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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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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네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은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딤후 2:15,KJV).

10대 초반에 나는 처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진지한 연구에 자신을 적용하기 시작했을 때 이 구절을 책상 위에 걸었다. 그 단계에서 나는 구절의 모든 미묘한 차이를 파악하지 못했지만,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즉 하나님의 말씀을 지속적이고 주의 깊게 연구해야 한다는 분명한 명령으로 그것을 인정했다.

물론 우리가 그것을 이해하게 되는 것은 그 구절이 연구하는 것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경우이다. 19세기까지 연구하다노력하고, 마음을 정하고 헌신하기 위해”(OED라는 의미로 사용될 수 있었는데, 이것은 그리스어 단어의 의미를 정확하게 포착하는 것으로서, "모든 노력을 다하라"(NET), "근면하라"(HCSB) 또는 덜 만족스럽게 최선을 다하라”(NIV, ESV)로 표현될 수 있다. 우리가 명령의 힘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성경 연구는 딜레마에 빠진 사람들을 위한 과제가 아니다. 근면하고 신중하고 일관적이며 끊임없는 적용을 필요로 한다. 주의가 산만해지는 세상에서는 집중이 필요하다. 피상적 인 시대에는 깊이가 필요하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부지런히 권고하는 것은 단지 지식을 발전시키거나 형제들에게 깊은 인상을 줄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 아니다. 그 목표는 부끄러워할 필요없이 하나님께 인정받은자신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디모데의 모든 섬김의 목표가 되었고 우리의 모든 노력의 동기가 되어야 했다. 사도처럼 우리는 우리의 섬김이 하나님과 하나님을 위한 것임을 매일 인식하고 살아야 한다. 우리의 성경연구는 하나님의 인정을 목표로 해야 한다.

이 인정은 단순한 인정 이상이다. 사용된 단어는 원래 금속과 동전에 적용되었다. 테스트 결과 인정이라는 견해가 있다. 진리의 말씀을 다루는 것은 엄숙한 일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한 방식으로 하나님께 응답할 것이다. 이것을 강조하기 위해 바울은 진리의 말씀을 올바르게 나누지않았기 때문에 가르침이 왜곡된 사람들의 엄숙한 예를 제공한다, 후메내오와 빌레도와 같은 사람들이 진리에 관하여는 그들이 잘못하였으니 곧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고 말하여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뒤집어엎느니라”(딤후 2:18, KJV). 이 사람들은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 그들은 진리에 대한 이해에서 인정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가르침은 결함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들은 사람들에게 해를 끼쳤다. 순서를 주목하라. 잘못된 해석은 잘못된 가르침으로 이어지며 이는 듣는 사람에게 해를 끼친다. 디모데는 정확한 해석(“올바르게 나누는 것의 중심 개념)이 듣는 사람에게 유익하고 정확한 가르침인건전한 교리로 이어지도록 격려를 받는다.

동일한 생각은 일하는 사람이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는 이미지로 표현한다. 이것은 서투른 기능공이나 임시 고용인이 아니며 거의 적절한 설비를 제시한다. 오히려 오랜 노동을 통해 도구와 재료에 능숙해진 장인이며, 그의 작업은 가장 철저한 정밀조사를 견딜 수 있다. 그 이미지는 선명한 것이다. 숙련된 작업자가 일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독특하게 즐거운 어떤 것이 있으며, 섭리에서 우아함과 그의 움직임에 대한 확신과 그의 결과의 깔끔한 정확성이다. 그것이 우리가 성경연구에서 목표로 삼아야 하는 것이며, 우리는 일관되고 지속적인 실행을 통해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그것을 성취한다. 에스라는 이것을 성취했다 - “그는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전에 주신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서기관이더라”( 7:6, KJV), "준비가 된"이라는 단어는 이러한 유창함과 안정됨을 전달한다.

신성하게 인정된 일꾼은 "진리의 말씀" "올바르게 나누"("올바른 취급ESV )어야 한다. "올바르게 나누는 것"(신약에서 여기에서만 있음)은 문자 그대로 "똑바로 자르다"를 의미한다. LXX 에서 찾을 수 있는 표현은 잠언 3:6 11:5에서 그것은 곧은 길을 만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지배적인 생각은 직진성 또는 정확성이며,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진리에서 그르쳤거나 벗어난 방식(17)과 명백한 대조가 있다. C.I. 스코필드 이후, 적어도 세대주의자들은 이 용어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올바르게 시대적으로 처리하는 것에 대한 언급을 보아왔다. 이것에 대한 의미를 제한하는 것은 지나치게 감소시키는 것이다. 경륜의 시대를 맞이하는 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진리의 말씀을 올바르게 나누는 데 중요한 부분이지만 그것은 훨씬 더 많은 것을 수용한다. 그것은 모든 성경의 정확한 해석을 의미한다.

진리의 말씀은 이 장인이 일하는 수단이다. “진리의 말씀[로고스]”이라는 단어가 본질적으로 성경에 대한 언급이라고 의심할 이유가 거의 없다. 확실히 로고스라는 용어는 특정 성경(: 10:35 및 롬 9:6)이나 구약성경 또는 전체적인 성경(: 7:9-13과 히 4:12)을 가리키는데 신약성경에서 자주 사용된다. 로고스가 발언의 의미를 담고 있으며 때때로 복음 메시지를 언급하는 것도 사실이다(: 고전 1:18; 1:13; 1:5-6). 이러한 사실들 중 어느 것도 우리가 이 구절에서 성경에 대한 언급을 보지 못하게 막을 필요가 없다. 로고스가 있는 구절이 있을 뿐만 아니라 분명히 기록된 말씀을 언급하고 있다. 우리는 이 서신의 3장에서 바울이 사도들이 가르친 것과 하나님의 숨결인 성경 사이의 연속성을 강조하는 방법을 이미 보았다.

더욱이, 바울이 복음을 언급하는 것은 인간의 파멸, 하나님의 치유, 인간의 책임에 대해 주의 날 저녁에 우리가 30분을 채울 수 있는 일종의 단순한 메시지를 말하는 것은 실수다. 바울은 이 용어를 훨씬 더 광범위한 방법으로 사용한다. 그에게 있어서 복음은 믿음”, “진리”, 그리고 우리가 목회서신에서 사용된 다른 모든 용어와 일치한다. 이러한 모든 용어는 성경과 일치한다. 왜냐하면 다른 방법으로 우리는 그 연습하는 모든 것에서 복음에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진리의 말씀”( 10:21)이라는 표현은 진리의 성경의 메아리와 함께 우리에게 이를 일깨워 주어야 한다. 그 말씀이 진리이고 진리를 소통하는 것은 말씀이다.

이 구절에서 디모데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중하고 정확한 해석으로 부지런히 자신을 적용하도록 권고 받고 있다. 이 적용은 그에게 자신 앞에 놓여있는 일을 준비케 할 것이다. “그들이 이것들을 기억하게 하며 또 말들로 인하여 다투지 말라고 주 앞에서 그들에게 명하라. 그것은 아무 유익도 끼치지 못하고 오히려 듣는 자들을 멸망시키느니라”(14). “그리고 주의 종은 ... 스스로 반대하는 자들을 온유함으로 일깨워 주어야 하리라”(24-25 KJV ).

그러나 그 권고는 디모데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형제자매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도 관련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엄숙한 책임이다. 우리는 성경연구에 부지런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너무 자주, 우리가 고백해야 할 것은 우리의 성경연구가 진지하고 지속적이기보다는 산발적이고 표면적인 조각들이다. 그런 반쪽짜리 시도는 부끄러워하지 않는 일꾼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일상적인 일을 쉽게 수행하지만 경험이 없고 성경을 다루지 못하는 신자들이 너무 많다. 그들 중 한 사람이 되지 말라.

우리는 또한 하나님의 시험이 일꾼의 입장에서 확신이나 못마땅함과 수치심으로 초래한다는 생각에 잠잠해져야 한다. 성경을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며 올바르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사회는 후기 모더니즘에 너무 깊이 스며들어 어떤 텍스트의 해석을 사실이 아니라 의견의 문제로 거의 전적으로 주관적인 것으로 보게 되었다. 이러한 태도를 성경 공부에 가져오는 것은 치명적인 실수이다. 우리는 그것을 잘못 해석하기보다는 올바른 선을 긋는것이다. 해석은 의견의 문제가 아니라 기도하고 의존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본문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충실하게 이해하고자 하는 탐구이다.

그래서 디모데후서 2:15절은 여전히 우리에게 말한다. 그것은 여전히 ​​꼼꼼한 성경연구를 위한 명령이며, 진리의 말씀을 연구하는 모든 학자의 장벽일 뿐 아니라 마음과 정신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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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