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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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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절 날 성령님의 강림으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탄생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신자를 포함하는 수세기에 걸친 이 위대한 건축은 휴거가 완전한 완성을 나타내는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계속해서 지어질 것이다.

오순절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실체가 생겨났다. 이것은 최초의 지역모임인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였다. 첫 번째 모임으로서, 이 모임은 이후 모든 사람들에게 중요한 모본을 제공한다. 복음의 메시지를 “기쁘게 받아들인” 사람들은 “침례를 받고” 모임 교제에 “더해”졌다(행 2:41). 그 후 이 무리는 “사도들의 교리와 교제 안에 머물고 빵을 떼며 기도하더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전 세계에 걸쳐 있는 것과는 달리 이 교회는 예루살렘에 국한된 지역적 교회였다. 그리고 로마 제국 전역에 복음이 전파됨에 따라 그 발전은 지역모임, 즉 하나님의 교회에 의해 표시되었다. 따라서 바울은 “유대인들에게나 이방인들에게나 하나님의 교회”(고전 10:32)에게 실족거리를 주는 것을 피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고린도인들에게 글을 쓸 수 있었다. 이 교훈은 기존의 종교 및 사회 집단으로부터 분리와 구별로 특징지어지는 개별적인 몸을 전제로 한다.

교회 증거의 초기 시대에는 이러한 특징이 분명하게 유지되었다. 그리스도와 동일시하는 것이 극심한 고통과 상실, 심지어 죽음을 의미할 수 있는 박해의 분위기에서 신자들과 함께하려는 결정을 아무도 가볍게 내리지 않을 것이다. 개종, 침례, 지역교회 가입하는 패턴은 성경적 규범과 마찬가지로 실제적이었다.

312년에 이것은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 해에 로마 황제 콘스탄틴이 기독교를 채택했다. 콘스탄틴의 회심의 진실성 또는 그 밖의 방식은 불분명하지만, 그것이 기독교에 미치는 영향은 부인할 수없이 극적이었다. 기독교는 급진적이고 주변적인 종교에서 제국의 공식 종교가 되었다. 한때는 그것이 박해와 배척으로 가는 확실한 길이었으며, 그 후 기독교는 선호하는 사회적 발전의 길이 되었다. 따라서 교회와 국가의 동일시가 시작되었으며 그것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성경적 기독교의 일관된 해악이 지속되었다.

콘스탄틴 이후 수세기에 걸쳐 발전한 기독교 영역은 신약성경의 경험과는 매우 달랐다. 통치자가 기독교를 받아들이는 것은 - 신념의 결과로든 정치적 편의나 왕조적 명령의 결과든 간에 그의 백성의 대대적인 개종을 알리는 신호로 간주되었다. 침례는 할례와 잘못된 비유를 통해 성경적 의미를 잃었다. 참된 신자에 의해 시작된 그리스도와 동일시하는 공적인 행위에서 그것은 복음을 믿거나 거부할 능력이 없는 유아에게 행해지는 무의미한 의식이 되었다.

교회 증거의 성경적 모본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항상 있었지만, 이 구별 없는 국가적인 모조품이 일상이 되었다. 종교 개혁조차도 이 문제를 적절하게 해결하지 못했다. 루터는 독일의 개혁이 주교의 종말과 모든 신자들의 제사장 진리를 더욱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기를 바랐다. 임시 조치로 그는 개신교 귀족들에게 그들의 재산과 권력을 양도하는 것을 승인했다. 이 귀족들은 특히 농민 반란의 급진적이고 폭력적인 사건에 비추어 그 지위를 포기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 후, 30년 전쟁을 종식시킨 아우크스부르크의 평화는 cuius regio, eius religio(그의 왕국, 그의 종교) 원칙을 간직했다. 이것은 개별 국가의 통치자들이 그들의 국가와 시민의 종교를 결정했음을 의미했다. 영국에서도 국가 교회를 개신교로 개종시킨 것은 헨리 8세의 순전히 정치적 결정이었다. 그의 아들 에드워드 6세는 그의 진정한 복음적 신념의 결과로 더 많은 개혁을 추구했지만, 그들의 실제 견해와 상관없이 각 개인에게 국가 교회의 일원이 되는 것은 의무적으로 남아있었다. 스코틀랜드 교회는 장로교 모형을 따랐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었지만 여전히 구원받았든 받지 않았든 모든 사람을 포괄하는 국가교회였다.

이들 국가교회 내의 참된 신자들은 이 관행을 성경의 가르침과 조화시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교회와 눈에 보이지 않는 교회의 개념을 만들어 이 둘을 조화시키려고 했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교회는 의식과 의식을 가진 외부 국가교회라고 주장했다. 보이지 않는 교회는 눈에 보이는 교회 안에 감추어진 참된 신자들로 구성되어 심판의 날에야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종교개혁의 시기는 “모인 교회들”의 출현으로 표시되기도 했다. 이 무리는 교회와 국가의 연합을 거부한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그러한 그룹은 항상 존재해 왔으며 스위스 왈도파와 체코슬로바키아 후스파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믿음만으로 칭의에 관한 개혁자들의 가르침을 기꺼이 동일시했다. 이 신자들 중 많은 사람들은 침례가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적절하며 교회 역량으로 모이는데 필수적인 예비 단계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이유로 그들은 종종 “재침례자들”을 의미하는 재침례파로 확인되었다. 또한 대부분의 재침례교도들은 성령님의 통제하에 수행되는 모든 신자의 제사장 진리를 유지했다. 이런 이유로 그들은 안수 사역을 거부하고 신자들이 영적 은사를 행사할 자유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또한 대부분의 경우 강하게 성경을 믿고 그들의 삶을 인도하는 것은 교회의 가르침이 아니라 성경에 의존했다.

일부 재침례교도들은 급진적이고 극단적인 정치적 견해를 가졌고, 이들 그룹의 영향으로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재침례 선지자들은 특히 1534 년 독일 뮌스터에서 악명 높은 포위 공격과 대량 학살에 연루되었다. 이러한 사건들은 비록 많은 이들이 정치적으로 급진적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재침례교도들에 대한 여론을 강화시켰다. 이런 이유로 “재침례파”는 비난의 용어로 사용되었고 재침례파는 유럽 전역의 카톨릭과 개신교 모두에 의해 격렬한 박해의 대상이 되었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신세계로 도망쳐 북아메리카의 식민지에 정착했다.

재침례 운동은 주로 유럽에 집중되어 있었다. 일부 재침례교인들은 영국에서 발견되었지만 많지 않았다. 그러나 청교도로 알려진 사람들 사이에서 복음, 교회, 침례에 대한 비슷한 생각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이 신자들은 종교 개혁이 충분히 진행되지 않았다고 믿으며 영국 교회의 상태에 불만을 나타냈다. 더 많은 개혁에 대한 그들의 요구가 귀에 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점점 분명해지면서 많은 청교도들은 영국 교회로부터 분리된 반대자가 되었다. 이러한 반대자들은 다양한 집단으로 분열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매우 이상한 교리를 가졌고 급진적인 정치적 입장을 옹호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들이 성경의 진리로 이해한 것을 실천할 자유를 추구했다. 일부는 회중교회로, 일부는 장로교인으로, 그리고 다른 어떤 사람들은 침례교로 모였다. 이 무리들 각각은 오직 참된 신자들만이 가시적인 교회 안에 자리하고 있다는 인식을 공유했으며, 모두가 현대 기독교에서 우세한 교회와 국가의 연합으로부터 분리하려고 노력했다.

이것은 결코 쉬운 단계가 아니었다. 엘리자베스, 야고보, 찰스 1세의 통치 아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에 박해를 받고 투옥되고 고문을 당하고 순교했다. 올리버 크롬웰의 통치하에 짧은 기간 동안 번영한 후 본래의 상태로 돌아가 새로운 억압의 물결을 가져왔다. 일부는 북아메리카로 탈출하여 어떤 국가 교회도 사실상 부재한 상태에서 신앙을 실천할 더 큰 자유를 찾았다. 그들은 어둡고 어려운 날들을 충실히 견뎌냈고, 하나님의 주권적 목적에 따라 무수한 혼들의 구원을 위해 그분에 의해 강력하게 사용되어야 했다.

바울은 고린도인들에게 이렇게 상기시켰다 “하나님께서 지혜로운 자들을 당황하게 하려고 세상의 어리석은 것들을 택하시고 하나님께서 강한 것들을 당황하게 하려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시며”(고전 1:27). 국가가 후원하는 교회를 강요하는 조직을 대항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섰던 이 신자들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작은 것들을 사용하여 그분의 영광을 위해 위대한 일을 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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