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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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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벤 밀러

아버지, 왜 이렇게 빨리 이사를 가는 거죠?” 아마도 이삭은 밧줄을 풀고 말뚝을 뽑을 때 이 질문을 했을 수도 있다. 아브라함과 그의 가족은 가나안에 온 이후로 줄곧 장막에서 살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언젠가 그들에게 주신다고 약속했던 땅에 임시 거주자들이었다.

 

아브라함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우상 숭배의 땅에서 왔다. 하나님을 따르는 그의 삶은 어려움과 실망은 없었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고 그것은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15:6; 4:3). 그의 믿음의 삶은 히브리서 11장에서 그의 삶에 대한 기록이 우리에게 귀중한 교훈을 주는 자리를 얻게 해주었다. 히브리서 11장의 기자가 아브라함의 믿음과 연결시키는 것은 네 가지다.

 

그의 순종(8)

아브라함이 메소포타미아에 살았을 때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서 고향과 그의 가족을 떠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주실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셨다. 이 교훈의 어려움은 그가 하란으로 가서 도중에 그의 아버지가 죽을 때까지 그곳에 머물렀다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7:4). 그는 그 땅을 완전히 떠나지 않았고 가족을 완전히 떠나지도 않았다. 이 기간 동안 헌신적인 제단이나 신성한 모습이 없었다는 것이 이상한가그는 자신의 신실함으로 기억되지만 그의 실패도 있었다. 그러나 히브리서 11장은 그러한 것들을 간과하고 그가 부름을 받았을 때 하나님이 그를 어디로 데려가실 지를 모르는 채 순종함으로 그의 땅을 떠났다고 지적한다.

 

아브라함은 친척들을 두고 떠났는데 어쩌면 다시는 그들을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는 메소포타미아의 이교도와 결별하고 있었다. 이것은 작은 희생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남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를 더 나은 삶으로 부르셨다. 그는 이제 제단을 쌓고 여호와와 교통할 것이다. 여기서 하나님은 그에게 거할 땅을 주셨고 여기서 그는 아들을 갖게 될 것이다.

 

아브라함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셔서 그분을 따르라 하실 때, 우리가 그분을 볼 수만 있다면 그 희생은 언제나 복으로 가려질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어떤 희생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우리 구주와의 조용한 교제의 가치와 그분의 계신 곳에서 보낸 시간에서 오는 확신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을 의도적으로 인식하고 살아야 한다. 하나님을 알고 그분처럼 되고, 다른 사람들을 그분께로 데려오는 것이다.

 

그의 인내(9)

아브라함은 약속의 땅에서 이방인으로 살았다. 그는 일정한 소유지에 살지 않고 이동할 수 있는 장막에서 살았다. 그는 그에게 약속된 막대한 영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정착하지 않고 자신의 영토를 차지하지 않았다. 거의 100년 가까이 아브라함은 그 땅에 살았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정착할 곳을 주지 않으셨다( 7:5). 그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실 것이라고 계속 믿고 있었다. 그는 아들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늦어지는 것처럼 보였을 때 인내했다. 기근이 닥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지 못하였을 때에, 그는 그 후 처음 제단으로 돌아와서 하나님을 다시 불렀다. 그는 신자인 조카가 사악한 도시에 살려고 갔을 때도 인내했다.

 

우리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일이 평범하며 일상적일 때 우리는 그분을 신뢰해야 한다. 개인적인 실망과 실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항상 그분을 의지할 수 있다. 그리고 다른 신자들이 진리를 외면하고 이 세상을 따라갈 때도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그의 비전(10)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나타내신 비전을 가지고 있었지만 또 다른 종류의 비전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이 세상 너머의 도시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도 그는 바닥을 깔고 콘크리트 벽을 타설하고 저택을 짓고 싶은 유혹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세상의 덧없는 특성을 인식하고 영원한 토대가 있는 도시, 즉 하나님이 지으신 도시를 찾았다. 아브라함은 부유한 사람이었으며 자신의 사업에 소홀하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그를 풍성하게 복 주셨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자신에 대한 요구와 영원한 가치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살았다.

 

내 소유물에 대한 나의 전망은 어떠한가? 내가 내 소유물이 일시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느슨한 손으로 잡고 있는가나의 세계관이 하나님의 말씀에 맞춰져 있는가? 아니면 우리의 물질만능주의적이고 자기집착적인 문화가 내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을 형성하고 있는가나의 영원한 시민권이 하늘에 있고, 우리는 어기서 (육체적으로나 영적으로) 낯선 존재에 불과하며, 단지 내 물건이 지상에 있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나타내는가?

 

그의 희생(17-18)

이것은 아마도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아브라함의 신뢰의 정점일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의 아들 이삭을 먼 산에서 번제물로 바치도록 요청하셨다. 이삭을 바치는 것의 의미는 아브라함이 약속을 받은 자”(17)라는 묘사로 강조된다. 이삭은 기적의 아이였다. 그는 아브라함의 후손이 바다의 모래만큼 번성하게 될 상속자였다. 따라서 아브라함에게는 이 ​​요청이 하나님의 목적과 약속에 반하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의 순종은 이제 그의 미래를 몰수하고 그에게 별처럼 많은 후손을 주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무효화하는 것을 의미하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고 계셨다(17; 22:1). 아브라함이 하나님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것이 있었을까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그의 생각이나 또는 받아들일 수 있는 섬김이 어떤 모습인지에 대한 그의 인식에 제약을 받을 것인가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일을 할 준비를 하면서 잠시 흔들렸다는 암시는 없다. 하나님께 대한 순종이 우선이었고 아브라함은 대안을 위한 여지를 마음 속에 남겨두지 않았다. 그는 이 사건의 향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이 그의 약속을 성취하기 위해 이삭을 죽음에서 일으키실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희생을 치르기 전에 주님의 천사가 개입하여 네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줄 내가 이제 아노라!”라고 말했다( 22:12).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시험하셔서 하나님께 충성하고 헌신하는 마음을 시험하시는 특정한 시험의 시기가 우리 삶에서 있을 수 있다. 우리의 혼란과 불확실성의 한가운데서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께 단순한 순종으로 우리의 안락과 관념을 기꺼이 희생할 것인지를 보고 계신다.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한 증거는 우리에게 도전과 용기를 준다.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시련과 승리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통해 그는 하나님의 성품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자신의 삶에 일치시켰다. 그는 믿음으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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