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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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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스위터넘

독일 비텐베르크의 모든 성도들의 교회에서 로마 가톨릭 교회의 의식이 한창이었다. 대기는 향 연기와 함께 소용돌이치며 건물의 벽과 웅장한 아치형 천장에 늘어선 조각상들과 이미지들을 거의 가리고 있었다. 높은 제단에서 라틴 미사의 단조로운 저음의 음악이 나왔다. 건물 곳곳에서 묵주 소리와 기도의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 왔고, 황금 종소리가 회중의 애틋한 시선을 높이 있는 성체에게로 끌어당겼을 때 중단되었는데 그들이 볼 수는 있지만 참여할 수 없는 희생이었다. 교회가 중세시대에 걸쳐 획득한 부와 과실이 전시되어있었는데 거대한 종교적 제도가 영혼을 순조롭게 돈으로 바꾸고 부와 명성을 더했다. 하지만 갑자기 새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단순하지만 의도적인 대기를 가득 메운 윙윙거리는 소리를 뚫고 사제와 백성을 놀라게 하고 잘 정돈된 길에서 의식을 중단했다. 거대한 대성당 문의 딱딱한 참나무에 못이 박히는 소리였다. 그 소리는 온 세상이 울릴 때까지 비텐베르그의 벽을 넘어 울려 퍼질 것이다.

실제로 마틴 루터가 자신의 95개 논제(또는 토론할 주제)를 대성당 문에 박았을 때 일어난 장면은 아마도 덜 극적이었을 것이다. 문에 고지문을 박는 것은 공개 토론을 시작하는 확립된 수단이었다. 그러나 루터의 행동이 미치는 영향을 과대 평가하기는 어렵다. 비록 보잘것없는 수도승이었지만, 그는 가톨릭 교회의 능률적인 조직을 거의 정지시키고 유럽의 왕들과 성직자들 사이에 놀라움과 경각심을 뿌렸으며 무지하고 절망적인 백성들에게 빛과 희망을 가져다 준 투지의 한 획이 되었다. 이 임무에서 루터는 정치적 야망이나 종교적 광신에 의한 동기를 부여받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영감을 받고 감동을 받았다. 그가 그리스도를 믿게 된 것은 성경연구였다. 그가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것을 발견한 것은 그 페이지에서였다. 그리고 그는 적대적인 보름 스 회의 앞에 서서 호소했던 것은 성경에 대해서였다, 말하기를 “내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 잡혀있다.… 여기 서 있다, 나는 다른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하나님이 나를 도와 주실 것이다”라고.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에 직접 호소하는 것은 아마도 우리에게 주목할만한 것으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루터 시대에는 급진적이고 혁명적이었다. 중세에 걸쳐 로마 가톨릭 교회는 성경을 금지령으로 선언하고 그것을 교회의 전통과 교황권의 법령으로 대체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 왔다. 사실, 그러한 경향은 중세 이전에 시작되었다. 로마에 있는 교회는 항상 두드러져 왔으며 그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교회였다. 그 지위는 로마에 있는 신자들의 교리적인 힘과 신실함에 대한 신자들의 존경심에 기초했다. 그러나 콘스탄티누스의 개종 당시 로마 교회는 성경과는 거리가 먼 정치적 권력을 얻었다. 그러한 힘이 그러하듯이 이 새로운 중요한 지위가 로마 교회를 빠르게 타락시켰다. 그녀가 현재 확인된 제국과 일치하는 영토 야망을 키웠다. 그리고 자유로이 구할 수 있고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는 성경이 이러한 야망을 이루지 못하게 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의 위치와 능력은 로마 교회의 가르침에 의해 훼손되고 제한되었다.

이 공격은 세 가지 전략이 포함되었다. 로마 교회는 성경의 올바른 해석에 대한 독점권을 주장했다. 교회의 학자들과 궁극적으로 교황의 가르침 만이 고려될 수 있었다. 로마 카톨릭 교회의 위계질서에 부여된 이 가르침은 교도권이라고 불리며 여전히 그 교회의 가르침이다. "확실히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는 임무는 오로지 교회의 교도권, 즉 교황과 그와 교통하는 주교들에게 맡겨졌다.” 이 가르침은 신자들을 하나님의 말씀에서 단절시켰고, 그들은 “온전히 준비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것들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 기록들을 탐구하므로” 베레아인들의 귀한 모습을 모방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해석을 독점하려는 이러한 시도는 교회가 성경을 유럽인들의 모국어로 번역하는 것을 반대하는 방식으로 강화되었다.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성경을 라틴어로 새롭게 번역한 제롬의 벌게이트 의도는 성경을 널리 그리고 정확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읽고 쓰는 능력과 라틴어를 이해하는 능력이 더 이상 겹치지 않는 세상에서 벌게이트의 사용은 교회에 더 많은 권한을 부여했고, 더 나아가 사도들의 가르침과 로마 교회의 가르침 사이의 갈등이 커지고 있음을 너무 잘 알고 있었을 사람들의 힘을 더욱 잃게 했다. 모국어 성경에 대한 어떤 사람들의 접근은 주석과 성구집에 남아 있었고, 일부 성직자와 평신도 모두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계속해서 충실히 설교하기를 계속했다. 그러나 성경에 대한 유일한 지식이 교회의 가르침에 의존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교황은 권력, 부, 지배권을 추진함으로 “성도들에게 단 한 번 전달된 믿음”(유다 1:3)에 제한 받거나 심지어 교황이 해석한 성경에도 제한 받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교황의 무오성 교리가 발전했다. 이것은 교황이 “믿음이나 도덕상의 교리”에 대해 선언했을 때 교황의 교리적 선언이 사도들의 가르침과 동일한 힘과 효과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쳤다. 로마 교회의 정치적 또는 재정적 이익이 교리의 지지를 필요로 한다면 교황은 그것을 제공할 수 있었다.

따라서 중세 시대를 거치면서 성경은 사람들로부터 멀어지고, 외국어에 묻히고, 새로운 교리의 도입으로 인해 경시되었다. 이 시기의 신자들은 사제로부터 들은 내용의 진리를 평가할 방법이 없었으며, 혁신적인 교리가 언제 그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알 방법이 없었다. 그들은 로마 카톨릭 교회의 가르침을 신뢰하고 교황이 가장 잘 아는 주장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루터의 행동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 다른 개혁자들과 함께 루터의 가르침은 모든 종류의 교리를 이해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그의 성경으로의 복귀는 교회의 건강에 대한 그의 모든 공헌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근본적이며 가장 급진적이었다. 오직 성경 또는 “성경만으로”는 종교개혁의 위대한 방향의 외침 중 하나가 되었다. 독일의 루터, 영국의 틴데일, 프랑스의 올리베탄, 이탈리아의 디오 다티는 성경을 유럽의 모국어로 번역하기 시작했다. 성경은 다시 한번 널리 읽히고 시장과 선술집, 학교와 대학에서 널리 논의되었다. 언론에서 성경 주석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거대한 강처럼, 성경의 급류는 유럽을 휩쓸고 수세기 동안 쌓인 쓰레기를 씻어 내고 교황의 힘을 약화시키고 진리와 그 자매인 자유를 큰 어둠 속에 앉은 사람들에게 가져다 주었다.

우리는 우리의 교리를 위해 개혁자들이 아니라 성경을 바라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영적 진리의 유일한 근원이자 최종 중재자인 그분의 말씀을 정당한 위치로 회복시키기 위해 그분에 의해 세워진 사람들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었던 이 사람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루터의 기억에 남는 문구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들은 인간의 전통에 대항하는 진리를 옹호하기 위해 부, 안전, 생명 자체 등 모든 것을 내어줄 준비가 되어있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비슷한 태도를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단순히 전통이라고 해서 전통을 반대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우리는 전통이 성경의 가르침과 모순될 때 결코 순종해서는 안된다. 게다가, 우리는 항상 경계해야 하며 그들이 “사람들의 명령들을 교리로”(마 15:9) 가르쳤기 때문에 주 예수님께서 책망하신 바리새인들을 모방하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개인적으로 그리고 그분의 백성의 모임들에서 오직 성경의 진리로 살도록 우리를 도와 주시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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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