인도했습니다. 이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돌리기 위해서 편지를 썼습니다. 대단히 개인적인 내용처럼 보입니다. 모임 안에서 형제들 교제의 실제적인 실천이 이 편지 가운데서 나타나 있습니다. 어떻게 바울이 이 서신에서 교제의 실천을 말했는가를 시간 관계상 다 말할 수 없습니다. 바울은 성도들간의 교제가 가르침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빌레몬서를 통하여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사람에 노력에 의한 갖가지 교제가 있습니다. 우리들도 이 세상에 있는 자로서 이러한 갖가지 교제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지역모임 안에 있는 교제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교제였습니다. 이 교제는 이 세상에 있는 사람이 만든 교제보다는 훨씬 능가하는 교제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해서 이 교제에 넣어졌습니다. 이 교제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한 교제입니다. 이 교제는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하는 교제입니다. 이 교제를 돕고 인도하는 분은 우리 가운데 내주하시는 성령이십니다. 우리는 매주 한 잔과 한 떡에 참예함으로 이 교제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복음에 동참함으로 이 교제를 실제적으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또한 형제 자매들의 고난을 함께하므로 이 교제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 각자가 하나님께 받은 은사를 서로 나누므로 이 교제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서로 나눈다는 것은 한 지역모임 안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지역모임에까지 나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바울은 기도했습니다. "네 믿음의 교제가 산 교제로서 역사하도록" 이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교제에 동참함으로 그 교제가 지역모임 안에서 실천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15524일 강서모임 말씀집회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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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