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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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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1. 19. 21:51 횃불/1999년

말씀의 올바른 해석(24)

성경개관 ― 구약 (2)

죤 필립스 지음

선구자들 ―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는 역사적으로 보면 구약의 마지막 부분이다.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포로생활의 종결과 관련된다.

70년의 유형생활이 지나자, 바벨론 제국이 페르시아 제국에게 자리를 넘기고, 페르시아의 키루스왕이 관대하게 자기 영토에 있는 모든 포로들을 풀어주자, 유대인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이 역사적 전개로 선구자들이 일어난다. 포로로 잡혀갈 때처럼 귀환도 세 단계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소수의 유대인만이 반응을 보이고, 대부분은 바벨론에서의 삶을 즐긴다. 스룹바벨, 느헤미야, 에스라 3명의 인도를 받아 유대인의 남은 자들이 조상들이 살던 땅으로 돌아와 황폐한 땅을 다시 건설하기로 결정한다.

에스라는 아론 제사장 가문의 율법학사였다. 에스라서는 (1) 성전 벽의 재건 ― 다윗 가문의 왕손인 스룹바벨에게 맡겨진 일과 (2) 성전 예배의 재건 ― 에스라 자신이 선구자적으로 개척한 일을 기록하고 있다.

느헤미야는 정치가였다. 스룹바벨이 성전을 완공하는데 20년이 걸렸다. 60년 후 에스라가 종교적 부흥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도착하고, 12년 후 페르시아 최고위 관직을 가진 유대인인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러 온다. 느헤미야는 거의 불가능한 작업을 단 7주일 동안에 끝낸다.

에스더서는 포로생활의 성격을 다룬다. 유대인은 바벨론에서 좋은 대접을 받고 높은 관직에 오른다. 대부분은 부자로 살고 최소한 잘 산다.

유배생활이 끝난 후 대부분의 유대인은 바벨론의 안락한 집에 그대로 남고자 한다. 즉 팔레스타인의 위험과 고난을 감행하고자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위험 속에서 살고 있다. 전제 군주의 변덕 때문에 그들의 위치는 하룻밤 사이에 번영에서 위험으로 바뀔 수 있었다.

에스더서는 이 사실을 상기시켜준다. 하나님의 이름은 이 책에서는 암호처럼 숨어있고 언급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건의 배후에서 역사하시고 사람의 문제를 다스리시고 자신의 주권적 뜻을 이루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동화되지 않도록 핍박을 허락하셨다. 또 하나님께서 섭리하셔서 유대인이 멸절되는 것도 허락지 않으셨다. 에스더서는 인류의 민족을 전체적으로 다스리시면서 히브리 백성의 운명을 특별히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통치를 보여주는 매력적인 책이다.

 

시가(詩歌) ― 욥기, 시편, 아가, 잠언, 전도서

5권의 책은 히브리 백성의 지혜의 정수(精髓)를 보여준다.

욥기는 알려지지 않은 어떤 구원받은 사람이 썼다. 지상에서 고난받은 성도를 들라면, 아마 욥이 그 대표적 인물이 될 것이다. 욥은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사단의 손 안에 있으며, 둘째 사람의 손 안에 있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다시 말하면 욥은 재앙, 비관, 회개에 부딪히게 된다. 고난의 원인과 결과에 이같은 통찰력을 주는 책은 없다.

시편은 노래하는 사람이 썼다. 시편의 절반 가량을 기록한 다윗은 이스라엘의 노래 잘하는 사람으로 불리웠다(삼하 23:1). 또한 모세, 솔로몬, 히스기야가 썼고 기타 무명의 시편도 있다. 모두 깊은 감정적 경험을 노래하고, 기쁨과 슬픔, 절망과 승리, 희망과 공포, 사랑과 미움, 평화와 불안 같은 인간 경험의 높은 곳과 낮은 곳이 나와 있다. 게다가 모든 시편은 예언적 요소가 있고 어떤 것은 특히 메시아를 예언한다.

시가서 중 셋은 현자(솔로몬)가 썼다. 각각 사랑과 지혜의 배움과 인생을 다루고 있다.

아가서는 아마도 솔로몬이 젊었을 때 쓴, 술람미 여인과의 만남을 기념하는 사랑의 노래이다.

잠언은 자연, 종교, 심리, 인간관계, 통치, 부모의 권위 등등의 주제를 다룬 솔로몬의 경구적인 말들로 이루어져 있다.

전도서는 아마 솔로몬이 잘못 낭비한 생애의 마지막에 썼을 것이다. 세상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의 관점과 전망이 나타나 있고 냉소, 낙심, 불만으로 가득차 있다. 이 세상은 사람의 마음의 끝없는 욕망을 채울 수 있을 만큼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것, 오직 하나님만이 그러하시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언서 ― 이사야에서 말라기까지

예언서는 보통 대선지서와 소선지서로 구분한다. 이는 선지자들이 쓴 책의 양을 기준으로 나눈 것인데, 자의적이긴 해도 편리한 면도 있다.

 

대선지자들 4명의 대선지자가 있는데 그 중 3명은 히브리 민족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다니엘만 좀 더 넓은 시야를 보여준다.

우선 이사야의 관점은 예수라는 단어에 맞춰진다. 이사야라는 이름도 예수님이 구원하다라는 뜻이다. 그는 앗시리아가 침략해 오는 폭풍의 시대를 살면서 이스라엘과 유다에 예언했는데 이스라엘에 대한 자신의 예언이 앗시리아 군이 이리떼처럼 몰려올 때성취되는 것을 목격한다. 그는 또한 유다에 대한 위협이 녹아 없어지는 것도 목격하고 앗시리아의 위협이 바벨론으로 대체되는 것까지 생전에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항상 메시아에게로 돌아왔다. 골고다와 천년왕국을 이처럼 분명하게 바라본 선지자는 없었다.

그 다음에는 예레미야가 그의 애가(哀歌)와 함께 등장한다. 그가 바라본 것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유다이다. 그는 마치 과거에 앗시리아의 침공시 그랬던 것처럼, 흔들거리고 벌거벗긴 작은 왕국 유다에 대해 예언했다. 그 당시는 바벨론이 세계 제국이었고 그의 임무는 유다의 멸망과 바벨론 유수(幽囚)의 불가피성을 예언하는 것이었다. 그는 백성들 때문에 울었으나, 백성 중 아무도 그의 이야기를 들어 주지 않았으며, 결국 매국노로 낙인찍혔다. 그는 자신이 쓴 글이 멸시받아 찢기는 것을 봐야 했고 그 자신도 계속 핍박을 당한다.

세번째 선지자는 에스겔이다. 그의 예언은 한마디로 요약하면 예루살렘이다. 에스겔은 바벨론으로 잡혀간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는 느부갓네살의 세 번의 유다 침공 중 두번째 침공시 바벨론으로 끌려갔다. 그의 임무는 예루살렘에 아직도 남아있는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은 결코 그들을 기뻐하시지 않으며, 결국 그들 차례가 올 것임을 말하는 것이었다. 예루살렘과 성전은 파괴될 것이고, 그들은 틀림없이 포로로 끌려갈 것이다. 함께 잡혀온 유대인에게도 예언했으며, 가끔 주의를 끌기 위해 예언을 실연(實演)하기도 했다. 예루살렘이 결국 멸망한 후 그는 동포들에게 이 성이 다시 세워질 것이며 어느 날 세계의 수도가 될 것을 말한다.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모두 다른 나라도 언급하긴 하지만, 우선적으로 히브리 민족의 두 나라(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해 예언했다.

그러나 다니엘은 주로 이방 국가에 관해 말했다. 에스겔처럼 다니엘도 바벨론에 포로되어 살고 있었다. 그는 바벨론 제국 뿐 아니라 페르시아 제국에서도 권력자의 위치까지 올라갔다. 그는 생애의 대부분을 바벨론에서 보냈다. 그의 환상과 예언은 주로 성경역사의 대제국, 즉 바벨론,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와 관련된다. 그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入城)을 예언하고, 신구약 사이 400년 동안 일어날 주요 사건을 자세히 말하고, 적그리스도의 출현으로 성취될, 지금 시점에서도 미래인 사건을 묘사했다.

 

소선지자들 12명의 소선지자들이 있다. 편의상 바벨론 유수 전의 9명과 후의 3명으로 나누어 보자.

9명의 선지자 중 6명은 민족적 문제, 즉 히브리 민족이 직면해 있는 문제를 다루었다. 이 민족적 문제를 말한 6명의 소선지자들은 세 개의 특별한 시대에 초점을 맞추었다.

아모스, 호세아, 미가는 앗시리아의 침공이 원인이 된 첫번째 격동기와 관련된다.

아모스는 멸시받는 농부였고 평범한 시골 사람이 사마리아에 있는 이스라엘 왕들의 왕궁에 예언하러 보내졌다. 그러나 유다를 포함한 주위의 작은 국가들을 비난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인기가 있었으나 곧 사마리아의 죄도 철저히 비난해 미움을 받는다.

미가는 평범한 국경지대 사람이었는데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에서 선지자들, 백성들, 제사장들, 왕들 모두가 그들의 죄 때문에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공격했다.

호세아는 가정적 재앙이 이스라엘 국가의 재앙을 보여주는 슬퍼하는 아버지였다.

스바냐와 하박국은 바벨론 침략으로 시작된 두번째 격동기와 관련된다. 그들은 유다를 향해 말했다.

경건한 왕 히스기야의 현손인 스바냐는 왕 같은 선지자였다. 선한 왕인 요시야 시대에 활동했고 그 시대에 일어난 종교적 부흥을 도왔다. 그러나 그도 그리고 그의 동시대인이었던 예레미야도 국가의 배교와 멸망을 막을 수는 없었다.

하박국은 당황해 하는 선지자였다. 그는 긴급한, 그리고 피할 수 없는 바벨론 침공을 보면서 유다의 죄가 처벌되어 마땅하다는 것을 이해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한 불의한 민족을 처벌하시기 위해 더 불의한 민족을 사용하실 수 있는가라는 문제와 씨름하면서 그는 유대인들에게 그들의 재앙이 멀지 않음을 분명히 선언한다.

마지막 시대에 일어나게 될 최후의 격동기에 초점을 맞춘 소선지자는 요엘이다. 그의 짐은 주의 날이었다. 그의 환상은 앗시리아가 이스라엘을 침공함으로써 부분적으로 성취되었지만, 그의 환상은 이 사건을 뛰어넘어 아직까지도 일어나지 않은 사건을 말하고 있다.

9명의 바벨론 유수 이전의 소선지자 중 3명은 이웃 나라와 관련된다. 이들 중 2명은 무적처럼 보이는 무서운 도시 니느웨와 관련된 설교를 한다.

요나가 먼저 이 성읍을 쳐서 예언하나 그가 말한 심판은 니느웨 백성이 회개하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나훔이 다시 200년 후에 설교하고 그의 예언은 문자적으로 성취된다.

이제 남은 선지자는 오바댜이다. 그는 난공불락의 성, 에돔의 요새인 세일을 쳐서 예언한다. 에서와 야곱 사이의 적대 관계 때문에 에돔과 이스라엘 사이에도 오랜 세월 동안 적대 관계가 형성되어 있었다.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파괴했을 때 에돔 사람은 기뻐했고 도망가는 유대인을 붙잡아 느부갓네살 군대에 넘겨주기까지 했다. 오바댜는 에돔의 불가피한 멸망을 예언했다.

남은 3명의 소선지자들인 학개, 스가랴, 말라기는 바벨론 유수 후에 예언했다. 이 중 학개와 스가랴는 이스라엘의 귀환(歸還)을 말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국가를 재건하기 위해 그 땅으로 들어가는 어려움을 감행하는 선구자들 편에 섰다.

학개는 하나님의 성전과 관련된다. 그의 정열적인 설교의 결과, 오랫동안 방치된 성전이 마침내 완공되고 봉헌된다.

스가랴는 하나님의 진리에 더 관심을 쏟는다. 그는 묵시록적 환상을 받은 선지자이다. 그 환상 중 일부는 그리스도의 재림시까지 이루어지지 않을 일들을 다루고 있다. 그 또한 메시아를 배척하고 십자가에 못박을 이스라엘의 어리석은 범죄를 예견했다.

마지막 선지자인 말라기는 이스라엘이 그 땅에서 다시 타락케 될 것을 말한다. 유대인이 바벨론에서 돌아오면서 우상숭배에서 치유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대신 다른 죄를 범하게 된다 ―성소를 더럽힘, 불경스런 말, 마술, 음행, 사기, 학대 등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산다. 말라기 시대의 형식주의는 마태 시대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에게서 그 극에 달한다. 이렇게 말라기가 구약을 마감하게 된다. 즉 창세기의 축복으로 시작하여 말라기의 저주로 끝난다. <다음 호에 계속> 

 

(1999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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