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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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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은 교회의 건강에 매우 중요하다. 말씀에 의해서만 그녀는 적대적인 세상을 통과하며 가르침을 받고 지시를 받고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그녀의 역사 초기에 그녀가 성경에 대한 심각한 공격에 직면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 마찰의 결과에는 많은 것이 달려 있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한 사람 또는 한 무리의 사람들의 상상력에 맞추어 거만하게 다듬어진 훼손된 성경을 남길 것인가? 아니면 그들은 하나님의 온전한 계획, 성경의 모든 부와 충만함을 지키며 인도되는 증거를 계속할 것인가?

공격은 시노피의 마르키온의 가르침에서 왔다. 마르키온은 현재 터키의 로마 지방인 폰투스에서 왔다. 140년경에 그는 로마에 와서 교회와 성경을 모두 공격하는 소설과 이단적인 가르침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면서 그는 사도들의 생애 동안 이미 일해 온 경향을 발전시켰는데 그것은 서신에서 언급된 내용이었다.

이러한 경향 중 하나는 영지주의였다. 이 믿음 체계는 그리스 철학과 기독교 사이의 혼합주의였으며 특히 갈라디아서와 골로새서에 대한 서신에서 다루어졌다. 영지주의자들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물질이 본질적으로 악하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성육신의 진리를 부인하고 대신에 주 예수님의 육체는 환상이고 그분은 항상 육체적 영(환영설(幻影說)로 알려진 관점)으로 남아 있었다고 주장했다. 마르키온은 성경이 물질을 창조한 유대인의 하나님과는 완전히 초월적이고 사랑스럽고 동정심이 많은 신약의 하나님에 대해 말씀하셨다고 주장하면서 이 가르침에 새로운 왜곡을 추가했다. 이 견해는 유대교, 구약 성경, 복음서에 대한 마르키온의 견해에 큰 영향을 미쳤다.

사도행전과 서신들로 분명히 밝혔듯이, 구원받은 유대인과 교회 내 이방인 사이의 긴장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 1세기 내내 반복되는 문제였다. 이제 마르키온의 가르침에서 이 긴장감은 다시 한번 표면으로 올라갔다.

마르키온은 “신학적 반유대주의자”로 묘사되었다. 그리고 그 반유대주의는 성경에 대한 그의 관점에서 가장 분명하게 보여졌다. 구약성경이 유대인 하나님에 대해 말했듯이 마르키온은 기독교 교회에 대한 권위와 관련성을 완전히 부인했다.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신약의 많은 부분이 구약성경에 확고하게 근거를 두고 있음을 인식하고 이 유산에 대한 성경을 “다듬”기 시작했다. 그는 바울의 글을 매우 높이 평가했지만 다른 사도들의 권위를 거부했다. 그가 본 것처럼 그들의 기독교는 유대인의 배경과 성향에 의해 타락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복음서는 또한 신뢰할 수 없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삶과 메시지를 왜곡시키려는 의도로 유대교인들에 의해 조작되었다.

이것에 비추어 볼 때 “다듬어진” 성경을 생산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이 마르키온은 그랬다. 그는 자신의 규범을 만들었다. 이것은 두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첫 번째는 누가복음의 “유대화되지 않은” “복음” 버전이었다. 두 번째는 “사도”라고 불렸으며 처음 열 개의 바울 서신의 정리된 버전으로 구성했다.

마르키온의 건방짐은 충격적이었다. 그는 자신의 권한 외에 다른 어떤 권한도 없이 성경 본문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을 시작했다. 그가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것만이 성경의 정경에서 그 자리를 차지하도록 허용될 수 있었으며, 최종 결과가 성경의 본질과 내용 모두에 대해 파괴적인 왜곡이었음은 개의치 않았다.

이 맹공격에 대한 교회의 반응은 확고했었다. 그것은 또한 고린도전서 11:19의 진리에 대한 충분한 증거를 제공했다. “인정받는 자들이 너희 가운데서 밝히 드러나려면 너희 가운데 반드시 이단 파당도 있어야 하느니라.” 마르키온의 진리에 대한 공격은 직접적으로 진리에 대해 더 명확하게 정의되고 가장 철저하게 방어되도록 이끌었다. 그의 변형되고 이목을 끈 행동규범은 사실 우리가 가진 첫 번째 목록이다. 권위있는 성경으로 간주되어야 하는 책에 대해 교회들 사이에 거의 만장일치로 합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그로 인해 어느 책이 성경인지 나열할 필요성을 이전에는 아무도 보지 못했다. 이제 마르키온과 그의 가르침에 대한 응답으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표준이 명백하게 언급되고 옹호되었다. 이 가장 초기에 잔존했던 정통 정경은 일반적으로 1740년에 그것을 발견한 골동품 수집가 LA 무라토리의 이름을 따서 무라토니안 정경이라고 불린다. 게다가 네 개의 복음서 각각에 대한 “반 마르키오니트”의 서문이 작성되어 성경의 정경에 포함된 이유를 설명하였다. 그들은 또한 마르키온에 의해 완전히 폐기되었던 사도행전의 중요성을 강력하게 옹호했다.

마르키온의 개념에 대한 반응은 더 광범위하고 일반적인 의미를 가졌다. 그의 가르침은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으며 우리가 입수할 수 있는 증거는 그가 많은 추종자들을 끌어들였음을 시사한다. 그 결과, 그가 특별히 공격한 교리들은 더욱 주의 깊게 정의되어야 했고, 이 주제들에 대한 성경적 진리는 더욱 정확하고 세심한 정확성으로 제시되었다.

널리 퍼진 비난에도 불구하고 마르키오니즘은 놀라운 지속력을 보였고 수세기 동안 일종의 대안 교회처럼 지속되었다. 마르키오니즘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에도 그의 생각 중 일부는 지속되었고 마르키온과 같은 이단은 교회 역사를 통해 계속해서 생겨났다.

성경에 대한 이 2세기 공격의 동시대적 관련성은 모두가 너무나 슬프게도 분명하다. 지난 세기의 소위 고등 비평가들이 제기한 많은 주장이 그들이 의심할 여지없이 비학문적이고 비과학적인 거짓으로 밝혀졌지만, “성도들에게 단 한 번 전달된 믿음을 위해 너희가 힘써 싸우라”(유다 1:3)는 것보다 우리에게 적게 남겨둘 사람들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신학자들이 결정하기 위해 만나는 “예수 세미나”의 신성모독적인 과잉을 살펴볼 필요는 없다. 그것이 그렇게 끔찍할 정도로 신성모독적이지 않았다면 터무니없을 극도의 오만함을 가지고 복음서에 기록된 그리스도의 말씀 중 어느 것이 실제로 주 예수님에 의해 사용되었는지 결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성경의 어떤 부분이든 금지 되는 곳, 성경의 모든 곳에서 적절한 권위를 갖도록 허용되지 않는 곳 어디에서든지 마르키온과 같은 경향을 발견한다. 그리고 우리는 자신의 삶에서 그것을 경계해야 한다. 우리는 성경을 훼손하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겠지만, 성경 말씀을 통해 빨간 펜이나 펜나이프를 긋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않는다, 우리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의 어떤 부분이나 일부를 무시하거나 무시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우리는 모든 것이 필요하며, 그리스도에 대한 신실한 증거를 지탱하려면 “하나님의 모든 계획”(행 20:27)에 주의를 기울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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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