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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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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서신은 하나님의 계시의 진리로 가득 차 있으며, 진리의 근원이신 하나님으로 말씀하시고, 인류 역사에 말씀하셨던 분이며 그분의 뜻과 자신을 드러내신 것이다. 우리는 또한 계시된 진리에 대한 다각적인 공격에 대해 그들이 경고하는 명확성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계시를 보여주고 방어하기 위해 “진리의 기둥과 터”가 되도록 하나님에 의해 특별히 계획된 실체가 있음을 보았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 실체를 “하나님의 집,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라고 묘사한다. 지역모임은 단순한 아늑한 종교 클럽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복음적인 전도를 위한 수단도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목적에 있어서 진리의 기둥과 보루가 되어 그것을 나타내면서도 그것을 보호하는 것이다.

분명히 이것은 가장 중요한 역할이며 우리는 모임이 어떻게 책임을 다할 수 있는지 정당하게 물을 수 있다. 결국 그것은 복음을 수호하는 군대를 배치할 수 있는 전쟁터가 아니다. 신학교나 성경학교를 설립하거나 기금을 마련하는 것은 성경적 명령이 없다. 그것은 마케팅 조직이나 압력단체도 아니다. 정치적 로비나 정책 형성에 관여하지 않는다. 요컨대, 우리가 진리의 보존과 표현에 가장 유용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어떤 시설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그 책임이다. 다행히도 이 서신들은 진리와 관련하여 모임의 책임을 강조할 뿐만 아니라 모임이 그 책임을 어떻게 이행할 것으로 기대되는지 자세히 설명한다.

목회서신은 모임이 진리를 가르쳐야 할 곳임을 분명히 한다. 그 가르침에 대한 특별한 책임이 있는 사람들, 즉 장로와 집사를 위한 명확한 지침이 포함되어 있다. 지금은 누가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이 주어지는 것을 주목하라.

또한 모임 집회에서 누가 가르치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이 주어진다. “여자는 전적으로 복종하며 조용히 배울지니라. 오직 나는 여자가 가르치거나 남자에게 권위를 행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다만 조용할지니라”(딤전 2:11-12, KJV). 공적 가르침은 자매들의 책임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가정 영역에서 자매들의 가르침이 갖는 중요성을 인식함으로써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디모데후서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의 할머니와 어머니를 상기시킨다. 데모데는 그 양육에 의해 끊임없이 형성되었다. 이 경건한 자매들이 가르친 교훈과 기도는 디모데가 하나님을 섬기도록 맞추는 데 헤아릴 수 없는 역할을 했다. 가정에서 자녀를 가르치는 것은 자매의 가르침이 허용되는 분명한 영역이 아니라 그것은 필수적인 영역이다.

디도서에서 바울은 자매들이 가르쳐야 할 또 다른 영역을 확인한다. “연로한 여자들도 그와 같이 하여… 선한 것들을 가르치는 자가 되게 하라”( 2:3-4, KJV). 이 연로한 자매들은 단지“선한 일을 가르치는 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그들은 가르치는 내용과 가르치는 방식 모두에서 “선한 교사”가 되어야 한다. 그 가르침은 분명하고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4절에 사용 된 단어 (swfronivzw(소프로니조)는 “그들의 정신을 일깨우는 것”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바울이 이 단어를 사용한 유일한 경우이다. 이 구절은 나이든 자매들이 어린 자매들에게 도덕적으로 가르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긴급하고 신속하며 적절성을 갖춘 이 자매들은 형제가 공개적으로 할 수 없는 가르침을 줄 수 있으며, 모임에서 가르치지는 않지만 모임을 진리의 기둥과 터로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따라서 이 서신들에는 공개적으로 가르칠 사람과 가르치지 말아야 할 사람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다. 그들은 또한 우리에게 가르치는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준다. 예를 들어, 바울은 디모데에게 교사로서 자신의 역할의 중요성이 성도들이나 죄인들에게 오만하고 고압적인 접근을 가져서는 안된다고 가르친다. 오히려, 디모데가 가르치는 일의 우선 순위는 항상 그가 가르친 사람들의 복지가 되는 것이었다. “주의 종은 결코 다투지 말아야 하며 모든 사람에게 부드러우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인내하며 스스로 반대하는 자들을 온유함으로 일깨워 주어야 하리라”(딤후 2:24-25, KJV).

가르침은 또한 가르침 받는 사람들의 문화와 배경에 민감해야 한다. 디도서 1:12-13(KJV)에서 바울은 디도에게 경고한다. “그들 중의 한 사람 곧 그들의 대언자도 이르기를, 크레테 사람들은 항상 거짓말쟁이요 악한 짐승이요 게으른 탐식가라, 하였는데 이 증언이 참되도다. 그러므로 그들을 엄히 꾸짖으라. 이것은 그들이 믿음 안에서 건전한 자가 되어.” 바울이 구원받은 크레테인에 대해 말하고 있는지 아니면 구원받지 못한 크레테인에 대해 말하고 있는지에 대한 논쟁은 본문의 요점을 놓친다. 바울은 크레테인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매우 광범위한 진술을 인용하고 있다. 크레테 문화는 그런 사람들을 생산하기 때문에 디도는 적절한 방법으로 그들을 가르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교훈은 여전히 ​​관련이 있다. 서로 다른 문화는 서로 다른 종류의 특성을 생성하며 메시지를 절대로 변경해서는 안되지만 청중의 기질에 맞게 가르침을 조절해야 한다.

따라서 목회서신은 공적으로 가르칠 사람(과 아닌)과 우리가 가르칠 방법을 알려준다. 그들은 또한 우리가 어디에서 또는 어떤 환경에서 가르쳐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이것은 디모데후서 2:2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네가 많은 증인들 가운데서 내게 들은 것들 바로 그것들을 신실한 사람들에게 맡기라. 그들이 또한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KJV). 여기에서 중요한 단어는 "많은 증인들 가운데서"이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가르치는 것은 공개되었고, 이 때문에 디모데는 그 가르침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가 어떤 식으로든 그것을 왜곡했다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많은 형제들이 “바울이 말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을 것이다. 이것에 대한 바울의 지혜는 독특하며, 바울에게 현명한 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현명하다.

우리는 모임의 공적 가르침의 집회를 충분히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으며 그러한 교육이 제공 될 때 참석해야 한다. 이것은 믿는 자들이 그들의 가정에서 “주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이 서로 자주 말하매”( 3:16, KJV) 말라기 시대에 경건한 남은 자들의 모본을 모방해서는 안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참으로 우리의 저녁 식탁에서 토론이 구원받지 못한 친구와 이웃의 토론보다 높지 않다면 그것은 우리 기독교에 대한 슬픈 고발이다. 또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아볼로를 그들의 집으로 맞이하고 “그에게 하나님의 길을 더욱 완전하게 설명”( 18:26, KJV했을 때, 아볼로가 받아들인 은혜로운 접근 방식을 무시한다는 의미도 아니다. 우리가 그러나 이 구절과 그와 유사한 다른 구절은 이 구절에서 바울의 실례의 가치를 결코 부정하지 않는다. 신약의 모본은 모임이 기도, 설교, 주 예수님을 기억하는 것과 모임의 징계를 처리하기 위해 “함께 와서” “함께 모여야” 한다는 것이다( 18:20; 14:27; 20:7-8; 고전 5:4; 11:17-18,20,30; 14:23,26). 우리는 우리의 위험에 처할 때 이 성경적 본을 버린다.

그러므로 모임은 진리를 가르치는 곳이기 때문에 “진리의 기둥과 터”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멈출 수 없다. 목회서신이 진리의 가르침과 실행을 분리하는 것을 금하기 때문이다. 이 서신에서 “경건”과 “선한 일”이 반복되는 주제는 부차적인 것도 우연이 일어나는 일도 아니다. 그러므로 예를 들어 여성에 대한 공적 가르침이 명확하게 금지하는 디모데전서 2장에서 자매들의 품행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여자들도 단정한 옷으로 자기를 꾸미되 얌전하게 맑은 정신으로 하고 장식한 머리나 금이나 진주나 값비싼 옷으로 하지 말며 오직 (하나님의 성품을 고백하는 여자들에게 합당한) 선한 행위로 하기를 원하노라”(9-10KJV). 이 행동은 형제들의 공적 기도만큼이나 모임에 근본적이며 필요한 것인데, 둘은 9절의 “같은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디도서에서도 로마 사회에서 거의 존경받지 못한 두 계층의 사람들과 관련하여 단지 진리의 가르침뿐만 아니라 실행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바울은 젊은 자매들에 대해 “신중하며 정숙하고 가정을 보살피며 선하고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니 그리하여야 하나님의 말씀이 모독을 받지 아니하리라”( 2:5, KJV). 이 구절에서 모임의 보루적 측면이 보인다. 젊은 자매들의 경건한 행동은 진리를 대적하는 자들의 신성 모독이 입술에서 나오기 전에 막는 방어적인 역할을 한다. 대조적으로, 종들의 순종과 신뢰는 다음과 같은 기둥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종들에게 권면하여 자기 주인들에게 순종하게 하며 모든 일에서 그들을 매우 기쁘게 하고 말대꾸 하지 말게 하며 훔치지 말고 전적으로 선하게 충성하는 것을 보이게 하라. 이것은 그들이 모든 일에서 하나님 곧 우리의 구원자의 교리를 빛내게 하려 함이니라”( 2:9-10, KJV). 사회적 가장 낮은 계층에서 가장 적은 기회와 가장 큰 제한을 가진 종들은 자신들의 삶을 살며 진리를 실행할 수 있었고, 그들이 “모든 일에서 하나님 곧 우리의 구원자의 교리를” 장식(장식이나 신뢰를 쌓음으로,NET) 할 수 있었다.

귀중한 유물이 박물관이나 갤러리에 전시될 때 그 배경은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어떤 식으로든 관람자를 산만하게 하거나 방해하지 않고 그 대상의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강조하도록 계획된다. 가정, 직장, 사회에서 우리의 행동은 우리가 진리의 기둥과 터로서의 모임의 역할에 기여하고 그것을 손상시키지 않아야 한다.

 

http://truthandtidings.com/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