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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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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loyd Cain

칭의의 의미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화평을 누리는도다”(롬 5:1, JND).

복음에는 구원, 칭의, 속죄, 구속, 용서, 화목, 성화. 중생 등 우리들이 연구할 가치가 있는 위대한 단어들이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칭의는 - 의롭다 함, 의로움, 정의, 그것의 동족어 형태와 같이 “하나님의 의”(로마서 1:17, 3:20, 3:25, 10:3)라는 표현은 이러한 단어들 중의 하나입니다.

 

솔로몬이 “사악한 자를 의롭다 하는 자와 의인을 정죄하는 자는 둘 다 주께 가증한 자니라”(잠언 17:15)고 썼을 때, 그는 칭의가 정죄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로마서 8:1에서 바울은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정죄함이 없나니”라고 썼습니다. 우리가 로마서 8:33-34로 가면 우리는 바울의 위대한 질문 몇 가지를 봅니다. 그는 “누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들을 무슨 일로 고소하리요? 의롭다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라고 묻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 칭의가 정죄를 제거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는 결론을 다시 내립니다. 의롭게 된 사람은 모든 혐의에서 면제됩니다!

 

칭의는 법정 용어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선언된 상태라고 정의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의롭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의롭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법정 의미에서 의로움입니다. 그것은 주관적인 경험이 아니라 객관적인 관계를 의미합니다! “칭의는 선언적인 행위이며 사람이 가공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선언된 것입니다”라고 말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칭의는 우리에게 제기될 수 있는 모든 혐의에서 영원히 깨끗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죄책감의 모든 책임을 제거하는 반면 용서는 형벌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구속은 해방의 결과이고, 거듭남은 우리 안의 새로운 생명을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칭의의 소식

바울은 그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는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믿음에서 믿음까지 계시되어 있나니”(롬 1:16-17)라고 말했습니다. 문맥은 신성한 속성으로서 하나님의 의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분께서 그에게 의롭다고 선언하실 때 믿음의 시기와 믿음의 근거에서 신자에게 부여하시는 의로운 신분을 다루고 있습니다. 바울은 안디옥에서 이 칭의의 소식을 전파하면서 “또 모세의 율법으로는 너희가 의롭게 되지 못하던 모든 일에서도 믿는 모든 자가 그분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다는 것이라”(행 13:39)라고 선언했습니다. 그의 메시지는 행위와는 별개로 오직 믿음에 의한 의롭게 된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믿음은 행위가 아닙니다. 믿음은 칭의의 조건이지만 칭의의 근거는 공적(功績)이 아닙니다. 우리는 믿음 때문에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됩니다. 믿음에 따라 우리에게 전가되는(간주되는) 그리스도의 개인적인 의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분이 생활하셨던 방법 때문에 의롭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그분께서 죽으셨기 때문에 의롭게 되었습니다.

 

칭의의 방식

기도하고 회개하는 세리에 관한 구절은 우리에게 칭의에 관하여 많을 것을 가르쳐 줄 수 있습니다(눅 18:9-14). “그가 멀리 떨어져 서 있었다”고 인식했습니다. 그는 “그의 가슴을 치며” 그의 타락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는 화해의 교리를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기도할 때 “하나님이여, 죄인인 내게 긍휼을 베푸소서”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 자비를 늘리기 위한 근거 없는 자비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진정으로 “하나님이시여 화목하게 하사 죄인인 저에게 긍휼히 여기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이 사람이 의롭게 되어 자기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세리는 칭의가 화목제 희생의 근거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로마서 3:20-26을 보면 칭의의 기초에 대한 교훈을 얻습니다. 하나님의 의는 (즉 그분이 죄인에게 나누어 주시는 의로운 신분)

(1) 율법은 별개로 하고(3:20-21). 그렇습니다.
(2)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았습니다(3:21). 바울은 4장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함을 입증합니다. 아무도 율법이나 어떤 다른 행위들로 이제까지 의롭게 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3) “모든 사람에게”. 은혜의 제공자나 은혜의 근거가 되는 공급에는 어떤 한계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4) “믿는 모든 사람에게”. 모든 사람에게 제공되는 제안은 차별 없이 오직 믿음으로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칭의
(5) “그분의 은혜로 값없이” 제공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6)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을 통해서”입니다. 그렇습니다.
(7) “그분의 피에 의한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의 기초 위에 있습니다. 갈보리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다만 믿음의 근거로 의롭게 되고 구약에서의 죄들을 “하나님께서 참으심을 통해 과거의 죄들을 사면하심으로써” 할 수 있었습니다. 구약 성도들은 본질적으로 신용으로 구원받았습니다. 갈보리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믿는 자를 의롭게 만드는 이가 되려 하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분의 의로우시면서도 의롭다 하시는 분이라는 역설은 이 조항에 의해 해결됩니다. 이것이 회개한 세리가 이해한 것입니다.

 

칭의의 표현

우리는 칭의가 법정 단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오직 믿음에 근거하여 신자에게 전가된 의로운 입장을 가리킵니다. 그것은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용되는 용어를 사용하자면 “실용적인” 용어가 아니라 실제적인 단어입니다. 그러나 의롭다고 인정받은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의의 열매들로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양이 되기를 구하노라”(빌 1:11). 할 수 있는 의로움이 선언되었습니다. 우리의 행위는 우리의 위치(상태)에서 동떨어진 것으로 결코 간주될 수 없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에 있는 도덕적인 문제를 바로잡고, 또한 고린도 범죄의 목록을 나열하며 그는 말했습니다, “너희 중에 이 같은 자들이 더러 있었으나 너희가 우리 하나님의 영을 통해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씻기고 거룩히 구별되어 의롭게 되었느니라”(고전 6:11). 법적으로 의롭다고 선언 받은 사람들이 그들의 행실에서 의로움을 나타내지 않는 것은 큰 모순입니다.

 

야고보는 위치적인 것과 실제적인 것 사이에서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서신은 “행동하는 믿음”이라고 불렸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5:1-5에서 우리에게 칭의의 복된 결과를 보였습니다


(1) 우리는 하나님과의 화평합니다. (2) 우리는 믿음으로 이 은혜로 들어갑니다. (3)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합니다. (4)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에 부은바 되었습니다. (5) 성령의 성실함과 인치심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의의 진리 안에서 기뻐하고 있는가요? 당신은 의를 나타내고 있는가요?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