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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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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5. 24. 10:19 횃불/1997년

말씀의 올바른 해석

 

4. 문화의 중요성

시대와 생애, 문화와 신분의 중요성, 성경이 비판하는 법과 관습의 배경은 매우 중요하다.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안다고 해서 기록된 말씀의 모든 부분을 다 이해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아브라함의 족장시대가 그리스도의 사도시대와 다르며, 특히 오늘날 서구 세계와는 다르다는 것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 장에서는 성경시대를 이해하는 것이 성경의 진리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성전

예수님께서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19)라고 하신 말씀을 유대인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적대자들을 분노케 했으며 예수님을 고소하는데 사용되었다.

솔로몬은 원래의 성전을 7년에 걸쳐 건축했다. 이 성전은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으로 쓰였던 모리아산에서 파온 다듬지 않은 거친 돌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수백년 전에 아브라함은 이곳에서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기 위해 단을 쌓았다.

때가 차매 솔로몬의 성전은 파괴되었고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이 다시 성전을 건축했다. 이 새 성전은 훨씬 더 빈약한 구조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나서 헤롯왕이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려고 성전을 이전보다 더욱 화려하게 지어주었다. 유대인들은 이 에돔 출신의 전제군주를 의심하고 있었다. 헤롯이 자신들의 예배처를 모독할지 모른다는 유대인들의 의심을 풀어주기 위해 헤롯은 새 성전 건축을 시작하기 전까지 기존 건물의 돌멩이 하나도 옮기지 않을 것을 약속했다. 더군다나 헤롯은 천명의 제사장에게 목수와 석공의 일을 가르쳐서, 성별되지 못한 사람들이 거룩한 곳을 더럽히지 못하도록 해 주었다. 공사는 B.C. 20년 겨울에 시작되었다 지성소를 짓는데만 1 6개월이 걸렸다. 성전 뜰과 회당 공사는 헤롯이 죽은 뒤 오랜 후인 헤롯 안디바 시대까지 계속되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을 방문하실 때마다 성전을 재건축하고 있는 인부들을 보셨다. 주님의 몸을 뜻하는 성전을 사흘만에 다시 세우리라는 놀라운 말씀을 예수님께서 하셨을 때 유대인들은 벌써 46년 이상의 공사기간이 걸린 헤롯 성전을 생각하고는 이에 항의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직전에 이번에는 헤롯 성전을 가리키면서, 성전이 무너질 것을 예언하신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 성전이 완전히 파괴될 것을 말씀하셨다. 그럴 가능성은 절대로 없어보였다. 이 성전 공사는 주님 십자가 지신 후 32년간이나 계속되었다. 이 성전은 완공된지 정확히 8년 후 완전히 파괴되었다. 예루살렘을 공격하는 로마 군인들에게 티토 장군은 이 놀라운 건축물을 부수지 말라는 엄명을 내렸다. 그러나 황제의 아들이며 로마의 장군인 이 티토도 예수님의 말씀을 취소시킬 수는 없었다. 격렬한 전투에서 성전 자체가 전투장이 되어버렸다. 불이 갑자기 붙게 되고,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불길 속에서 금장식이 돌 사이로 녹아내렸다. 로마 군인들은 이 돌에 붙은 금을 채취하기 위해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돌들을 따로따로 분리시켜야 했다. 즉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았던 것이다.

 

세리

마태와 삭개오는 세리였다. 예수님 당시 세리는 유대인들 사이에서 혐오와 증오의 대상이었다. 세리들은 세금을 거두어 로마인이나 분봉왕들에게 바쳤다. 세리라고 부르는 것보다 어떤 사람을 더 나쁘게 말하는 명칭은 없었다. 로마인들은 세금 징수라는 미움받는 직책을 하청주었다. 거두어들인 돈은 일정 액수가 될 때까지 모아두었고, 세리들은 이 금액을 세무소에 넘겨줄 책임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세리가 이 금액보다 얼마나 더 거두느냐 하는 것은 그에게 맡겨져 있었다. 그것이 세리의 보수이기도 했다. 세리들은 정해진 세금보다 더 많이 백성들에게 거두어서 부자로 살았다. 그래서 세리들은 매국노, 세금 징수원, 악덕 관리로 미움을 받았다.

예수님이 마태를 제자로 부르실 때 마태는 세관에 앉아 있었다. 마태가 있던 세관은 갈릴리 호수 근처 아마도 부두가에 있었던 것 같다. 그 곳에서 마태는 갈릴리 호수에서 잡은 모든 물고기에 세금을 매기고, 또 싣고 들어오는 모든 상품에도 세금을 매겨 거두어 들이고 있었을 것이다.

갈릴리 호수 주변 지역은 틀림없이 마태와 같은 세리들로 가득찼을 것이다.  무역로가 여기로 모여들기 때문에 이 전략지점에서 세금이 거두어졌고, 아마 마태는 헤롯 안디바의 세리였던 것 같다.

그런데 세리에도 두가지 직종이 있다.  즉 보통 세금을 거두는 직책과 관세를 거두는 직책이 그것이다.

예수님은 많은 유대인들로부터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는 비난을 받았다. 자존심이 있는 유대인은 결코 세리와 친구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님 당시의 시대상에 권위있는 학자인 알프레드 에더샤임 박사는 마태의 부르심 받는 장면을 이렇게 묘사했다.

그의 생애를 영원히 결정지은 그 운명의 날이 오기 오래 전에 마태는 그의 마음 속에서 이미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있었다. 다만 마태는 예수님께서 자기를 알아주기를 감히 바랄 수도 없을 뿐이었다. 하물며 제자로 불러주시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때가 온 것이다. 단 일초도 생각해 볼 필요가 없었다. 예수님께서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을 때, 마태의 모든 과거는 현재의 하늘의 축복 속에 모두 삼켜져 버렸다. 마태는 예수님께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의 영혼은 이 예기치 못한 은혜와 사랑 앞에서 아무 말 못하고 놀라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마태는 일어서서 세관을 떠나 예수님을 따랐다.”

아마 삭개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장례

예수님께서 나를 좇으라하셨을 때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라고 대답한 사람이 있었다.

유대인들은 장례가 가장 중요한 첫번째 의무였다. 더군다나 장례식은(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매우 많은 비용이 들었으며 유족들은 까다로운 관습법 때문에 빛을 내서라도 식을 치러야 했고 이 때문에 커다란 재산상의 손실을 입기도 했다

수많은 친척, 친구, 아는 사람들이 모여들고, 이들에게 음식을 대접해야 했다. 멀리서 온 손님, 문상객들을 위해 숙소와 식사를 마련해야 하며, 죽은 자를 위한 집회와 대접은 40일 가량 지속되기도 했다. 제사장들과 의식을 진행해 준 사람들에게 후한 사례도 해야 한다. 예수님 당시에는 이같이 장례를 치러야만 고인에 대한 의무를 성실히 한 것으로 생각했다. 반대로 이 의무를 소홀히 한 사람은 불효 자식, 믿을 수 없는 사람으로 낙인 찍혔다

그러므로 위에 나온 사람은 어쩌면 그에겐 너무 당연한, 지당한 것을 말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아버지를 장사 지낼 때까지 예수님 좇는 것을 미루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아무리 시대적 요구이고, 사회적 공감대라 하더라도 관습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방해할 수 없다

 

맷돌을 갈다

예수님께서는 인자의 임함이 매우 신속하며(사람들을) 분리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을 매를 갈고 있는 두 여자”( 24:41)를 떼어 놓는 것으로 표현하셨다. ‘는 손으로 돌리는 맷돌이다. 곡식을 윗쪽 맷돌의 한가운데 있는 구멍으로 넣고 손잡이를 돌리면 곡식이 갈아져서 두 개의 맷돌 사이로 나온다.  보통, 여자들 둘이서 서로 마주보고 앉아서 매를 가운데 놓고 일했다. 한 여자가 두 손으로 맷돌 손잡이를 잡으면 다른 여자는 한 손으로 곡식을 넣고, 한 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함께 돌렸다. 손잡이가 둥글게 돌아감에 따라 한 번만 힘을 가하면 되었다. 이것은 여자들의 일이고 남자들은 결코 하지 않았다. 이것은 지루하고 피곤한 일이어서 노예나 가장 낮은 하녀가 하는 일이었다. 전쟁 포로들에게 자주 시키기도 했다. 블레셋 사람들이 삼손을 사로잡아 시킨 일이 바로 이것이었다.

두 여인이 한 맷돌을 돌리다 하나는 휴거시 데려가고 다른 여인은 남는다는 주님의 말씀은 매우 현실감 있는 말씀이다. 두 여인이 맷돌 손잡이에 손을 같이 올려놓고,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맷돌을 사이에 두고, 힘을 합쳐 일을 하다가 갑자기 한 명이 없어져 버리고, 한 명은 놀라서 그 자리에 혼자 앉아 있는다는 것이다.

 

엘리야가 아합왕 앞을 달려가다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지들과 대결을 벌인 후 엘리야는 이상한 일을 하나 한다. “저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왕상 18:46)

왜 엘리야는 이런 일을 했을까? 엘리야가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이스라엘왕 아합과 그 아내 이세벨의 후원을 받은 바알 선지자들을 갈멜산에서 죽임으로써, 아합왕은 그 신하들 앞에서 부끄러움과 좌절을 겪었다. 그 결과 잘못하면 반역이나 반란이 일어날 수도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권세는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것이다.”하나님게서 원하신 것은 반역이 아니라 회개였다. 그래서 엘리 야는 아합왕에게 자신감을 주고, 백성들에게는 왕에게 반역하지 않도록 경고해야 했다. 아합왕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시간에, 자신의 방식으로 처리하실 것이다. 그 동안 아합왕에겐 이 갈멜산의 교훈을 받을 시간적 여유가 주어져야 한다.

엘리야는 완전히 낮추어진 독재자를 위해 그에 대한 존경심을 회복시켜 줄 전형적인 동양적 방식을 택한다 즉 허리를 동이고 왕의 마차 앞을 달려갔다.  이것이 당시의 관습에 따라 아합의 왕위에 존경을 표하는 행위였다.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항상 그들 혹은 그들의 말 앞에서 달려갈 사람을 고용했었다. 잘 달리기 위해 허리를 동이고, 걸리적 거리지 않도록 늘어진 옷을 허리 춤에 넣었다. 갈멜산에서 이스르엘 평원까지 거리는 최소한 12마일은 된다. 위풍당당한 선지자 엘리야는 이 12마일이나 되는 거리를 눈을 못뜨도록 내리는 비를 맞으며 아마도 2시간 정도 걸려서 달려갔을 것이다. 물론 하나님의 손이 엘리야와 함께 했음은 두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엘리야의 힘으로 어찌 이런 일이 가능했겠는가.

 

동물들의 지혜

W.M. 톰슨은 어느 날 저녁 소와 나귀떼가 낮에 초원에서 풀을 뜯다 저녁에 우리로 돌아오는 광경을 목격하고는 이사야 1:3,4의 말씀이 사실인지 알아보고 싶었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1:3). 이 짐승떼는 성문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흩어지기 시작했다. 톰슨은 말하기를, 모든 소들은 자기 주인 집으로 가는 길을 정확히 알고 있었으며 단 한 마리도 길을 잃거나, 구불구불하고 꺾어지고 교차로가 있는 골목길을 혼동하지 않았다. 나귀 역시 모두 주인의 구유로 곧장 나아갔다. 톰슨은 그 중 한 마리를 관찰해 보았는데 그 나귀는 항상 주인의 집으로 들어가서 자기 자리를 찾아 들어가 저녁먹이를 먹었다.

이사야 1:3,4은 사실이었고 그 교훈은 분명하고도 슬픈 내용이었다. 즉 동물들이 그 주인들보다 더 현명했다. 사람들은 그 주인이신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며 하나님을 떠나 반역하여 하나님을 격노케 했다.  성경의 문화나 관습을 알면 어렵거나 애매한 구절을 잘 이해하게 될 뿐 아니라, 우리 주님께서 실제의 시간과 장소에서 우리처럼 여러가지 방식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사셨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1997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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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