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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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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6. 9. 07:13 주옥같은 말씀들/존 시

요한복음 1,2장에서 일곱 날

John See

요한복음 1,2

19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거가 이러하니라 20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대 21 또 묻되 그러면 무엇, 네가 엘리야냐 가로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22 또 말하되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23 가로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24 저희는 바리새인들에게서 보낸 자라 25 또 물어 가로되 네가 만일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그 선지자도 아닐진대 어찌하여 세례를 주느냐 26 요한이 대답하되 나는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27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하더라 28 이 일은 요한의 세례 주던 곳 요단 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된 일이니라 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2 요한이 또 증거하여 가로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같이 하늘로서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33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34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였노라 하니라 35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36 예수의 다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40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는 두 사람 중에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42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가라사대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43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44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45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46 나다나엘이 가로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가로되 와 보라 하니라 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가라사대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48 나다나엘이 가로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49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5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51 또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2:1 사흘 되던 날에 갈릴리 가나에 혼인이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2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인에 청함을 받았더니

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11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우리는 요한복음이 하나님의 아들의 복음임을 압니다. 여러분이 사복음서를 공부할 때 그룹의 네 얼굴을 연상하는 것은 흥미롭습니다. 그룹의 모습과 비슷한 것이 에스겔 1장과 요한계시록 4장에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 머리에 얼굴이 4개 있습니다. 사자와 송아지와 그리고 독수리와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그룹의 얼굴을 보면 하나님은 처음부터 사복음서를 계획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자는 왕을 말하며 이것은 마태복음에 해당합니다. 송아지는 봉사를 말하는데 마가복음과 관계 있습니다. 사람의 얼굴은 누가복음을 말하는데 주님께서는 완전한 인자이셨습니다. 또 하나 독수리는 하늘에 생활 터전을 갖고 있는데 하나님의 아들을 증거하는 요한복음을 말합니다. 요한복음 1,2장에서 일곱 날에 대한 것을 상고하겠습니다.

 

1:19절을 보면 첫 날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요한의 기록입니다. 29절에는 이튿날이라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둘째 날을 가리킵니다. 35절에 또 이튿날이 나오는데 이것은 셋째 날입니다. 43절에 또 이튿날은 네 번째 날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1절에는 사흘 되던 날에 했는데 4+3을 해서 7이 되는 것입니다.

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했습니다. 요한복음은 하나님 아버지를 나타내는 복음이며, 또한 영원한 독생자를 나타내는 복음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 일곱 날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함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의 주어진 성경들의 초기들과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롭습니다. 우리는 창세기 1장에서 성장을 위한 뼈대의 구조를 보았습니다. 또한 마태복음 1,2장에서는 하나님의 신실함을 보았습니다. 마가복음 1장에서는 열심 있는 종을 보았습니다. 누가복음 1,2장에서는 충성스러운 경건한 일곱 인물을 보았습니다. 요한복음 1,2장에서는 그 하나님 아들의 충만함을 봅니다.

요한복음은 여러 면에서 대단합니다. 그 중에 두 용어가 중요한데 "증거" "믿는다" 입니다. 하나는 그 하나에 대한 반응입니다. 여러분이 참된 증거를 받으면 참된 믿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전체를 통해서는 일곱 가지 증거가 있습니다. 그리고 첫 번째 증거는 요한의 증거입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의 표적의 증거가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에는 일곱 가지 표적이 있습니다. 세 번째는 아버지의 증거가 있습니다. 네 번째는 성경의 증거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5장에서 주님이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섯 번째는 그리스도의 증거가 있습니다. 또한 성령의 증거도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3장에서 니고데모에게 이런 말씀을 하실 때 그리고 요한복음에는 10명의 증인들이 있습니다. 따라서 요한복음은 믿는 자들에 대한 굉장한 말씀입니다. 주의 날의 증거가 있습니다. 여기에 일곱 날이라는 말은 창세기의 일곱 날과 비교됩니다. 여호와의 절기를 볼 수 있으며 이 일곱 절기는 많은 교훈들이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내에서는 성전 안에서의 제사장 기능도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0장에는 문이 나와있습니다. 여러분 성막에는 문이 있습니다. 영어성경에서 가장 짧은 말씀인 11장에서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는 구절이 나와 있습니다. 히브리서 4장을 통해서 보면 눈물을 흘리시더라는 우리의 대제사장이심을 나타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2장에서는 내가 들리면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여기는 십자가가 나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성막에는 문이 있고 거기는 제사장이 있습니다. 그 안에 들어가면 놋제단이 있습니다. 이 놋제단은 요한복음 12장과 맞닿아 있습니다. 13장에서는 주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었습니다. 성막에서 문을 지나고 놋제단을 지나면 성막 앞 부분에 물두멍이 있습니다. 그리고 14장에서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성막 첫 장막에 들어가면 거기는 상이 있습니다. 금테를 두른 상 위에는 떡이 있습니다. 15장에서는 나는 포도나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떡상 맞은 편에는 금촛대가 있습니다. 16장에서는 주님이 제자들에게 내 이름으로 기도할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떡상과 금촛대를 조금 더 지나가면 금향단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7장에서는 주님이 아버지께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지성소 안에는 언약궤가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주님을 더 알도록 인도하는 복음입니다. 이 일곱 날은 제자들이 주님을 더 아는 대단히 중요한 경험을 하는 날들이었습니다.

 

19-28절까지 첫날에 관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이 첫날은 말씀을 나타내는 날이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요한은 여기서 주님에 대한 일의 시작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 사람을 볼 때 얼마나 놀랐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전에 이렇게 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어떻게 될 것인지 매우 관심이 많았습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믿는 사람이 처음에 주님을 증거하려고 할 때 그 사람들이 보는 반응입니다. 왜냐하면 이전에 주변 사람들이 그러한 현상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주변 사람들이 사람을 보내서 네가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19절이었습니다. 그리고 25절에 또 다른 것을 묻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세례를 베푸느냐?’ 이 두 가지 질문은 요한에게 한 것인데 우리들은 요한 당신을 믿을 수 없다는 말이 됩니다. 요한이 대답하는 것을 우리는 여기서 볼 수 있습니다. 23절에서 말하기를 이사야서와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대답했습니다. 26절에 나오는 말에서도 나는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그분은 나보다 앞섰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요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질문할 때 이 두 개의 중요한 질문을 요한이 대답하는 것을 봅니다. 네가 누구냐?’ 너는 왜 이런 일을 하느냐?’라는 질문입니다. 첫 번째 질문을 생각해 봅시다. 이것은 주변 사람들이 네 이름이 뭐고 누구냐라며 그냥 묻는 것이 아닙니다. ‘너는 제사장도 아닌데라는 의문의 질문인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구원 받고서 사람들에게 증거하면 이렇게 질문을 받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말씀한대로 모이고 말씀한대로 증거하면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종교단체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일을 하는 당신은 누구냐?’라고 묻습니다. 많은 가운데 이러한 것들이 질문 가운데 포함되어 있습니다. ‘네가 누구냐?’ 하는 말 속에는 우리 문화에 맞지 않은 것을 하는 당신은 누구냐?’ 하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왜 너는 주변 사람들과 말하는 것이 다르냐?’고 합니다.  주변의 인기 있는 사람들의 방법과 왜 다르냐고 묻는 질문이 되겠습니다. 왜 주변에 있는 박사들과 당신이 왜 다르냐고 묻는 것과 같습니다. 전 세계 어디든지 이러한 증거에는 부딪힘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 25절을 보면 어찌하여 네가 세례를 주느냐?’고 묻습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근본적으로 당신이 우리를 대적하려느냐?’는 질문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대제사장이 이것을 동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우리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느냐?’는 의미가 거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새로운 뭔가를 소개하려고 하느냐?’는 의도가 그 속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려느냐?’는 의도가 그 속에 들어 있습니다. 요한은 어떻게 대답했습니까? 23,6절에 나와있습니다. “나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하는 이사야서의 인용입니다. “선지자의 말과 같이라고 말했습니다. 요한 당신이 왜 이렇게 하는지, 그리고 누구냐고 하는 말에 대해서 대답한 것입니다.

요한의 대답은 첫 번째 성경이 나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가를 대답했습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대답할 때 가장 올바른 대답입니다. 사람들은 왜 당신은 다른 교파 기독교인들처럼 왜 담배도 안 피고, 왜 술도 먹지 않느냐?고 합니다. 그때 대답할 수 있는 것은 성경이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무엇이라 말합니까?’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거룩해야 된다는 것을 인용해서 대답할 수 있습니다. 요한은 첫 번째로 성경이 요한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하는가를 대답하고 있으며 또한 주의 길을 곧게 하라는 대답이었습니다.

두 번째 대답은 성경이 어떻게 나를 변화시켰나 하는 것에 대한 대답이었습니다. 요한은 나는 당신보다 낫다고 대답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을 어떻게 흔들고 바꾸었나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인데 성경이 어떻게 나를 변화시켰나를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성경을 말할 때 그 성경이 먼저 나에게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가를 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 번째는 나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성경이 나를 보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성경이 내가 누군지를 말했다고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요한이 대답하는 방식을 통해서 배우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요한 시대에 많은 종교인들은 요한은 이상하다, 다르다,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있다면 요한처럼 대답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나타내는 것을 보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요한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는 것을 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따르도록 다른 사람들을 인도하는 것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다음에 주님의 일을 위해서 말씀이 나타내는 대로 인도함을 받는 것은 중요합니다. 29절의 그 다음 말씀에서 세 가지 간단한 것을 추려보겠습니다.

여기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있습니다. 세상 죄가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 있습니다. 이 네 가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일을 나타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 믿는 자들이 배워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 어디를 가든지 간에 그리스도의 네 가지에 관한 것들을 증거받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희생의 것들을 우리가 증거받습니다. 그리고 죄를 다루는 것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이 준비된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에 관해 말하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이 네 가지를 여러분이 성경에서 발견한다면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 더욱 더 알게 되는 것입니다.

첫 번째 배우는 것은 하나님은 이 희생을 준비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 죄의 상처에 대해서 하나님이 준비한 준비를 배우는 것입니다. 이것이 매우 중요한 것을 우리는 압니다. 이 하나님이 죄를 위해서 희생물을 준비하셨다면 죄와 죄들과 죄인들을 어떻게 다루시는가를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의 대가만을 위해서 아들이 죽으시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죄의 결과를 해결한 것이 아니라 죄의 권능으로부터도 해결했음을 말합니다. 이것은 우리 매일의 삶 가운데 영향을 주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초기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가들이 말하는 말은 옳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십계명을 지키며 살아야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초기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가들이 그렇게 말했기 때문에 문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의 죄를 용서했다면 우리가 십계명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로마서 8장이 가르치는 바를 여기서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했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은혜 안에서 나를 완전하게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주님 앞에 우리가 거룩하고, 흠이 없고 온전하게 나타나기를 바라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앞에서 신분적으로 완전합니다. 우리는 매일의 삶에서 그리스도를 닮는 삶을 이어서 살아갑니다. 우리를 중재하시는 대제사장께서 우리를 돌보십니다. 따라서 요한일서 1:9절이 말한 이유입니다. 그는 믿을만한 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중보자는 우리를 계속 도우십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해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회에서 어떻게 사는가도 배우게 됩니다. 우리는 율법의 행함을 통해서 사람을 바꿀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알코올이라든가 담배라든가, 이슬람 세계에서는 물건을 훔치면 손을 잘라버립니다. 만일 여러분이 거짓말을 하게 되면 혀를 잘라버립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더라도 타락한 사람의 성품은 바뀌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거듭나야만 그 사람이 변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바깥에 있는 것들은 우리를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 바깥 사람들이 복음을 믿어야 변합니다.

그리고 다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입니다. 여기는 성령의 도우심을 요한이 말합니다. 우리는 모임의 원칙을 또한 배웁니다. 성령이 도울 때 우리는 더욱 더 주님을 배우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성령을 의지해야 하며, 기도하며 성령께서 그리스도를 보여주시기를 구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네 번째는 하나님의 아들을 요한이 증거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어떤 분인지를 아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것은 둘째 날에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 요한의 마음 속에 먼저 확증이 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아들을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지시를 했습니다.

 

그리고 삼 일째로 갑니다. 여기는 두 가지 특징적인 것이 있습니다. 35,6절에 보면 요한이 예수님의 다니심을 보고라고 했습니다. 여기는 예수님이 다니시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 있는데 특히 주목할 것이 있습니다. 요한의 제자 두 사람이 소개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단강에서 회개하는 많은 요한의 제자들 중에 두 제자만 택해졌다는 것은 흥미롭습니다. 성경을 공부하면서 요한의 많은 제자들 가운데 두 제자로 줄었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여기는 예수님의 실제 걸어가시는 행하심을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따를 때 많은 수를 추구해서는 안됩니다. 주님이 다니실 때 보통 두 사람을 택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조금 다른 뭔가를 기다립니다. 우선 두 사람이 주님을 증거하면 조금씩 더해질 것입니다. 이것은 요한이 할 수 있는 것을 우리가 보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영적인 진보를 위해서 사람들을 받아들일 때 이렇게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36절은 예수님이 다니시는 것을 보고 요한이 기뻐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의 다니심을 보고요한에게 흥미를 유발시켰던 두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따라가는 사람들의 보면 그 사람들에게 주님에게 관심을 끌게 하는 것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무엇을 해야 되는가를 원하는 사람들이 물을 수 있습니다. 주님이 다니심을 보고 요한이 마음이 끌렸고 그것을 지시했습니다. 39절에 보면 요한의 증거를 통해서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거늘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어떻게 주님의 제자가 되어 따라가는가를 볼 수 있습니다. 우선은 예수님이 다니시는 것을 봅니다. 어떻게 보지 않고 따라갈 수 있겠습니까? 만약에 관찰하지 않고 어떻게 따라갈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따라갈 그 사람에게 매력이 없으면 어떻게 따라갈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주님을 따라가는 원칙입니다.

주님을 따라가는 자를 주님이 돌아보시고는 물어보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 속에 있는 것을 아시고 무엇을 구하느냐?”고 물어보셨습니다. 여러분은 우리 스스로가 물어야 합니다. ‘내가 왜 여기 있는가?’ 여러분은 친구 때문에 있습니까? 가족 때문에 있습니까? 아니면 황금 때문에 있습니까? 그리고 주님은 와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9절에 와 보라 그러므로 저희가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날 함께 거하니 때가 제 십 시쯤 되었더라고 했습니다. 이 바쁜 두 사람이 주님과 함께하는 것을 택한 것은 정말로 잘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날 주님의 방식과 주님의 길을 조용히 보고 배웠습니다. 시몬의 형제인 안드레는 더 추구했습니다. 요한이 가리키는 예수님을 보고 안드레는 자신의 형에게 가서 주님을 소개하며 주님에게로 데려왔습니다. 이것이 중요한 요소인데 안드레는 자기를 말하지 않고 주님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그는 형인 시몬을 주님께로 데려왔습니다. 주님은 시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베드로)라 하리라하셨습니다. 이 자리에 있는 젊은 여러분들에게 이 말씀이 적용되어 주님과 함께 걷게 되는 마음을 여러분 속에서 가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시몬이란 말은 듣는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듣는다는 말에서 돌이라는 뜻의 게바 즉 베드로로 주님이 바꾸셨습니다. 이래서 주님을 듣고 나서 주님을 위해서 돌이 되었습니다.

스코필드라는 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거듭나는 것은 매우 단순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 속에 온갖 감정이나 생각들에 대해서 외부에 있는 것들과 자기 속에 잇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바깥과 연결되는 것뿐만이 아니라 내면의 부분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주님의 일이 나타난 그날에 일어난 모양이었습니다.

 

이제 주님의 가치를 발견한 날을 보겠습니다. 43절에 보면 주님이 갈릴리로 나가시려다가 빌립을 만났다고 했습니다. 빌립이 주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빌립은 내가 주님을 만났다고 말했습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말하기를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다고 말했습니다. 요한이 주님에 대해 마음 속에 있는 것을 먼저 말했습니다. 그리고 요한은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안드레는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고 말하여 더 발전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아가서 빌립은 모세와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다고 말했습니다. 이 때 빌립은 예수님의 가치가 모든 선지자가 말한 그분의 가치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46절에서 나다나엘이 질문을 합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고 했습니다. 그리고 빌립은 다시 와 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말을 많이 하지 않는 때가 좋은 경우가 있습니다. 그냥 초청해서 보게 하는 것이 좋을 때가 있습니다. 47절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나다나엘에게 너는 좋은 의지를 가진 사람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48절에서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말씀 중에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나다나엘은 다른 사람을 상관하지 아니하고 주님을 향했습니다. 그는 조용히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인류 가운데 최초의 사람이 무화과 나뭇잎으로 자기를 숨긴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기는 무화과 나무와 관련되지만 그 첫 사람과 다른 목적으로 무화과 남무 아래 있는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나무입니다. 구약에서는 또한 포도나무를 가지고 이스라엘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로마서 9-11장은 이스라엘이 감람나무인 것을 증거합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24,5장에서는 무화과나무라는 것을 증거합니다. 나다나엘은 이스라엘의 장래에 대해서 묵상하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네가 앞으로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 말씀은 창세기 28장에 야곱이 하늘과 닿은 사닥다리와 관련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타난 계시에 관한 부분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통치와 관계되는 것인데 하나님이 이를 행하시는 것을 네가 볼 것이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여기서 주님의 가치에 관한 것을 배웠는데 우리의 시대에서도 이분의 가치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수고한 수고의 가치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의 가치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나의 뜻이 그분과 어떻게 맞는지도 알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앞으로 다가올 세상의 가치도 알 필요도 있습니다. 이렇게 하여 넷째 날이 끝났습니다.

 

일곱째 날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2:1절에서는 사흘 되던 날이라 했습니다. 이것은 앞으로 다가올 천년왕국에 관한 약간의 그림자입니다. 1장에서 4장까지는 아담부터 그리스도까지의 그림자였습니다. 2:1에서 사흘 날이기 때문에 이틀이 비어 있는데 은혜의 시대를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흘째 되는 날에 갈릴리 가나의 잔치가 말하듯이 천년왕국의 그림자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누리는 몇 가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이 제자들에게 이틀은 침묵했습니다.

셋째 날에는 11절에서처럼 예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날이었습니다. 이틀이 감추어진 이것은 지금 현재 은혜시대를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 현재는 큰 기적이나 그리고 큰 일들을 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생에 도전하는 모든 도전을 이틀이 침묵하는 것처럼 조용히 주님을 증거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흘째 되던 날에 11절처럼 주님이 영광을 나타내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브라함의 날을 기억하십니까? 아브라함의 사흘째, 그리고 바울의 사흘째를 기억하십니까? 여기는 교회에 관한 사흘째입니다. 주님께서는 사흘 되는 날까지 기다리셨다가 사흘이 되었을 때 영광을 나타내셨고 11절 말씀처럼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 일곱째 날을 그분의 경이를 나타내는 날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싶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주님을 믿는 모든 일에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우리가 주님의 은혜를 믿고 그것을 만족해 하는 것을 주님은 기뻐하십니다. 침묵하는 이틀은 현재 우리가 사는 시대를 말하는 것인데 앞으로 주님이 영광을 나타내실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분의 삶과 저의 삶에서 이 대답에 관한 뭔가가 있습니다. 그리고 모임의 생활에서도, 우리 개인의 생활에서도 어느 정도 도전이 되셨습니까? 제자들에게도 확신을 주셨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다가오는 날이 있으면 확신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11절에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이미 그들은 제자들이었기에 구원을 믿는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힘을 주신다는 확신에 관한 믿음이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을 닮기를 주님은 원하시고 그날을 기다리십니다. 주님께서 영광을 나타내시는 그것을 보고 믿는 것은 좋습니다. 주님을 의심하지 않는 것은 중요합니다. 주님을 믿지 않는 것은 우리들에게 좋지 않습니다. 주님을 신뢰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우리가 지금은 눈물을 흘릴지 모르지만 주님께서는 어느 한 날 반드시 응답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어느 한 날 주님을 만났을 때 우리가 주님을 믿은 것을 잘했다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이 날은 놀라움의 날이 될 것입니다. 그 날을 바라봅시다. 그 날을 기대합시다. 이제 그 날을 향해 떠나갑시다. 주께서 주님의 귀중한 말씀을 축복해 주시기 바랍니다.

 

2017. 5. 7. 강서 말씀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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