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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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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령

에베소서 1 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언제 성령이 주어지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을 때에 성령이 주어집니다. 여러분께서 이미 잘 아신다고 생각합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무도 예수 그리스도를 주시라고 시인할 수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2 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여기에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는 누구나 다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의 주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드러나면서 알게되는 생명을 갖고 있습니다. 생명의 무게도 없고 생명이 있다는 자각도 없습니다. 나타남으로 말미암아 생명을 알 수 있습니다. 생명이 있으면 운동을 합니다. 생명이 있으면 먹습니다. 그 생명은 또 다른 생명을 출생시킵니다. 이와같이 생명은 나타납니다. 믿었을 때 어떤 분들은 격동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감동이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본에서는 많지 않지만 말을 들어보면 해외에서는 많은 분들이 믿었을 때 감동을 받는 듯 합니다. 그러나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신다고 되어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사람에 따라서 때때로 성령이 임하거나 했습니다. 신약시대에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령이 내주하십니다. 이것이 신약과 구약의 차이이기도 합니다. 다윗은 범죄해서 회개할 때 내 영을 새롭게 하소서 라고 기도했는데 그 고백이 시편 51편입니다. 신약에서 성령에 관한 증거가 요한복음 14 16,17절에 나와있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여기 보면 성령은 보혜사로서 모든 그리스도인 속에 계시겠음이라 했기 때문에 내주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의 또 하나의 역할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셔서 하나님께서 나의 것이다라고 하는 보증이기도 합니다. 일본에서는 부동산 매매를 하게 되면 그 매매에 대한 보증으로서 인지를 발행합니다. 부동산을 사거나 팔거나 할 때 인지를 통해서 확증을 합니다. 그것은 곧 매매가 성립되어서 물건을 산 사람의 소유가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그 인지로 말미암아 등기가 이루어지고 그 등기로 말미암아 권리가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와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해서 하나님의 것이 되었다는 보증으로서 그 인지와 같은 확증으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하나님의 소유다라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해서 성령은 믿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 무게가 또는 자각이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활동은 나타나 있습니다. 성령이 주어졌기 때문에 하나님과 교제를 하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성령이 없기 때문에 예배를 드릴 수가 없습니다. 믿음의 기쁨도 경험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또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능력이 주어집니다. 그 성령이 사도행전 1 8절에 의하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것은 사도행전의 모든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전에는 약한 사람이었지만 성령이 임한 이후에는 박해가 있던 감옥에 투옥이 되었던 기쁨으로 주님을 섬겼습니다. 베드로가 변했다는 것은 성령이 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은 권능, 즉 능력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성령을 소멸치 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령이 우리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데 성령을 소멸하게 되면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성령을 근심케 하게 되면 마치 손가락에 상처를 입으면 온 몸에 영향을 미치듯이 영향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에 성령을 근심케 말라는 그 말씀의 전부를 보게 되면 그리스도인들의 도덕적인 생활에 관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을 근심시키면 어떻게 되는가 하는 것을 문맥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또 개인뿐만 아니라 모임적으로도 성령을 근심케 하게 되면 모임이 제대로 기능할 수 없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4 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여기에 성령이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또 말씀을 생각나게 하신다고 했기 때문에 보혜사인 것입니다. 요한은 요한복음을 썼습니다만 예수 그리스도께 가르침 받은 것을 성령으로 말미암아 생각나게 함을 입어서 기록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은 노인이 되어서 요한복음과 요한서신서들을 기록했습니다.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의 주이고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증거하기 위해서 요한복음을 기록했습니다. 마태, 마가복음에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글이 많이 있지만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증거하기 위해서 앞에 나온 복음서들의 많은 부분을 생략했습니다. 예를 들면 비유도 생략했고, 산상수훈도 생략하고 그것을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마가복음에서는 주님의 활동을 종으로 기록했는데 요한복음에서는 그 종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 이런 부분에서 여러 부분들을 생략하고 요한복음에서만 나타내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했습니다.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기사들과 내용들을 대체적으로 다 알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서 요한복음을 썼던 것입니다. 요한복음에 있는 주님의 가르침의 요약은 13장부터 16장에 걸쳐서 있습니다. 마지막 만찬집회를 한 다음에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만찬이 끝난 다음에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 구원의 주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을 만찬을 떼면서 잘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주님이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그것이 요한복음의 순서입니다. 13장에서 만찬을 끝낸 다음에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래서 만찬이 끝난 다음에 만찬상을 그대로 두고 덕을 세우는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주님의 예를 따라서 그와 같이 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그런 흉내를 내었겠습니까?

바울은 사도행전 20장에 드로아에서 떡을 떼었습니다. 먼저 바울이 떡을 뗐습니다. 다음날 바울이 떠나야 했기 때문에 밤중까지 교제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덕을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유두고라는 청년은 말씀시간이 길었기 때문에 창문에서 졸다가 떨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것처럼 사도 바울도 그 예를 따라서 행한 것입니다. 그와 같이 한 이후부터 계속 모임들이 그러한 가르침을 지켰다고 생각합니다. 주님을 기억한 다음에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에는 사복음서 가운데 성령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복음서에는 성령에 대해서 좋은 기록들이 있습니다. 성령 그 자체에 대한 설명은 다른 복음서에서는 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령은 교사입니다. 생각나게 하는 보혜사(=선생이라는 뜻)입니다.

요한복음 15 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중요한 것은 성령께서 누구를 증거하는고 하니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성령 자신을 나타내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소위 말하는 오순절파라는 사람들의 가르침이 잘못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성령이 성령에게 영광을 돌릴 수 있음을 가르칩니다. 어디까지나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낸다는 것을 잘 기억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래서 성령파라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16 13,14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13절은 사도행전으로부터 요한 계시록까지의 설명입니다.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 들입니다. 진리는 가르침입니다. 12절을 보게 되면 제자들이 주님의 하시는 말씀을 그 당시에는 감당치 못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주님이 아무리 말씀하셔도 제자들이 이 말씀을 감당치 못하기 때문에 앞으로 성령이 오셔서 사도들을 통해서 서신서로 말씀을 남긴 것입니다. 성령은 자의로 말씀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씀하신다고 했습니다. 13절 마지막 부분에 장래 일을하는 부분을 저는 요한 계시록을 말한다고 봅니다. 물론 요한계시록 만이 아니겠습니다만 데살로니가후서에 나오는 불법의 사람 이 사람은 적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만 이것까지도 포함될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도 그렇습니다. 이것은 장래 일이었던 것입니다. 때때로 장래 일을 가지고 사람들이 변론을 하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왜 변론을 하는지 이상스럽습니다. 그리고 14절에 보면 성령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라고 했습니다. 성령으로 인도 받는 사람이 자기를 나타낸다면 그 사람은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는다는 것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영적인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냅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가르침입니다. 자기 자신을 나타내고자 한다면 성령으로 말한다고 해도 그 사람은 육에 팔려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말하는지 육으로 말하는지의 분별이 가능한 것입니다. 판단이 되더라도 그 사람을 육으로 판단하지 않는 것은 중요합니다.

15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리라 하였노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간에는 모순되는 일이 없습니다. 삼위일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은 완전하게 독립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들은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를 나타냅니다. 이것은 하나입니다.

요한복음 10 17,18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이 말씀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질 수도 있고 거절할 수도 있는 독립된 인격체인 것을 명백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스스로 목숨을 버리노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완전히 독립되어 있다는 것을 나타내었습니다. 그렇지만 계속 진행되는 것을 보게 되면 28~30절을 보게 되면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30절에서는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삼위일체에 관한 설명이 많이 있지만 삼위는 하나입니다. 그러나 독립되어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들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거기다가 하나님 아버지에게 보증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그 다음에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타남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삼위일체를 여러가지로 해석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하나님, 아들 하나님, 성령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셨고 우리를 지키시고 우리를 복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게 되면 오순절파 같은 성령파의 가르침에 휘둘리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안수로 말미암아 성령이 주어진다고 말합니다. 믿어도 안수를 받지 않으면 성령이 주어지지 않는다고도 가르칩니다. 그런 일은 없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에 대해서 알고 있으면 속임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영적인지 아닌지를 아는 것은 주님을 나타내는지 아닌지 자기를 나타내는지 아닌지를 통해서 분별이 가능합니다. 말씀을 말하지만 육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은 육으로 하는지 성령으로 하는지 아는 것입니다. 피차간에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믿음생활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2009년 10월 25 부산명륜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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