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Recent Post

theWord Bible Software

Category

Christ in The Song of Solomon (4)- “At His Table”
솔로몬의 노래에서 그리스도-“그분의 상(床)에”

짐 플레니건

이것은 아가에서 왕에 대한 다섯 번의 언급 중 두 번째입니다. 술람미 신부는 그분의 침실에서 그분의 임재의 은밀한 곳에 있었습니다. 이제 그녀는 왕실의 풍성함을 누리며 그분의 상에 앉았습니다. 솔로몬의 상은 성대했습니다. 소와 양과 염소와 사슴, 그리고 가금류가 날마다 풍부하게 공급되었습니다. 시바 여왕은 그녀에게 정신이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왕상 4:22-23; 10:4-7). 그녀는 그녀가 들었던 것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고 외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상은 그리스도 안에서 신자들의 공급을 희미하게 반영한 것일 뿐입니다. 그분 안에는 은혜의 풍성함, 긍휼의 풍성함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영광의 풍성함이 있습니다. 평화와 기쁨이 있고 원기를 회복하고 안식이 있습니다. 행복한 교제와 완전한 만족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풍성함은 참으로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러한 상에 앉아 왕의 은혜를 누리는 것이 얼마나 큰 특권입니까! 그것이 주님의 상입니다.

 

그러나 의심할 여지없이 그 장면을 그토록 완벽하게 만드는 것은 왕이 거기에 계시다는 것입니다. “왕이 그분의 상에 앉아.” 그분의 임재는 최고의 복입니다. 그 왕의 면전에서 잔치하는 것은 참으로 기쁨이며 이것은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신성한 공급을 감사하는 우리들의 기쁨입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어떤 대가를 치루고서 모든 것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분께서 자신을 주셨습니다. 그분께서 자신의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고난과 죽음으로 그분은 신부를 위해 그녀가 지금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을 얻으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의 이러한 고난과 죽음은 언제나 우리에게 기억될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그분은 다시 오실 때까지 그분의 백성들이 지켜야 할 기념 만찬을 제정하셨습니다. 그 마지막 저녁에 그분께서는 소수의 제자들과 함께 상에 앉으셨고 아주 단순하게 “나를 기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이 배반당하는 밤이었습니다. 그날 저녁에 빵을 잡았던 손은 곧 골고다에서 찔릴 것이었습니다. 서른 셋의 놀라운 시절이 저물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를 기뻐하시고 아버지의 기쁨을 위해 사셨습니다. 이튿날 그분은 생명을 버리실 것입니다. 그분의 피는 흘려질 것이며, 그분의 육체의 날들은 끝날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의 백성들은 결코 잊지 않을 것이며, 세상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최대한 단순함으로 그분은 그들을 위해 주어질 그분의 거룩한 몸과 그분의 피로 새 언약의 상징인 한 덩이의 떡과 잔을 소개하셨습니다.

 

이 사람들은 종종 그들의 선생님과 함께 상에 앉아야 했지만, 이것은 달랐습니다. 이것은 독특했으며 특별했습니다. 그분의 요청하셨던 대로 그들은 그분이 지시하신 방식으로 항상 그분을 기념할 것이며 함께 한 빵을 떼고 잔을 마시며,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하도록 안내하여 그분의 오랜 부재기간 동안 그 거룩한 기념은 계속될 것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단순한 방식으로 그분의 죽음을 선포할 것입니다. 신성한 위격은 그분의 성육신의 날들 동안 육체와 피로 세상에 계셨습니다. 이제 그분은 가셨고 그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매주 주님의 날이 오고 갈 때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하신 마지막 밤의 부탁을 이행합니다.

 

만찬은 귀중한 특권입니다. 우리는 지금도 그분이 부재 중이지만 그분의 임재 안에서 우리가 함께 앉아 예배하고 기념합니다. 어떻게 우리가 진정으로 기억하고 경배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아가에서 신부처럼 그 나드의 향기같이 우리의 예배가 올라갈 때의 복된 기회입니다. “왕께서 자신의 상에 앉아 계실 때에 내 나드 향유가 그것의 향내를 풍기는구나.” 우리 성경에 나드에 대한 다섯 가지 언급 중에 세가지가 아가서에(1:12; 4:13,14) 하나는 마가복음 14:3에 있으며, 그리고 다른 하나는 요한복음 12:3에 있습니다.

 

나드는 가장 귀중한 향수였습니다. 그것은 주로 아라비아와 히말라야의 산기슭의 인도에서 자라는 식물에서 추출한 액체와 수지(樹脂)였습니다. 단어의 어원은 “나드”(히:D]r]nE(네르드); 헬: navrdo"(나르도스)이지만, 접두사 “스파이크”의 중요성에 약간의 불확실성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순수한 진품’을 의미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은 그것이 “액체”를 의미한다고 제시합니다. 어느 쪽이 사실이든 그 나드는 요한이 말한대로 “매우 값진”(요 12:3) 것이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것은 밀봉된 설화 석고의 병이나 항아리에 넣어졌고 사용하는 순간까지 그대로 보관되었다가 그 병을 깨트렸을 때 향수는 스며 나와 방안을 향기로 가득 채웠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귀중한 상품이었고, 우리가 그분을 기억할 때 구속받은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예배의 가장 적합한 상징이었습니다.

 

주목할 흥미 있는 것은 비록 요한이 우리 주님의 마지막 저녁에 다락방 사건에 대한 그의 스물 한 개의 장들 중 다섯 장을 할애할지라도, 그는 주의만찬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기록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실질적인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다른 세 복음서 저자들이 이미 자세한 내용들을 기록했고, 바울도 고린도전서 11장에서 이 때를 기록했습니다. 또한 요한이 첫 세기의 말에 기록했기 때문에 신자들은 도처에서 이러한 진리를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요한이 주의만찬을 언급하지 않을지라도 그가 우리에게 두 가지 다른 만찬들의 설명을 제공합니다(요 12,13장). 아마도 믿는 자들은 이러한 두 만찬의 자리에서도 주의만찬을 먹기에 매우 적합했을 것입니다.

 

이들 두 가지 중 베다니의 가정에서 만찬은 아가에서 우리의 본문과 그렇게 매우 흡사합니다. 왕은 그분의 상에 앉아 계십니다. 나사로는 살아난 사람으로서 주님과 함께 조용히 앉아 교제를 누리고 있으며, 마르다는 불평 없이 봉사하고, 마리아는 그녀의 감사의 마음을 쏟고 있습니다. 그와 같이 함께 앉아서 조용히 그분을 기억하는 것은 주(週)의 첫날에 우리의 특권과 책임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말을 많이 하기를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한 경우에 우리는 확실히 우리의 필요를 말하지 않을 것이며, 심지어 우리에게 주신 복들에 몰두하지 않고 우리가 사랑하는 그분과 함께 할 수도 있습니다. 그와 같이 경건함으로 기념하는 것은 하늘까지 귀하게 올라가는 향기로 집을 가득 채울 것이며 우리는 “왕께서 자신의 상에 앉아 계실 때에 내 나드 향유가 그것의 향내를 풍기는구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