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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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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2. 29. 16:22 횃불/1999년

하나님 아버지와의 교제(2)

 이 춘 원

매일 매시간, 항상 말씀을 읽고 상고하고 묵상할 때 우리의 영혼은 주님과의 깊은 교제 시간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의 육신을 위하여 매일 여러번 음식을 먹듯이 우리의 심령과 생활의 건강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계속 자주 하나님의 생명의 양식을 먹어야 합니다. 영혼의 양식은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내 안에 거하신다는 것은 주님의 말씀이 내 안에 거하신다는 뜻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심령으로 믿어지는 사람은 이미 그 속에 주님께서 성령님으로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우리가 육신의 양식을 먹을 때 손과 이목구비가 움직이고 이로 씹고 침이 나오고, 온 몸이 움직이며 반응과 역할을 하듯이 우리의 영적인 양식, 곧 말씀을 먹을 때도 그와 같습니다. 육신의 양식을 입에 억지로 집어넣지 않듯이 말씀을 이론적인 지식으로 배워 쌓아 놓는 전시물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결국 교만하여지고 썩어 버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받고, 상고하고, 전하고, 교제할 때는 내 사사로운 견해를 첨부하지 말고 말씀 그대로를 겸손히 받아 먹기만 하면 됩니다. 그 말씀 자체를 감사히 받고 기쁨으로 먹되 꿀떡꿀떡 삼키지 말고 하나 하나 씹고 또 삭임질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지각을 사용하여 말씀을 음미하고 분변하고 묵상하므로서 그것이 자신에게 의의 말씀이 되며 실생활에 적용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듣고 잊어버리는 사람, 말씀을 알되 그 맛을 모르는 사람, 수험생처럼 계속 말씀을 상고하지만 그 기쁨을 체험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직도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령하신 말씀의 맛을 체험하고 그 생명의 말씀으로 양육을 받며 그 능력의 말씀으로 영적인 성장과 충만하심을 입은 사람은 참으로 복됩니다. 이 세상의 지식이나 학문에는 생명이 없고 하나님의 신이 그곳에 거하지 않습니다. 이론적인 신학이나 도덕적인 교훈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죽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능력의 말씀으로 변화를 받아 성령님으로 양육을 받고 장성한 데까지 이른 신령한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존귀히 쓰십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지식으로 하나님을 알고 판단하고 쪼개고 배우고 설명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절대적인 믿음의 대상, 곧 생명의 주님이시지, 인간의 머리로 비판하고 신학적인 학문으로 변증을 받으실 종교적인 신이 아닙니다. 사람이 만들어낸 학교나 사람이 가르쳐 준 지식 전달로써 주님을 배운 사람들은, 지혜로운 어른들에게는 나타내시는 주님의 영적인 계시가 없으며 그것을 체험해본 일이 없는 (말 잘하는) 이론가에 불과합니다. 인간이 머리로 만들어 낸 지식적인 이론 속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며 학문적인 연구 속에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가 있을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론적인 지식으로 하나님을 배우려는 자세를 버리고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 안에 감취어 있는 모든 지혜와 참 지식의 보화를 성령님으로 깨닫고 인격적으로 체험하는 것입니다. 살아 계신 성령님의 계시와 인도하심은 이론적인 신학사상의 공교한 체계 속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말씀을 내 스스로 입을 벌려 받아 먹고 그 진리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영적인 삶 속에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하심이 있습니다.

주님의 진리의 생명의 말씀 앞에 무릎을 꿇고 주님을 배운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습니다. 이론적인 지식으로 주님을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성령님의 말씀을 주님께로부터 직접 받아 먹어 본 사람만이 주님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영적인 생명의 말씀으로 주님과 직접 교제하지 않고 사람의 이론적인 지식으로 주님을 연구한 사람들은 결국 그 바벨탑에서 추락할 수 밖에 없습니다.

진리의 성령님의 말씀으로 직접 주님 앞에서 가르침을 받고 교회 안에서 실제적으로 양육을 받은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께서 쓰시는 참된 일꾼들입니다.

자기의 소견과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께서 피로서 값주고 사신 교회를 위하여 자기 십자가를 묵묵히 지고 섬기는 종들이 참된 일꾼들입니다.

자기 자신이 속해 섬기고 있는 지역 모임을 사랑하고 믿음의 은사를 따라 겸손히 섬기며 그리스도의 몸을 온전히 세우는 일에 성령님으로서 봉사하는 수종자들에게 하나님 아버지 우리 주님의 크신 은혜와 평강이 넘치시기를 두 손 모아 기도 드립니다. 아멘!

만일 누구든지 하나님께서 부르시지 않았고 세우시지 않았으며 내보내시지도 않은 사람이 (흔히 말하는) 사역자가 되고 혹은 장로가 되었다면 종국에는 무너지게 되고 심판을 자초하게 될 것입니다. 그 자신을 위해서나 그 지역교회에 있어서 얼마나 큰 문제가 되고 비참한 모순이겠습니까? 하나님의 만세 전부터의 비밀의 경륜이 무엇인지, 그 뜻의 비밀이 하나님의 교회에 어떻게 나타나셨는지, 한 몸의 진리와 그 심오함을 깨닫고 있는지, 한 몸의 머리가 되신 주님만을 높여 드리고 있는지, 진리의 말씀으로 가르치시고 인도하시는 성령님의 주권을 인정하는지, 자신이 주님과 그의 교회와 그의 복음을 밑에서 섬기고 있는 종인지, 부르심의 의미와 은사의 영역과 그 쓰이심에 합당한지, 주님의 계시가 영적인 생명의 말씀으로 자신에게 주어지고 있는지, 심지어 심령적으로 도덕적으로 인격적으로 어두운 상태에서 성령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평안과 깨닫는 말씀과 산 간증이 있는지 조차 모르고서야 어떻게 하나님의 교회를 돌볼 수 있겠습니까? 한 마디로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가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몸 되신 교회를 인도할 수 없는 것입니다. 특별한 은사나 직임을 맡지 않은 사람이라도 그가 거듭난 성도요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있는 성도라면 주님의 생명의 화신이신 교회 안에서 피차 성도의 교제에 힘쓰고 또 열심히 즐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개인이 주님과의 교제를 나누는 것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 나타나신 그리스도를 보고 체험적으로 모든 성도들이 함께 나누고 피차 섬기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그 몸의 머리는 그리스도라는 것만으로는 족하지 않습니다. 그 몸과 머리가 하나이며 한 생명이며 한 영이라고 직접 깨달아지고 그렇게 보여지고 그렇게 체험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 12:13). 이 진리가 실체적으로 깨달아지고 그렇게 한 생명으로, 한 사랑으로, 한 성령님으로 호흡이 되고 모든 한 모임 성도들이 그렇게 느껴지고 그렇게 뜨겁게 나누어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몸 되신 교회 안에서 성령님으로서 말씀하시고 은혜로서 당신의 자녀들과 교제 나누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해진 성도들은 주님의 은혜를 서로 나누고 성도 피차에 섬기는 일에 꾸준히 참예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침례를 받은 성도들은 주님의 죽으심과 그 부활하심을 본받아 그 고난과 승리에 동참하는 줄기찬 인내와 산 소망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항상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며 복음의 신앙과 그 증거하는일에 협력하며 교회 안에서 함께 복음적인 교제를 나누기에 힘써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함께 동참하고 형제로써 함께 연합하고 동거하며 성령의 안위와 사랑으로 서로 격려하십시오. 영육간에 연약한 이들을 긍휼히 여기고 허덕이는 이들에게 주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어 주십시오.

특히 사도행전 2 42절의 말씀이 교회 안에서 실천되도록 힘쓰십시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교회는 우리 주님께서 당신의 자녀들과 함께 교제를 나누시는 성전입니다.

구약의 성막 특히 지성소에 여호와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있었던 것처럼 신약시대에는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모든 성도들이 한 몸으로 만나고,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각자의 주님이 아니라 한 주님을 찬양하고 한 믿음을 시인하는 가운데 한 성령님의 나타나시는 증거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모든 성도의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립니다. 거룩한 회중 가운데 임재하시고 그곳에서 높임을 받으시는 우리 주님은 참으로 위대하십니다. 할렐루야!

구약의 하나님은 성막에 임재하셨으나 신약의 하나님은 교회, 곧 그리스도의 몸에 내재하십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현현하심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곳은 이 은혜시대에 세워진 성령의 전, 곧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모든 비밀의 경륜은 이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 성취되고, 그분의 은혜의 복음 진리로써 다 증거되며, 그분의 거룩하신 교회 안에 온갖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주어져있으며, 모든 은사와 직임과 능력이 나타나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새 창조물이요, 그리스도의 몸이자 신부요, 성령님의 거하시는 전입니다.

머리와 몸은 한 존재입니다. 머리 따로 생각하고 몸 따로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몸이 머리의 지시를 받는 것이므로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습니다. 몸의 중심은 머리입니다. 몸은 항상 머리를 높여 드리고 머리에 순응합니다. 몸의 덕성(德性)은 겸손히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의 머리는 주님이시고 그의 몸은 거듭난 성도들의 모임입니다.

머리와 몸은 결코 둘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입니다. 생명의 관계입니다. 머리는 몸을 사랑하고 몸은 머리를 존경합니다. 성령님으로 하나 되어 있고 사랑으로 한 새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그 사이에는 자동적인 유기체 관계와 계속적인 보혈의 순환과 사랑의 공급과 양육이 있고 끊임없는 대화가 계속 됩니다. 그것은 바로 성령님으로서 기도 드리는 것입니다.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21:13)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영존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성산으로 인도하여 주님의 기도하는 집에서 예배를 받으시고 저들에게 기쁨을 주실 것이라고 이사야 선지는 기록했습니다( 56:7).

기도는 몸의 호흡이며 생명의 자동적인 맥박이요 심장의 고동 소리와 같이 계속되는 존재의 의식 작용입니다.

기도는 몸 된 교회가 머리되신 주님과 사랑의 대화를 나누는 것입니다. 몸의 생존에 있어서 필수적입니다. 기도가 없으면 몸의 호흡이 끊어진 것입니다. 죽은 것입니다. 시체는 숨을 쉬지 않습니다. 죽은 사람, 죽어 있는 사람 같은 그리스도인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이는 그들이 기도를 쉬는 죄를 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참된 기도는 성령님으로서 드리는 기도입니다. 성령님 안에서 기도하는 법을 배우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자기 뜻대로, 욕심대로, 생각 없이, 허공에 대고 주문을 외우듯이 하고 있습니다. 기도가 죽어 있고 기도 드리는 삶이 없어졌습니다. 이는 성령님으로 기도하는 것을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세상 이야기나 세상일에 넋을 잃은 현대인들은 하나님과의 영적인 대화 시간을 잊고 삽니다. 사랑하는 주님과의 교제 내지 대화가 단절된 것은 현대인의 절망적인 비극입니다.

성령님이 간구하시고( 8:26,27) 성령님 안에서 기도를 드린다( 6:18)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지상에서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연약하여 무엇을 구해야 되는지 알지 못하지만 오직 하나님 되신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십니다. 우리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께서 성령의 생각을 다 알고 계시므로 오직 성령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십니다. 말씀의 성령님께 의탁하십시오.

성령님 안에서, 성령님으로 기도한다( 20)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기도와 간구를 드릴 때 육신의 생각대로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부합된 간구를 드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성도는 영생에 이를 때까지 사랑 안에서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므로서 기도에 응답을 받을 수 있고 하나님 아버지와의 교제를 빛 가운데서 즐길 수 있습니다.

참된 기도란 거룩하고 신령한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진리의 말씀을 따라서 드리는 기도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하나님께서는 다 응답을 하십니다(요일 5:14).

그러므로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와 친밀한 교제를 나누기를 원하는 사람은 우선 주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그 뜻 안에서 사는 삶이 중요합니다. 성도의 삶이 기도의 내용입니다.

가장 쉽고 간단한 방법은 주님 앞에 나아가 말씀을 펴놓고 읽으면서 묵상하며 기도 드리는 것입니다. 주님을 경외하고 사모하는 심령으로 말씀을 읽고 기도를 드리고 또 기도를 드린 후 말씀을 읽고… 이렇게 하면 주님과의 영적인 교통이 이루어집니다.

어린 아이와 같은 단순한 마음으로 주님의 얼굴을 구하십시오. 어린애가 젖을 먹듯이 말씀을 맛있게 음미하면서 엄마의 젖무덤 사이로 엄마의 자애로우신 얼굴을 바라보십시오. 기도는 자연스러운 삶의 자세입니다. 억지로 만들어서 기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기도는 주님에 대한 사모심의 강도에 따라서 응답 여하가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상고하고 기도를 드리는 경건의 시간을 주님 앞에서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말씀을 모르면 기도를 제대로 드릴 수 없고 은혜를 모르면 주님과의 대화가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주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자는 주님의 얼굴을 구하게 되고 그분의 뜻대로 기도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그리스도인은 아버지 앞에 믿음으로 나아가 그분의 뜻을 따라 기도를 드리고 (하늘에서 소리가 나기를 기다리지 말고) 말씀을 열어서 받아 먹으면 되는 것입니다. 기도 드리는 자의 심령에 계시되는 주님의 말씀을 깨닫고 순종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생명 안에서 즐거운 대화를 자연스럽게 나누는 믿음 생활이 건강한 삶입니다. 이런 성령님 안에서의 충만한 삶은 성경말씀 읽기와 기도하기를 즐거워할 때 주어지는 은사입니다.

종교적인 의식과 율법적인 생각과 육신적인 노력은 허무한 것입니다. 이론적인 신학 지식이나 도덕적인 실천강령이나 성공한(?) 사람들의 행위를 추종하지 마십시오. 교파적인 종교의 업적이나 많이 배운 사람들을 흉내내지 말고 오직 하나님 아버지 앞에 말씀을 가지고 나아가 당신의 뜻대로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는 인도하심과 양육함과 충만하심을 입으십시오.

성령님께서 인도하시는 진리의 말씀으로 기도를 드리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쾌히 응답해 주십니다. 아멘!

내 육신의 생각대로 아뢰지 말고 주님의 뜻대로 말씀을 드리면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아버지 하나님의 은사를 체험케 됩니다.

말씀 안에서 기도의 문을 열어 놓으면 성령님께서 아버지의 뜻대로 기도를 인도하시고 기도 드리는 심령을 충만케 하십니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3: 20).

주님을 알고 믿고 체험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중요합니다. 주님께서 내 속에서 말씀하시고 내 몸은 기쁨으로 순종하는 법을 체득할 때, 하나님 아버지와의 교제는 항상 새롭고 은혜로서 충만함을 입을 수 있습니다.

세상적인 지식과 의문에 속한 육신적인 노력은 당신을 병들게 만듭니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님 안에서 말씀대로 기도하고 그 뜻대로 봉사할 때는 항상 아버지와 자녀의 교제는 친밀하고 즐겁습니다. 은혜가 충만하고 말씀이 충만하며 하늘에 오르는 자유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품 안에서 당신의 자녀가 누리는 기쁨은 영원하나이다!

 

(1999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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