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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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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0. 22. 17:45 짐 플레니건/구주의 옷들

짐 플레니건

거룩한 산! 그렇게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변형을 기억하면서 그것을 칭한다. 우리는 그분의 위엄의 목격자였다고 그는 회상한다. 그들은 왕을 보았고 왕국의 영광을 맛보았다. 그들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으로 이들 세 사람은 특권을 가졌던 사람들이었다. 구주께서는 일찍이 민족으로부터 거절당하시고 곧 그들에게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실 것을 말씀하셨지만 이제는 다가올 왕국의 영광에서 그분의 영광을 그들에게 보게 하실 것이다. 마태와 마가는 “엿새 후”라고 말하고 누가는 “여드레쯤”이라고 말한다. 마태와 마가는 그 사이의 날짜를 계산하고 누가는 그 주간의 시작과 끝의 이틀을 포함한다.

 

마태와 마가는 모두 예수님이 그들을 높은 산으로 데려가셨다고 기록한다. 문맥적으로나 지리적으로 그것은 아마도 헤르몬 산의 돌출부들 중 하나일 것이다. 그분의 사역이 시작될 때 마귀는 예수님을 매우 높은 산으로 데려갔고(마 4:8), 그 관점에서 그에게 그분의 경배의 대가로 세상의 모든 왕국과 그 영광을 그분에게 제의했다. 분명히 사탄은 이 영광이 이미 우리 주님의 것임을 알고 있었다. 인내심으로 그분은 기다릴 수 있었으며 이제 3년 후 다른 산에서 그분의 사역이 끝날 때를 바라보며 그분은 총애를 받는 제자들이 그 영광을 엿볼 수 있게 하셨다.

 

그분은 변형되셨다. 그분의 용모는 영광으로 빛났다. “그분의 얼굴이 해같이 빛나고 그분의 옷이 빛같이 희게 되었더라”(마 17:2). 여러 세기 전에 모세는 세 사람과 함께 산에 올랐다가 내려오자 그의 얼굴이 빛났다. 그것은 얇은 베일로도 가릴 수 있는 반사된 영광이었다(출 34:29-35; 고후 3:13). 그러나 어떤 휘장도 영광의 광채이신 그분의 영광을 숨길 수 없었다(히 1:3). 그분의 옷은 광채를 발했다.

 

마태, 마가, 누가는 모두 구주의 옷에 이 영향을 기록한다. 그들은 함께 그분의 옷이 “빛처럼 하얗고” “하얗고 반짝임”, “눈처럼 희다”라고 말한다. 마가는 그들이 지구상의 어떤 세탁공이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희게 되었다고 덧붙인다. 세탁공은 옷을 손질하는 사람이었고 염색이나 표백 기술에 능숙한 세탁업자였다. 가장 유능한 세탁공도 예수님의 옷이 그 산에서 빛나게 했듯이 희게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조금 있으면 거친 사람들이 이 옷을 그분에게서 끔찍하게 벗길 것이다. 의심할 여지없이 그것들은 피로 물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들을 입으신 그분의 영광과 함께 영광스럽게 빛나며 생생하다. 갈릴리 사람의 집에서 만든 옷은, 나사렛의 목수의 집에서 온 분의 옷이지만, 나사렛 예수님은 영광의 주님이셨고, 이제는 그의 개인적, 본질적으로, 그리고 영원한 영광이 그분의 옷을 통해 빛났다. 불쌍한 여인이 치유를 위해 손을 뻗은 그 경계선이 자비의 옷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은 감동적이다. 이제 그것들은 위엄의 옷이다.

 

하늘에서 온 두 사람이 지상의 세 사람과 합류하여 그 영광을 본다. 하늘은 곧 일어날 모든 일과 일치한다. 모세와 엘리야는 구주와 이야기하지만 누가는 대화의 주제를 밝힌다. 그들은 “그분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셔야 할 그분의 별세[그분의 출애굽]”라고 부르는 그분의 다가오는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다가오는 사건은 모두 주권자의 손에 있었다. 그분은 자신이 모든 것을 명령하고 있었다. 모세와 엘리야가 거기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 합당했다. 모세는 홍해의 물을 통해 백성을 인도했다(출 14:22). 엘리야는 요단을 통과했다(왕하 2:8). 그러나 모세와 엘리야 모두에게 그 물은 기적적으로 갈라져 마른 땅을 통과했다. 그들이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그분에게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분은 고통과 슬픔의 홍수에 휩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성취될 것이며 궁극적으로 부활에서 승리하실 것이다.

 

율법과 선지자들이 함께 그리스도의 고난과 그 뒤에 올 영광을 예언했기 때문에 모세와 엘리야가 이 거룩한 산에서 그리스도와 대화하는 것이 참으로 적절했다. 모세는 시내산을 나타내고 엘리야는 갈멜산을 나타낸다. 이것은 다른 것이었다. 이것은 나중에 성도들에 의해 “변화의 산”으로 알려졌는데, 그곳에서 위엄의 옷은 메시아의 영광으로 불타고 있었다.

 

슬프게도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빛나는 구름이 내려와 그들을 덮을 때까지 잠을 잤다. 이것은 평범한 구름이 아니다. 베드로는 “뛰어난 영광”(벧후 1:17)이라고 말한다. 의심할 여지없이 시내산에 내려온 구름인 세키나(출 19:16), 회중의 장막을 덮고 이스라엘 자손을 광야로 인도한 구름이 있었다(출 40:34-38). 이것은 장엄한 임재의 상징이었다. 그것은 영광의 구름이었고 제자들은 두려워했다. 이제 율법과 선지자들이 물러나서 예수님만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마땅하였다. 그분은 지고하셔야 하며 그분의 영광은 유일하다. 그러자 구름 속에서 이를 확인하는 음성이 들려왔다.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그를 매우 기뻐하노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마 17:5).

 

두 번째로 하늘이 열리면서 아버지께서는 그분의 아들에게 기쁨을 표현하셨다. 이전에는 구주의 사역이 시작되었을 때였으며, 나사렛에서 거룩한 30년의 생활을 돌이켜 보면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마치 연한 식물처럼 예수님은 메마르고 황량한 땅에서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사셨다. 그분은 이스라엘에 그분을 위한 다른 것이 거의 없었을 때 하나님께 기쁨을 드렸다. 의식과 행사의 많은 종교 활동이 있었지만 부패와 더러움도 있었다. 그 속에서 예수님은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셨다. 그런 다음 그 30년을 되돌아보면서 아버지는 아들에 대한 기쁨에 대해 말씀하셨다. 이제 거룩한 산에서 칭찬도 동일하다. 3년간의 바쁜 사역이 왔다가 갔다. 그 세월 동안 바리새인, 사두개인, 헤롯당의 모든 반대와 함께 서기관, 통치자, 장로들에 의한 역경 속에서 그분은 흠잡을 데 없이 살았으며 여호와의 완전한 종으로 신실하게 섬기셨다. 바쁜 공생애 사역을 돌아보며 아버지는 다시 한 번 기쁨을 표현하셨다.

 

그러나 이제 “그의 말을 들으라”는 단어가 추가되었다. 베드로는 세 개의 장막을 제안하고 그곳 영광 가운데 머물기를 제안했지만 때도 장소도 아니었다. 예수님은 그것을 아셨고, 그래서 아버지는 “그의 말을 들으라”라고 말씀하셨다. 구주는 결국 말씀이시다. 그분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메시지이다. 그분은 그분에게 들을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생각과 뜻을 온전히 전하실 것이다. 그래서 그분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실 때까지 그들이 본 환상에 대해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들에게 명령하셨다. 그분은 이미 거절당했다는 것을 얼마나 잘 아셨는가. 방문의 날은 거의 끝나 가고 있었다. 이스라엘은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했고, 그분이 부활할 때까지 그분의 제자들은 그 민족에게 그분의 메시아 되심을 전파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제 이 영광의 산을 떠나 예루살렘과 골고다로 가야 한다.

 

이 세 사람은 그 영광의 광경을 결코 잊지 않았다! 베드로는 아마도 40년 후에 쓰여진 그의 두 번째 서신에서 그것을 확인한다. 그들에게 얼마나 큰 격려가 되었겠는가? 야고보는 일찍이 순교자가 될 예정이었다. 베드로는 오순절 날의 담대한 대변인이 되어야 했다. 요한은 추방되어 세기가 끝날 때까지 계속해서 살아야 했다. 영광 그 자체처럼 희고 빛나는 옷에 대한 기억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