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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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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0. 20. 07:16 짐 플레니건/구주의 옷들

짐 플레니건

아마도 성경에 나오는 옷들이 인격을 말해준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구주의 옷들을 그분의 삶과 사역에 대한 묵상과 함께 그분의 위격의 영광을 다루는 위대한 기초에 대한 연구를 고려하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그분의 모든 옷은 그분 자신을 기억함과 함께 그분의 유아기의 강보나 통으로 짠 옷이나 자주색 조롱의 겉옷이나 마침내 그분을 쌌던 무덤의 옷이나 그분의 육체의 날 동안 입으신 다른 옷들도 향기가 있다.

 

그러나 시편 104:1-2절에서 “주는 심히 위대하시며 존귀와 위엄으로 옷 입으셨나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베들레헴과 성육신 이전을 되돌아본다. 연대를 알 수 없는 시대를 초월한 과거에서, 영원의 “세월이 없는” 날들에서 자발적으로 사람이 되어 우리의 구주가 되신 그분은 빛으로 옷을 입으셨다. “그분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고”(사 6:1). 그분의 영광은 하늘의 거룩함을 가득 채웠고 그곳에 있는 모든 지적인 존재는 그분의 헤아릴 수 없는 위대함을 찬양했다. 스랍과 그룹들은 그들의 얼굴을 가리고 수많은 천사들이 서둘러 그분의 명령을 행하는 동안 성경은 이사야가 그의 장엄한 환상에서 본 것이 참으로 주 예수님의 영광임을 확인시켜 준다(요 12:41). 그분은 영광과 위엄으로 덮인 빛의 옷을 입었다.

 

불변하고, 볼 수 없는 하나님 지혜,
가까이할 수 없는 빛 속에서 우리의 눈에서 숨겨져,
가장 복되고 영광스러운, 태고의 날들
전능하시고, 승리하신 주님의 크신 이름을 찬양합니다.

(월터 C. 스미스)

 

작가는 같은 찬송에서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빛의 광채만이 그대를 숨긴다”

 

우리 주님의 신성한 진리는 모든 면에서 공격받는다. 그것은 처음부터 항상 그래 왔으며 초기 신약의 저자들은 그것을 옹호하고 강조하려 했다. 그러나 구주께서는 신격의 칭호를 지니신다. 그분은 오직 신성의 특권인 속성을 행사하고 오직 하나님이신 분에게만 귀속될 수 있는 영예를 받아들이신다. 개방적이고 정직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이미 언급된 두 개의 성경을 읽고도 여전히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가 다소 어렵다(사 6:1; 요 12:41).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는 신성한 위격들 사이의 관계를 추론하고 암시하며 유대교인과 이슬람교도 모두 신성에 대한 주장으로 여겼음을 주목하라(요 5:18). 그들은 빌라도에게 “그는 마땅히 죽어야 하리니 이는 그가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로 만들었기 때문이니이다”라고 말했다(요 19:7).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는 유일하고 영원하다. 그분만이 영원한 친밀함 안에서 아버지의 아들이기에 그분을 독생자로 나타내신다. 그분은 언제나 아버지 품 안에 있는 아들이시다. 성육신으로 우리 세상에 오셨지만 아버지의 품을 떠나지 않으셨고, 은혜에 의해 사람의 모양으로 발견되었지만 그 말씀은 항상 참되다. “그분은 하나님의 형체로 계시므로”(요 1:18; 빌 2:6).

 

그분은 우리와 함께 계신 임마누엘 하나님이다. 그분은 옛적부터 늘 계신 분이시며, 영원의 아버지이시다, 그분의 나아감은 옛적부터 있었으며 영원부터 있었느니라(미 5:2). 그분은 알파와 오메가, 시작과 끝이다. 그분은 말씀이시며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이며, 생명의 시작이나 끝이 없는 위대한 “스스로 있는 자”이다. 그분은 다윗의 뿌리이자 자손이다. 그래서 다윗 왕은 침례 요한이 말했던 것처럼 “내 뒤에 오시는 분이 있는데 그분께서 나보다 앞서신 것은 그분께서 나보다 먼저 계셨기 때문이라”(요 1:30). 그분은 영원하고, 헤아릴 수 없으며, 비교할 수 없다, 그분이 하나님이다!

 

그분의 생애 동안 예수님은 신성한 속성을 실행하셨다. 전능과 전지는 오직 하나님께 속한다. 전능은 모든 힘이고 전지는 모든 지식이며 구주께서는 둘 다 가지고 계셨다. 전능하신 분으로서 물을 포주를 만드셨고, 바람과 파도를 한마디로 진정시키시고 파도 치는 물 위를 걸으셨다. 그분은 한때 베드로에게 물고기에서 동전을 가져오라고 명하셨다. 그분은 땅과 바다의 수확물의 빵과 물고기로 군중을 먹이셨고 한 마디 말씀으로 무화과 나무를 말라 죽게 하셨다. 그분은 나병, 중풍, 눈 멀고 청각 장애를 치료하셨다. 그분은 벙어리로 말을 하게 하고, 귀신의 매임에서 구하고, 온갖 질병을 고치고, 불치병을 고치셨으며, 심지어 죽음 자체도 그분께 순종해야 했다. 그분은 참으로 전능하셨다.

 

깊음, 마귀들 그리고 죽은 자,
그분이 하셨던 말씀에 복종했다,
이렇게 그분의 권능과 힘을 드러내심은
하나님 되심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

(저자 불명)

 

그분의 전지전능함 안에서 그분은 모든 것을 알고 계셨다. 서기관들의 마음 속에 있는 무언의 추리에 얼마나 자주 대답하시며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속으로 이것들을 따져 보느냐?”(막 2:8). 마지막 저녁에 제자들과 함께 그분의 만물에 대한 지식을 계시하셨다. “예수님께서 자기 때가 이르러 … 아시고.”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으로부터 왔다가 하나님께로 갈 것을 아시고.” “그분께서 자기를 배반하여 넘길 자가 누구인지 아셨기 때문이라.” “나는 내가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아노라”(요 13:1,3,11,18). 그분은 또한 적들이 무엇을 계획하고 있는지 알고 계셨다. 예루살렘으로의 마지막 여행에서 그분은 자신 앞에 무엇이 놓여 있는지 알고 계셨다. 그분은 동산, 배신과 체포, 가야바의 집, 베드로의 부인, 재판정과 골고다에 대해 알고 계셨다. 가시, 못, 갈증과 창. 그분의 전지전능하심으로 모든 것을 알고 계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으로 가기로 굳게 결심하셨다(눅 9:51).

 

이 모든 것이 그분의 신성의 증거였다. 그러므로 그분은 오직 하나님께만 주어진 명예를 받아들일 권리가 있었다. 도마는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라 말했고 구주께서는 그것을 받아들이셨다. 모든 사람은 그분이 가르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처럼 아들을 공경해야 한다. 그분은 그들에게 아버지와 아들의 5중 평등을 요한복음 5장에서 설명하셨다.

 

성경 전체에 걸쳐 여덟 번 예수님은 직접적으로 하나님이라고 불리신다.

 

“그의 이름은 … 강하신 하나님, …할 것이기 때문이라”(사 9:6);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마 1:23);
“말씀이 하나님이셨더라”(요 1:1).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 20:28);
“모든 것 위에 계시며 영원토록 찬송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롬 9:5);
“저 복된 소망과 위대하신 하나님 곧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딛 2:13);
“오 하나님이여, 주의 왕좌는 영원무궁하오며”(히 1:8; 시 45:6);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 이분은 참 하나님이시요”(요일 5:20).

 

어떤 것들은 우리의 작은 인간 지성으로는 너무 크다. 때때로 우리는 경이로움으로 절하며 경배할 수 있다. 전능자가 의존해야 했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아버지의 아들이 마리아의 아들이 되어야 하는가? 태고부터 계신 이가 때가 되어 유아가 되어야 한다고? 그러나 이것이 우리가 그분이 입으신 옷을 계속 생각할 때 우리가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분이 어떤 분이시냐?”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