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Recent Post

theWord Bible Software

Category

마크 스위터넘

고린도후서 11장에서 바울은 자신이 글을 쓰고 있던 신자들에 대한 그의 염려와 그들이 직면하려고 했던 오류에 관한 긴급한 인식을 표현한다. 그는 그들에게 “하나님께 속한 질투”(2절)로 그들을 질투한다고 그들에게 확신시켜 그 공격의 본질을 정확하게 강조하였다.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선포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선포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이나 너희가 수용하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 너희가 그를 잘 용납하는도다”(4절).

영어 번역은 사도가 말하는 매우 중요한 요점을 모호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다른 그리스도"는 a[llo"(알로스)(같은 종류의 또 다른)이지만 "다른 복음"과 "다른 영"은 e{tero"(헤테로스)(다른 종류의 다름)이다. 그리스도의 인격에 관한 교리에는 사소한 차이가 있을 수 없다. 다른 그리스도가 성경의 표준과 아무리 비슷해 보일지라도, 그가 성경의 그리스도가 아니라면, 그를 제시하는 복음과 그 복음 뒤에 있는 영은 성령의 영감을 받은 성경의 진리와는 크게 다르다.

바울의 경고는 고린도 신자들에게 분명하고 긴급한 관련이 있었다. 다음 2세기 동안 모든 교회와 모든 신자들에 대한 그 관련성은 너무나 분명해질 것이다. 기독교의 핵심에 있는 기독교적 진리는 심각하고 지속적인 공격의 대상이 되는 것이었다.

성경적 기독론이 공격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이단과   그것이 영감을 준 다른 영이 두 가지 방향에서 성경적 교리를 공격하는 엄격한 운동을 시작했다. 한 쪽 팔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공격했고, 다른 팔은 그분의 진정한 인성을 공격했다. 이 두 가지 오류 사이에서 똑같이 파괴적이고 똑같이 이단적이며 초기 신자들은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충실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뚫고 나갔다.

그리스도의 진정한 신성을 부인하는 가르침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분의 사역 내내, 유대 ​​당국의 가장 격렬한 반대는 그분이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했을 때 일어났다.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하게 만드셨기 때문이더라”(요 5:18)는 그들의 반복되는 불평이었다. 갈보리는 그들의 반대만 가중시켰다. 순회 교사가 하나님과 동등하다고 주장해야 한다는 것은 나쁘다; 더욱 나쁜 것은 그러한 주장이 유대인과 이방 세상, 그리고 하늘 자체에 대해 가장 깊은 증오를 표현하기 위해 사형집행이 계획되었던 사람에게 제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도들은 그들이 알고 있던 그리스도를 신실하게 전파하면서 나사렛 예수님의 선한 점들을 몇 가지 제시했다는 사실을 기꺼이 인정했지만 그분이 주장했던 영원한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반대에 직면했다. 이 견해는 교회 시대 초기에 두 가지 표현을 발견했다. 하나는 유대 기독교에서 발생했다. 이것은 에비오 족의 이단이었다. 이 종파의 구성원들은 그리스도의 영원과 신성, 그리고 아들되심을 부인했다. 우리 시대에 많은 거짓 종교 교사들의 이단적인 가르침을 거의 예상했던 것처럼 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에 의해 특별한 선지자로 선택되고 메시아로 선택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조된 존재이며 진정한 하나님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아리우스라는 이집트인의 추종자들인 아리안으로 알려진 사람들에 의해 비슷한 견해가 표현되었다. 아리안 교사들은 에비온파보다 그리스도에 대해 더 높은 견해를 가졌다. 그들은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했지만 그분의 영원한 존재와 아버지와의 평등을 부인했다. 그들의 가르침은 성경적이라고 말해왔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비슷한 물질인 호모우시오스였다고 가르쳤는데 그분이 하나님처럼 같은 물질의 호모우시오스가 아니었다. 그들의 것은 참으로 다른(a[llo"(알로스) - 그리스도였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러한 차이점들이 사소한 세부사항처럼 보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하나의 서신에 많은 것이 매달렸고 그들이 보여준 그리스도의 모든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가르침은 이단적이고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에 대한 심각한 모욕을 나타냈다.

이런 종류의 이단은 신성하지 않은 또 다른 그리스도를 제시했지만, 다른 교사들은 완전한 인간보다 못한 그리스도를 제시했다. 이러한 교리는 그 기원에 주로 헬라어가 있었다.

물질은 본질적으로 악하다는 개념은 헬라 철학에 깊이 박혀 있었다. 그 개념이 철학의 영역에 남아 있었다면 아무리 잘못해도 그다지 큰 피해를 입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독교에 도입 된 그 영향은 놀라웠다.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지배적인 철학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생각이 그러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불가피했다.

헬라 철학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에게, 초월적인 하나님이 진정으로 인간이 될 것이라는 성육신의 개념은 상상할 수 없었다. 분명히 그들은 하나님께서 물질과 관련하여 자신을 더럽히지 않으실 것이라고 추리했다. 이 가설에 대해 두 가닥의 영지주의 이단이 형성되었다. "보이는 것"을 의미하는 헬라어 단어에서 환영설(도케니즘)으로 불린 하나는 그리스도의 인간 형태는 환영(幻影)이라는 것을 암시했다. 그의 몸에는 실제 육체가 없다는 것이다. 단일신론 또는 양자론이라고 하는 다른 부분은 예수라는 사람이 침례를 받을 때 신성한 본질에 의해 지배되고 통제되었다고 가르쳤다. 이런 종류의 가르침의 나중에 발전된 것은 단일신론이었는데 이는, 성육신한 그리스도는 인간의 본성이 아니라 신성만을 가졌다고 가르친 것이다. 이러한 각각의 가르침들과 그것들과 밀접하게 연관된 다른 가르침들은 성육신의 실체를 부인하고 “육체 안에 나타나시고”(딤후 3:16) 참되고 실제적인 인간성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훼손하는 궁극적인 효과를 가져왔다.

이 다른 교사들이 신적이지 못하거나 인간적이지 못한 또 다른 그리스도를 제시하든 간에 그들은 기독교의 심장부에 대한 공격을 나타낸다. 그들의 가르침이 인기를 얻자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복음의 기초가 공격을 받고 있었다. 이 심각한 공격은 물리쳐야 했고, 그것을 물리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하나님 말씀의 진리였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돌아선 것은 저항할 수 없는 힘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스도의 본질, 특히 아리안 이단에 대한 논쟁은 4세기 수십 년 동안 로마 제국 전체에서 격렬하게 일어났다. 이 논쟁은 제국의 평화를 위협했고 황제 콘스탄틴은 교회 지도자들을 소집했으며 국제 협의회라고 불렀다. 325년에 약 300명의 감독이 니케아(현재 터키 이즈닉)에 모였다. 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기독교의 가르침을 날조하기 위해 모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여러 그룹의 기독론을 성경의 진리와 사도들의 가르침과 비교하기 위해 왔다. 아리우스는 22명의 지원 주교들과 함께 참석했다. 그러나 그의 글에서 나온 구절이 읽혀지자 지지자들은 재빨리 그를 버렸고, 의회의 결과는 거의 만장일치에 불과했다. 그 성명서는 니케아 신조로 우리에게 전달되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유일성, 그리스도와 성령의 인격과 역사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요약한다. 그것은 아리안의 기이한 기독론을 부인하고 “또 다른 복음”의 전도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의 승리를 나타낸다.

그 승리는 최종적인 것도 아니고 완전한 것도 아니다.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부인과 아리안 이단에 의한 위협이 니케아에서 다루어졌지만, 교회들은 그리스도의 참된 인간성을 부정함으로써, 특히 주 예수님이 자연 인간이 아니라 오직 신성만을 가지고 있음을 시사하는 단성론자(單性論者) 이단에 의해 계속해서 어려움을 겪었다. 이 견해의 지속적인 전파에 대한 응답으로 교회 지도자들은 451년에 칼케돈(현재 터키 이스탄불의 한 구역)에 모였다. 그곳에서 그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성육신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과 인성의 기형적인 결합을 긍정하는 믿음의 더 많은 진술을 만들어냈다. 공의회에 의해 만들어진 신조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되심에서 똑같이 완전하고 사람으로서도 완전하시다; 참된 하나님이요 참된 인성이며 합리적인[이성적인] 혼과 몸을 가지고 게시며; 하나님 되심에 따라 아버지와 동등하고, 인성에 따라 우리와 동등하며, 모든 것에 우리와 같으나 죄는 없으시다.”

칼케돈 공의회가 정통 기독교를 창안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또한 그들의 승인은 기독론을 정통 신조로 구체화시키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하나님 말씀의 진리로 돌아감으로써 교리적 혁신의 도전을 다루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성경을 바라보는 동안, 우리의 믿음의 기초가 되는 어떤 인간의 형성이 아니라 칼케돈에서 진술하고 변호하는 진리를 주목하는 것이 좋다. 우리 시대의 이단은 지난 수세기의 잘못된 가르침과 다른 복음을 다시 포장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우리는 사도의 경고와 역사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단순함”(고후 11:3)을 굳게 붙잡는 것이 좋다.

'마크 스위트넘 > 진리로 그들을 거룩히 구별하옵소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1. 역사와 신자  (0) 2021.03.10
2. 사도 시대의 끝  (0) 2021.03.10
3. 마르키온  (0) 2021.03.10
4. 몬타누스  (0) 2021.03.10
6. 오직 성경  (0) 2021.03.10
7. 종교개혁  (0) 2021.03.10
8. 모인 교회  (0) 2021.03.10
9. 복음의 부흥  (0) 2021.03.10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