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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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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 in The Song of Solomon: “Under His Shadow”
솔로몬의 노래에서 그리스도: “그분의 그늘 아래”(5)

짐 플레니건

솔로몬의 노래는 주로 사랑하는 자와 그분의 신부인 두 사람 사이의 대화에 있습니다. 그들은 때때로 자신들의 감사와 애정의 표현을 서로 거의 경쟁하며 번갈아 서로의 탁월함과 아름다움을 칭찬합니다. 이런 형태로 2장이 시작되고, 첫 번째 말하는 자의 정체에 관해서 나뉘어져 있는 견해는 그리스도인들과 유대인 대다수 해설자들은 “나는 사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로구나”라고 말하는 자가 신부인 것을 일반적으로 동의합니다. 

 

“장미”(수선화-개역성경)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기원이 불확실한 것 같습니다. 그것은 초원에 사프란이나 가을철 크로커스를 의미하거나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어쩌면 실제로 장미일 수도 있습니다. “샤론”은 “평원”을 의미하고 욥바에서 가이사랴까지 해안을 따라 약 30마일에 걸쳐 중앙 이​​스라엘의 산간 지방과 지중해 사이에 뻗어 있는 해안 평야의 이름입니다. 그러나 초기에는 다볼 산과 갈릴리 바다 사이에 놓여있는 더 작은 샤론의 평원이었고, 이곳은 아마도 신부의 집이 수넴 가까이에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의미하고 있는 평야가 무엇이든 그 상징성은 분명하고 확실히 아름답습니다. 매력적인 겸손으로 술람미 여인은 거창한 주장을 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그녀 자신의 평가에서 샤론의 작은 꽃처럼 또는 계곡에 겸허하게 피는 백합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사랑하는 자는 그녀를 다르게 봅니다. 그에게 그녀는 딸들 중에 가시덤불 사이에 백합 같으며 여자들 사이에 가장 아름답습니다. 그녀는 신랑에 대한 아낌없는 칭찬으로 그녀는 자신을 칭찬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겸손은 참으로 신자에게 가장 바람직한 덕목입니다. 결국 우리 자신에게는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지만 사랑스러운 분이 우리 안에서 그분 자신이 창조하신 아름다움을 보신다는 사실에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분 안에서 우리는 예전과는 아주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녀는 그분을 찬양함으로써 그분의 찬사에 응답하고, 그분을 숲 속에 사과나무에 비교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허세를 부리는 잎이 있을 수 있지만, 그분에게는 그들이 가지지 못한 열매와 향기로움이 있습니다. 사실 그것은 비교가 아니라 대조입니다. 다른 것들은 평범합니다. 그분은 다릅니다. 그분은 뛰어납니다. 시편 45편에서 사랑받는 자에 대해 “왕은 사람들의 자녀들보다 더욱 아름다우시니”라고 말합니다.

 

그 가지들이 뻗어 풍성하게 덮인 나무들의 형상은 그녀가 “내가 그분의 그늘 아래 앉아 크게 기뻐하였고 그분의 열매는 내 입맛에 달았도다”라고 외쳤습니다. 그녀가 그분 안에서 무엇을 찾았는지 그분이 그녀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관찰하십시오. “내가 그 아래 앉아”는 안식이 있습니다. “그분의 그늘 아래”는 피난처가 있습니다. “크게 기뻐하였고”는 환희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열매는 내 입맛에 달았도다”는 원기를 회복시키는 상쾌함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얼마나 안식이 있겠습니까! 수많은 지친 영혼들을 먼저 그분에게 이끌었던 것은 안식에 대한 약속이었습니다.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얼마나 많은 가련한 죄인이 죄의 짐 아래서 양심의 끔찍한 중압감으로 고생하다가 구주 안에서 안식을 찾게 되어 기뻐했습니까! 그것은 단지 범죄한 양심의 가책에서 안식이었지만 그분은 우리를 삶의 어려운 상황에서의 안식, 행로의 슬픔 가운데서 안식인 하나님의 평화 안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분 안에 안식함으로 앉습니다.

 

오 이렇게 놀랍고 감미로움이 머무는, 
구세주의 발 앞에 안식하고 있습니다 
그분을 믿고 나는 만족합니다, 
내가 십자가 안에 안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의 그늘 아래” 피난처가 있습니다.  한 때 우리는 진노와 심판에 얼마나 노출되어 있었습니까! 하나님의 진노가 실제로 우리 위에 머물러 있었던 것을 알았을 때 그것은 얼마나 두려운 발견이었습니까! 그것은 여기저기로 흐트러뜨려지는 구름 같았고 우리는 아무데도 숨을 곳이 없었습니다. 거기에는 선한 일들이나 개혁이나 심지어 종교 안에도 피난처는 없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우리의 죄를 정죄한 그 두려운 거룩 앞에서 드러나고 벌거벗은 채로 남겨두었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민족이 미래에 “한 사람이 … 숨는 곳 같이 되고”(사 32:2)를 배울 때까지 말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피난처가 있었습니다. 그분 안에서 폭풍을 피할 은신처가 있었고, 우리는 단순한 믿음으로 그분의 그늘 아래 앉았습니다. 더위는 그늘에 스며들 수 없습니다. 나무는 우리를 위해 더위를 차단하고 견디게 했습니다. 골고다에서 그분은 모든 것을 지탱하였으며 지금 우리는 그분 안에서 결국 보호받고 안식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큰 기쁨”의 환희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인의 행로는 비참한 길이며 부정과 금지의 길이며 기쁨이 없다고 우리에게 말했습니다. 그들은 얼마나 그릇되었습니까! 곧 우리는 진정한 기쁨이 그리스도 한 분 안에서만 찾아낼 수 있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얼마나 다양한 기쁨입니까. 죄 많은 과거가 완전히 도말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기쁨입니다. 그것은 미래가 보장되는 것을 알고 있는 기쁨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것은 우리가 사랑하는 분과 매일의 교제를 유지하는 기쁨입니다. 그것은 바울이 말한 대로 마케도니아 신자들과 함께 있었던 것처럼 가난과 고통이 있는 때에도 “풍성한 즐거움”입니다(고후 8:1-2).

 

어떤 원기를 회복하는 것이 거기에 또한 있습니다. “그분의 열매는 내 입맛에 달았도다.” 인간은 불순종으로 에덴의 열매를 박탈당했지만 그 달콤함은 우리의 사랑하는 분 안에서 그분을 통해 우리에게 회복되었습니다. 시간과 영원을 통해 그분의 영광에 대한 새로운 발견과 그분 자신의 새로운 계시에 대한 지속적인 즐거움이 있을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아직 그분을 보지 못했지만 그분과의 교제에는 감미로움이 있습니다. 이것은 마침내 우리가 그분의 임재로 옮겨졌을 때 결코 영원토록 그분과 결코 헤어지지 않을 때 우리의 것이 될 기쁨을 미리 맛보는 것입니다. 오 그것의 달콤함!

 

오 이 사랑을 살짝 엿본다면 
너무나 신성한 달콤함인가 
무엇일까요, 오 주여, 보다 높이 
주님을 만남으로 기쁘게 하는 미소인가?

 

주님과 대면하기 위해 
주님을 완전히 닮음을 입고, 
또한 놀라운 은혜의 모든 주님의 길들 
끝없는 세월을 통하여 선포합니다.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