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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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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은 성경에서 “하나님의 친구”(약 2:23)로 언급되는 유일한 특이함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빈 말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하나님과의 교통 속에서 살아가는 삶의 현실을 반영했다.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미리 말씀하시며 아브라함에게 그분의 목적을 밝히신 이렇게 명확하게 표현된 친교는 드물었다 “내가 행하는 그 일을 아브라함에게 숨기리요?”(창 18:17).

아브라함의 묘사는 독특하지만 그의 입장은 그렇지 않다. 우리가 은혜로 하나님의 친구가 되었다는 것과 우리도 그분의 신뢰 안에 속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다락방에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자신과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제부터는 내가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자기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오히려 내가 너희를 친구라 하였나니 이는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모든 것을 너희에게 알려 주었기 때문이라”(요 15:15). 하나님의 길은 헤아릴 수 없고 그분의 판단은 알아낼 수 없다. 그러나 자비로운 마음으로 그분의 목적을 우리의 시각(視覺)으로 열려고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성경 예언은 하나님의 백성의 가장 큰 영광 중 하나로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우주에 대한 그분의 목적과 이 목적이 실현될 수 있는 방법을 보여준다. 하나님께서는 미래에 의해 깨달음을 얻는 현재에 살도록 허락하시고 그분의 목적이 불가항력적으로 작용하는 위대한 목표에 대해 고귀하고 활력을 불어 넣는 인식을 가지고 살아가게 하신다.

이러한 관점에서, 예언에 대한 연구가 교회 역사를 통틀어 주변으로 밀려나 권위 있는 사람들에 의해 낙담하고 정신적으로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불균형을 가진 사람들의 직업으로 폄하되었다는 것은 이상하고 슬픈 일이다. 종종 인용되는 "계시에 대한 연구는 사람을 화나게 하거나 그렇게 내버려둔다"(존 칼빈)라는 말은 예언적 연구에 대한 일반적인 태도를 적절하게 요약한다.

이러한 태도가 어느 정도 명분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수세기에 걸쳐 급진주의 집단들은 그들의 극단적인 관행을 마지막 날에 그들의 환경으로 예언을 읽음으로써 정당화했다. 그리스도의 재림 날짜를 정하려는 시도의 유감스러운 역사는 예언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서투른 모방이 최악의 경우 완전히 위험한 것으로 묘사되어 회복시키는데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역사는 비록 변명할 수는 없지만 예언의 경시를 설명하는데 도움이 된다. 서기 4세기 말에 무천년설은 예언을 이해하는 지배적인 방법으로 전천년설을 대체했다. 대체로 무천년설주의자들은 이스라엘이 원래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약속의 영적 성취를 누리는 교회로 대체되었다고 가르쳤다. 그들은 문자 그대로 천년의 가능성을 부인하고 대신에 기독교가 이미 영적인 천년을 경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개혁자들은 일반적으로 무천년 계획의 개요를 받아들였고, 천년의 가르침으로 인한 폭력적인 사회적 격변의 여파로 문자 그대로 1,000년 동안 그리스도의 통치라는 생각을 강력하게 반대했다.

하지만 17세기에 걸쳐 이것은 변화하기 시작했다. 종교개혁의 핵심이었던 성경의 우화적 독해에 대한 저항은 성경이 말한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하는 문법적 역사적 해석을 초래했다. 이것은 영적인 무천년 견해를 유지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이 시기는 또한 거의 모든 인간의 노력 분야에서 놀라운 발전의 시기였다. 세상은 더 나은 곳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러한 낙관주의 정신은 신학적으로 후천년주의에 반영되었다. 이 견해는 복음의 확산이 인간 사회의 모든 수준에 유익한 영향을 미치며 그리스도께서 돌아올 1,000년이라는 아름다운 시기를 맞이할 것임을 시사한다. 후천년설은 인류 역사와 현대 사회를 긍정적인 시각으로 묘사했다. 그것은 복음주의자들 사이에서 널리 붙들게 되었고 국내외 복음 전파에 대한 그들의 열정을 북돋우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18세기 말에는 이러한 낙관주의를 유지하기가 어려워졌다. 과학의 진보는 인간이 하나님을 향하도록 하지 않고 멀어지게 하는 것처럼 보였다. 무신론적 합리주의가 꽃을 피우고 프랑스, ​​아일랜드, 미국의 혁명은 사회적 무정부 상태로 더 넓은 내리막을 예고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러한 상황은 신자들이 성경을 다시 보고 교회의 초기 수세기 이래 거의 인식되지 않았던 전천년설로 돌아가도록 장려했다. 전천년설주의자들은 “악한 자들과 유혹하는 자들”이 실제로 “더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리라”(딤후 3:13)는 것을 예상했다. 사회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고 그 쇠퇴는 반역을 저지하고 그분의 의로운 왕국을 세우시는 그리스도의 재림에 의해서만 저지되고 전환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다양한 전천년설 해석이 등장했다. 대부분 예언의 학자들은 과거의 사건을 언급하기 위해 요한계시록을 이해하는 역사주의 전천년설을 채택했다. 결정적인 통찰력은 존 넬슨 다비(1800-1882)에게 우리가 빚진 미래의 사건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다.

다비는 부유한 아일랜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강인한 성격과 겉보기에 지칠 줄 모르는 기력을 가진 비범한 사람이었다. 비록 그의 아버지는 그를 변호사로 삼으려고 했지만 다비는 아일랜드의 기성 교회에서 성직자가 되는 것을 선택했고 위클로우 카운티의 가난한 교구민들을 섬겼다. 그는 금욕적인 생활 방식을 채택했으며 스스로 인정하는 바에 의하면 고교회파 사람이었으며 구원은 기성 성공회 내에서만 발견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은 1827년에 심각한 승마 사고로 움직이지 못하게 된 다비가 회복기를 성경 연구에 바쳤을 때 바뀌었다. 그가 “속박으로부터 해방”이라고 묘사한 그의 회심은 이 시기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의 예언에 대한 이해(그리고 이 기사의 범위를 벗어난 교회의 본질에 대한 그의 견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발전했지만, 그것 역시 이 묵상과 성경 연구 시간에 뿌리를 두고 있었을 것이다.

다비의 예언 해석에는 여러 가지 중요한 특징이 있다. 당시의 많은 복음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하나님이 여전히 이스라엘에 대한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국가에 대한 약속이 여전히 성취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로 인해 그는 “이스라엘”이라는 용어가 항상 국가를 가리키며 결코 교회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성경에 대한 문자적인 이해를 강력하게 지지했다. 이 원리는 또한 그가 요한계시록이 교회 역사에 대한 암호화된 설명이 아니라 여전히 일어날 사건에 대한 문자적 ​​설명이라는 것을 이해했음을 의미했다. (이 견해는 일반적으로 미래주의 전천년설이라고 불린다.)

다른 많은 초기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다비는 인간 역사에서 하나님이 인간을 대하신 다양한 방식으로 표시되는 여러 뚜렷한 시기를 확인했다. 이러한 “경륜”은 다비 체계의 가장 독특한 요소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가장 일반적으로 알려진 세대주의라는 이름을 부여했다.

다비의 해석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련이 있다. 그 당시 다른 전천년설 주의자들은 이것을 그리스도께서 환난 후에 지상으로 돌아와 그의 왕국을 세우신 단일 사건으로 보았다. 다비는 신약을 연구하면서 그것이 두 단계의 사건으로 그리스도의 재림을 제시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첫 번째는 휴거이다. 그분이 공중에 오셔서 죽은 사람과 살아있는 성도들을 데려가신다. 이 사건에 이어 7년 동안의 환난이 뒤 따르고, 그 끝에 그리스도는 그분의 성도들과 함께 영광스럽게 지상에 돌아오셔서 천 년 동안 의로 다스리신다.

개종 후 다비의 삶은 전도와 가르침에 전념했다. 그는 대서양을 횡단하고 유럽에서 광범위하게 일하면서 광범위하게 여행했다. 그는 성경의 새로운 번역본을 제작했고, 프랑스어와 독일어로의 성경 번역을 감독했다. 그는 지칠 줄 모르는 작가였으며 40권이 넘는 주석, 논전(論戰), 훈계뿐 아니라 지금까지 쓰여진 가장 숭고한 찬송가를 썼다. 이 활동은 많은 기독교인들, 특히 미국에서 세대주의가 받아들여졌음을 의미했다. 특히 미국에서 성경 대회 운동과 1907년 스코필드 관주성경의 출판이 널리 퍼지게 했다.

우리는 J.N. 다비의 사역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할 이유가 많다. 성경에서 그분의 충만함은 예언에 대한 교회의 기쁨을 회복하고 주 예수님의 임박한 재림에 대한 그녀의 기대를 회복시키는데 사용되었다. 다비와 그 이후 여러 세대의 신자들에게 그 희망은 우리 주변의 상황이 점점 더 우울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밝게 빛났다. 우리도 “그분의 나타나심을 사랑하는” 모든 자들 가운데서 발견되기를 바란다(딤후 4:8). 마라나다, 주 예수님이여, 과연 그와 같이 오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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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