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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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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5. 25. 06:56 주옥같은 말씀들/존 시

하나님의 신실하심 일곱 가지

마태복음 1:1, 6, 17-25, 2:1-2, 5-6, 10-23

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6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17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이거한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러라 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19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22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24 요셉이 잠을 깨어 일어나서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 아내를 데려왔으나 25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2:1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5 가로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6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10 저희가 별을 보고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11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12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13 저희가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14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15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로 말씀하신 바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16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 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표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17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로 말씀하신 바 18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 19 헤롯이 죽은 후에 주의 사자가 애굽에서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 20 일어나 아기와 그 모친을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 하시니 21 요셉이 일어나 아기와 그 모친을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오니라 22 그러나 아켈라오가 그 부친 헤롯을 이어 유대의 임금 됨을 듣고 거기로 가기를 무서워하더니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갈릴리 지방으로 떠나가 23 나사렛이란 동네에 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주님께서 허락하신 말씀을 축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기는 신약의 시작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구약의 성경의 시작도 굉장했지만 신약의 시작도 진리로 충만합니다. 우리는 창세기 1장에서 일곱 개 큰 성장에 관한 과정을 보았습니다. 마태복음 1,2장에서는 일곱 가지 하나님에 대한 충성스러움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충성은 우리들의 하나님에 대한 증거에 대단히 중요한 측면입니다. 말씀을 열면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고 때로는 핍박이 있고 그리고 계속 하나님께로 나아간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충성스러운 사람들과 하나님에 대한 충성스러움을 위해서 마태복음 1,2장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구약성경 말라기를 지나서 상당한 시간이 지난 다음에 마태복음이 시작됩니다. 400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이 침묵했습니다. 하나님이 말라기를 통해 경고하실 그때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며 충성스럽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말라기 마지막에 구약 말씀을 닫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사람들을 영어성경에서 보석같다고 표현하셨습니다. 여러분 보석의 모양을 아실 것입니다. 이 보석은 구약 대제사장의 복장에서 발견됩니다. 모든 보석은 땅 깊은 곳에서 캐냅니다. 모든 보석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불을 통과했습니다. 이 모든 보석들은 불을 통과했기 때문에 그 속에 모든 찌꺼기들이 깨끗해져서 정화되어 나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마태복음에서 이 보석과 같은 것을 보는 것은 대단히 좋습니다.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가운데 이 마태복음에는 한 남편과 아내가 등장합니다. 마태복음 1,2장에는 요셉과 마리아의 결혼과 관계되는 기록이 초점이 맞혀져 있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무엇을 하는가를 주변 사람들이 모르는 가운데 주님을 섬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모든 시대 충성된 사람들을 필요로 하십니다. 독생자가 오시는데 도구로 쓰인 마리아와 요셉이 등장합니다.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진리를 지켰습니다. 1,2장에서 하나님을 향한 충성을 보인 일곱 가지를 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다윗에 대하여 하나님 쪽에서 매우 신실하셨다는 것을 지적해 드립니다. 두 번째는 이사야 7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처녀 출생에 관한 기록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한 여인을 통해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나타내셨습니다. 세 번째는 2장에 나오는 동방의 박사들인데 그들은 별을 보고 찾아왔습니다. 하나님은 그 창조물 가운데 다윗의 별을 사용하셨습니다. 6절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릴 사람이 나오는 것을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주권이 이 땅에 오시는데 하나님이 신실하셨습니다(faithful=사람 측에서는 충성이지만 하나님 측에서는 신실함으로 통역함). 또한 요셉이 마리아와 함께 애급으로 예수님을 데리고 갔다가 나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내 아들을 애급에서 불렀다는 말씀을 이루는데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이 애급에서 나온 이후에 다시 애급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만 이 말씀을 이루는데 있어서도 하나님은 신실하셨습니다. 또 하나는 많은 어린 아이들이 죽었는데 이것도 예레미야를 통해 하신 말씀을 이루는데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잔존자들의 고통에 대해 얼마나 신실한가를 보이는 신실하심이 나타나 있습니다. 일곱 번째는 예수님이 어떻게 나사렛 사람이라고 하는 불림을 받는가 입니다. 야곱의 가지에서 싹이 난다는 말씀에 신실함을 하나님께서 보이셨습니다. 이방인인 우리들은 하나님의 예언에 대해서 잘 모를 수 있을 것입니다. 왜 이것이 하나님의 신실함이냐고 이렇게 질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1,2장을 보면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우리들의 개인적인 영역을 넘어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씨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아브라함의 씨에 대한 신실함이고 세 번째는 여자의 후손으로 태어나는 그 씨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한 야곱의 별이라는 별을 통해 인도하심은 하나님의 창조에서의 신실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네 번째는 미가를 통해 말씀하신 세계를 다스리는 자가 베들레헴에서 나온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관한 신실함입니다. 다섯 번째에서 일곱 번째에 해당되지만 애급에서 건져내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관련되는 말씀입니다. 여섯 번째는 고통 당하는 잔존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함입니다. 야곱의 가지로 오시는 그분이 주로 오시는 것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함이 일곱 번째입니다. 이 위대한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이 말씀에서 우리들 개인이 하나님에 대한 삶의 귀중함을 볼 수 있습니다.

로마서 12장에는 우리의 몸을 어떻게 하나님께 산제사로 드리는가에 대해 말씀하고 있는데 9,10,11장 다음에 나오는 말씀임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9,10,11장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이 어떠한 계획인지를 설명하는 해설의 장들입니다. 왜 성령이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것들을 말하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12장에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첫 번째 하나님의 사랑을 배울 때 우리가 생각하는 생각을 넘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통해서 우리에게도 하나님이 개인적으로 어떤 목적을 갖고 계시는가를 배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파에 있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이제 하늘에서 소리가 들렸습니다. 교파 사람들은 때때로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하는데 많은 경우에 그것은 하나님의 목소리가 아니라 사단의 목소리입니다. 그들이 말하는 많은 경우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고 있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1장의 신약을 열면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조상들에 대해 말씀하는 것을 보십시다. 이것은 제가 생각건대 하나님은 그 약속에 대해서 아주 신실하다는 것을 인지합니다. 아브라함부터 그리스도까지 약 2천 년이 되는 것을 아십니까? 아마 에덴부터 아브라함까지도 2천 년이 될 것입니다. 바로 아브라함과 다윗은 이런 면에서 특별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도 하나님이 신실하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브라함은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 자기 주변에 있는 문화들로 말미암아 아무런 만족도 얻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영광의 하나님을 보았을 때 거기서 나왔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서 신실하시기 때문에 그분의 백성들이 그 약속에 주목하기를 바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믿고 오늘날을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다시 오겠다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어쩌면 내일 오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오늘 오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하나는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다는 말씀을 생각하십시오. 왜냐하면 모든 모임에는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기 때문에 주님이 거기서 발견되실 것입니다. 또 하나는 주님의 약속은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라고 주님이 말씀하실 때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확신을 갖는 것은 복음을 전하는 그 자리에 주님이 함께 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3장에서는 내가 너희를 결코 버리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려울 때 하나님께로 돌아가야지 구글로 돌아가면 안됩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했기 때문에 특별합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을 생각할 때 요셉도 생각합니다. 요셉은 팔렸지만 하나님이 자기를 잊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집트에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한대로 언젠가는 애급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갈 것을 명했습니다. 따라서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서나 바로 아래에서도 신실했습니다. 우리는 창세기에서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셨더라"는 말씀을 읽을 수 있습니다. 요셉 이후에 모세가 등장합니다. 모세도 하나님이 하신 약속이 신실함을 알았습니다. 모세의 위대한 것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기억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신실하심을 안다면 우리가 그것을 기억할 때 우리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내가 다윗을 보니 내 마음에 합한 자"라는 내용을 말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신실함을 생각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하나님이 어린양을 준비하시리라"고 말한 것을 기억하십시오. 사무엘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이 그 자신을 위해 왕을 예비하시리라"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십시오. 아브라함에게 희생제물을 준비한다는 말과 사무엘에게 왕을 준비한다는 말은 하나의 짝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신실함을 기억하고 그것을 마음 속에 두는 것을 개인적으로 배울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처녀 출생으로 태어난 아이에 대해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여자의 후손에 관한 약속에 신실함을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3:15절에서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이후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약속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하나님은 약속하셨습니다. 따라서 에덴에서 나올 때 아담과 하와는 이 계보를 위해서 그 후손들이 그 계보를 지켜야 할 책임을 가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매일매일 생활하면서 언젠가 이 땅에 오실 그 아이를 기억하고 살았음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인용된 이사야 7장은 신실하지 못한 왕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이스라엘이 부패할 때 하나님이 말씀했던 것을 기억하십시오. 이것이 바로 신실함에 관한 근본적인 부분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에 대해서 신실하실 때에도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충성(신실)되지 못합니다. 우리는 요셉과 마리아의 삶에서 실제적인 면을 봅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마리아를 통해서 독생자를 들여오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결혼생활을 계속 유지할 것을 하나님은 아시는 가운데 이들에게 독생자가 태어나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이 신실했다고 하나님이 인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인류에 대해서 늘 신실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것에 대해서 인류는 얼마나 불신실합니까?

19절에 보면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신실하시기 때문에 사람은 하나님에게 신실할 책임이 있습니다. 만약에 요셉과 마리아가 이것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면 하나님은 이들을 쓰실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세상에는 하나님이 세운 것에 대해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올바르지 않은 우리 주위 환경에도 불구하고 진리에 대한 신실함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천사가 말하기를 "다윗의 자손 요셉아"하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요셉에게 메시아의 혈통의 이어짐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여기에 결혼에 관한 하나님의 법칙을 지키는 부부가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은 메시아, 즉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천사가 말했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동기부여가 들어있습니다. 가족의 중요함을 배울 수 있습니다. 또한 결혼과 가정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중요하다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메시야에 관한 소망은 자녀와 앞으로 이어질 세대와 관련이 된다는 사실을 또한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 위한 동기부여를 허락하셨습니다. 이제 요셉과 마리아는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은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하나님의 일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거룩한 신실함입니다. 민수기 23장에서는 하나님의 별을 볼 수 있는데 여기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에 있어서의 신실하심을 봅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 있는 자연 재해에 대해서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할 것입니다마는 며칠 전에 스티븐 호킹이 지구를 떠날 준비를 하라고 경고했습니다. 스티븐 호킹이 예언하기를 4,50년 후에 지구가 없어질 거라고 말했습니다. 이 지구의 멸망을 많은 영화들이 만들어 상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대적이 갖고 오는 사상입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하나님이 지구를 만든 다음에 더 이상 돌보지 않는다는 사상에서 만든 작품들입니다. 이 동방박사를 인도한 별을 볼 때 창세기에서 만든 별을 그냥 두지 않고 신실하게 하나님이 대응하신다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반대하는 사람이 말할지라도 하나님의 하시는 계획은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이 지구는 많은 슬픔들을 경험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창세기 3장인데 사람이 범죄한 가운데 저주가 들어왔습니다. 그것이 바로 6장과 9장에서 하나님이 노아 때 심판을 하며 그것이 사용되었음을 또한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 제단 사이에서 죽은 스가랴의 피까지 모든 피 값을 이 세대가 당하리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 피조물들은 창조자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장의 별은 실제의 별입니다. 우리는 창세기에서 하나님이 별을 만드실 때 그 시기에 필요하도록 징조를 통해서 쓰신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시편에서는 별의 수효를 세시고 이름을 불러 이끌어 내신다는 것을 봅니다. 욥기에는 많은 별들은 아닙니다만 일부 별들의 이름이 나와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별들은 빅뱅을 통해서 우주에 흩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하늘의 행성들은 하나님이 정하신 규칙을 따라서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하늘에 있는 별들이 일정한 시기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1세기쯤에 바벨론에 있는 점성사들은 하늘의 별들이 일정한 운행의 규칙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떤 형제님이 말씀을 전하러 와서 시편 19편을 교제한 적이 있습니다. 19편에서는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기록된 말씀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낸다는 것을 교제했습니다. 모든 하나님이 만드신 것들은 앞으로 오실 그리스도에 관한 뜻을 나타내는 도구로 쓰이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약에 나오는 이 별들이 우연이 아니라 메시야를 가리키는데 사용되었다는 것을 생각하십시오.

베들레헴에 관한 연구를 해보면 베들레헴에 관한 기록이 아주 정확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박사들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공부하지 않은 것들을 공부했습니다. 사람들이 기다리지 않았던 것을 이 박사들은 기다렸습니다. 비록 어린아이였지만 메시야가 이 땅에 온 것을 이 박사들은 먼저 목격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지구에 있는 구원을 위해서 결코 버려두지 않으심을 볼 수 있는데 여기에 하나님의 신실함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이것을 기억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이것에 주의했습니다. 그리고 동방박사들은 이것을 연구하고 찾았습니다. 여러분은 바울이 베레아 사람들에 대해 말한 것을 아십니까?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함으로하나님이 만든 만물에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하여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하여 신실하고 그 기록을 보는 것으로 여기서 확인합니다. 성경을 공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봅니다. 그리고 주님을 기다리는 것이 어떤지를 우리는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냥 별을 보는 거냐고 물을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시편 19편을 보면 하나님이 만드신 별만 보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말씀이 있음을 주의하십시오. 그들은 구주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구주를 기다리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그들은 먼 길이지만 메시야를 찾으러 왔습니다. 우리도 성경공부를 그렇게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그리스도가 오시는 길과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을 공부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그들을 그것을 찾아서 그리스도를 향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렇게 한 다음에 이 메시야를 지키도록 경고를 받았습니다. 동일하게 동방박사가 메시야를 지키도록 다른 길로 가도록 지시를 받은 것처럼 우리도 받은 진리를 지키도록 하나님께로부터 경고를 받고 있습니다. 따라서 동방박사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때 다른 길로 갔습니다. 여기에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에 관한 신실하심이 있습니다.

 

네 번째는 이 땅에 있는 정부에 관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입니다. 결혼에 관한 규정이라든가 정부에 관한 규정은 하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우리는 창세기 11장에서 하나님이 정하신 것에 대해서 사람들이 어떻게 배반하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장에 나타나 있는 정부가 또한 어떻게 타락했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을 나쁜 왕이 읽었습니다. 종교적으로 신실하지 않은 사람들이 이 부분을 읽었습니다. 그들이 읽는 것을 그들은 믿지 않습니다. 중요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말씀을 읽고 말씀으로 인도해야 될 중요성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이루어지는 정부가 하나님 앞에 소중하다는 것을 하나님은 아셨습니다.

애급에서 나온 참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보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급 할 때 그들은 신실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여기서 세 범주를 볼 수 있습니다. 떠난 다음에 애급을 뒤돌아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또한 나와서 광야에서 하나님을 반역해서 죽은 사람들의 무리가 있습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의 약속하신 땅 가나안을 봤지만 거기에 들어가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구속해서 약속하신 땅으로 들어간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앞으로 다가올 그 아들을 위해서 위와 같은 계획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구속에 대해서 매우 신실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정부에 대해서 신실하시고 또 그것을 다스릴 아들에 대해서 신실하심도 알 수 있습니다.

 

다섯 번째는 참된 구속을 위해 아들에 대해서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몇 가지 중요한 관점을 얻고자 합니다. 이들이 구원받은 다음에 다시 구원받기 전 상태를 뒤돌아보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이 고통스럽지만 광야를 지나는 것을 그만두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보이신 그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를 애쓰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에베소서 1장이 말하는 바입니다. 우리는 이것이 요셉과 마리아가 경험한 것과 같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약속한 구속을 위해서 마리아와 요셉은 잠깐 이스라엘 땅을 떠났습니다. 때때로 어떤 환경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약간 제외시킬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결코 잊지 마십시오. 우리가 세상에 있지만 세상에 속한 것은 아닙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애급에 들어갔지만 애급에 속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애급에서 고난을 당했지만 그 주변에 이스라엘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는 외로움을 느꼈습니다. 가장 어려운 것은 하나님이 그들을 부르실 때까지 있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여섯 번째는 고통 당하는 잔존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입니다. 2 18절에 보면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마는 어머니들이 통곡하는 곳이었습니다. 창세기 38장에서 라헬은 자기 아들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가 오랜 진통 끝에 베냐민을 낳았지만 그녀는 죽었습니다. 2천 년 가량 지난 다음에 예레미야 40장에서 라마에 많은 여인들이 등장합니다. 아마 바벨론으로 잡혀갈 때일 것입니다. 다니엘은 그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때 많은 어머니들이 자기 아들들과 함께 가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자기 아들들이 잡혀갈 때 얼마나 많은 어머니들이 통곡했는지 아십니까? 여기는 나쁜 왕이 아이들을 죽였기 때문에 그 아이들의 어머니들이 슬퍼 통곡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우리는 주님을 섬길 때 때때로 이러한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을 오래 키운 다음에 악으로 말미암아 아이를 잃는 부모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일을 기억하십니다. 예레미야 31장에서 염려말라 내가 보상하겠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여기에 예수님이 오셨기 때문에 죽은 아이들이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이들의 고통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보상해 주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상급을 바라는 모든 자들에게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마지막 일곱 번째는 나사렛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마침내 나사렛으로 가셔서 사셨습니다. 여기는 유명한 자들이 나오지 않는 지역이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나사렛 사람으로 불림을 받았습니다. 이사야 53장에 말씀처럼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은 삶을 사셨습니다. 23절에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라라고 기록된 이유입니다. 나사렛이라 말은 가지란 뜻입니다. 여러분은 이사야서와 예레미야서에, 그리고 스가랴서에 나온 가지라는 말을 아실 것입니다. 이제 가지가 자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하나님이 택하신 가지임을 아실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그들 가운데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잘 주의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사렛에서 그리스도가 자라신 것을 하나님이 귀하게 보신 것처럼 이 세상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님은 그렇게 보실 것입니다.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았지만 그는 풍성한 열매를 맺었습니다. 우리도 주님처럼 마른 땅 같은 세상에 살지만 풍성한 열매를 맺기를 하나님은 바라십니다. 주님께서는 영원에 관한 열매를 맺어서 우리에게까지 그 영향을 미쳐 영생을 얻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사람들은 많이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경건한 잔존자들은 이 나사렛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가졌습니다.

 

이 시간 마지막을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의 일에 대해서 모든 일에 신실하십니다. 또 우리가 기억하십시다. 또한 하나님의 일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일에 주의하십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찾고 연구합시다. 그리고 모임과 가족을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인도를 받읍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에 대해서 압시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서 보상하신다는 것을 생각합시다. 이스라엘에 대해서 신실하신 주님이 그러하셨던 것처럼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신실한 사람들도 잊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주님께서 귀중한 말씀을 축복해 주시기 바랍니다.

 

2017. 5. 5. 강서 특별말씀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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