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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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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여러분 모두 또 이 집회를 참석하여 주셔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가 함께 주님의 말씀을 상고하는 데 있어서 주님께서 복 주시리라 믿습니다.

오늘 이 시간 여러 군데 성경 말씀을 찾아볼 것입니다.

먼저 시편 147편 1절부터 5절까지를 먼저 읽도록 하겠습니다.

1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께 찬양함이 선함이여 찬송함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 2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우시며 이스라엘의 흩어진 자를 모으시며 3 상심한 자를 고치시며 저희 상처를 싸매시는도다 4 저가 별의 수효를 계수하시고 저희를 다 이름대로 부르시는도다 5 우리 주는 광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며 그 지혜가 무궁하시도다

 

제가 오늘 오전 시간에 주위를 산책을 하면서 이 대전에 수학연구소가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수학이라는 것은 굉장히 흥미를 끄는 그런 과목입니다. 그런데 진정한 수학 연구소는 여기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참으로 우리는 의심의 여지없이 그 수학을 만드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수학이라는 것이 옛날에 수학자인 아르키메데스 같은 옛날 고대 수학자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수학은 하나님 자신이 직접 만드신 것입니다. 참으로 이 수학자들이 그 만물의 수를 세면서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 수를 이미 그 안에 남겨두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구절에서 저가 별의 수효를 계수하시고라는 말씀을 봅니다. 그리고 욥은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걸음을 계수하신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별의 수효를 다 계수해 놓으셨습니다. 하지만 이 현대 과학의 시대에도 사람들은 지금 별의 수효가 어떻게 되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제가 신학과 또한 기술을 동시에 지금 다루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의 이 계산에 대해서 다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벨사살 왕이 다니엘서에 나온 것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너의 왕국을 계수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수에 대해서 관심이 많으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어제 오늘에 거쳐서 이 흥미로운 숫자인 4에 대해서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창세기에 나온 4명의 남자에 대해서 보았습니다. 그리고 신약 성경 마태복음에 나온 4명의 여자에 대해서도 언급을 하였습니다.

우리가 마태복음에 나온 그 4명의 여자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말씀을 드리지 못했지만 잠시 후에 그것을 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성경의 수학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될 때 특별히 4라는게 흥미로운 점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2더하기 2는 4다 이렇게 말합니다. 때때로 성경에서도 2더하기 2가 4로 나오는 데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아주 흔한 예는 아닙니다. 성경에서는 오히려 4를 3 더하기 1로 자주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 전체적으로 많은 그런 예를 보게 됩니다. 우선 몇 가지를 다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옛 성막에 대해서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이 성막에 네 개의 덮개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주 아름다운 휘장이 먼저 덮여집니다. 그리고 염소 털로 두 번째로 덮여집니다. 그리고 붉은 물들인 양의 가죽으로 덮여집니다. 마지막에 물개의 가죽으로 덮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 개의 동물의 재료로 만든 덮개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 또 하나의 덮개가 있습니다. 그것은 동물의 재료로 만든 것이 아니고 그것은 식물의 왕국에서 가지고 온 재료로 만든 것입니다. 베입니다.

우리는 또한 다니엘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다니엘서 1장에서 그 제국에 왕의 대학교를 다니는 네 명의 청년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그 네 명의 인물은 셋 더하기 하나로 나눠집니다. 다니엘이 그 중에 가장 유명한 사람이지만 또한 세 명의 친구가 있습니다. 또한 다니엘의 그와 같이 3더하기 1의 예가 더 있습니다. 우리는 다니엘이 느부갓네살의 꿈 가운데 네 개의 금속으로 만든 신상을 보게 됩니다. 금, 은, 동, 그리고 철로 되어 있습니다. 그 위에 세 개는 순전히 다 금속입니다. 그런데 네 번째 철은 진흙으로 섞여 있습니다. 이와 같이 셋 더하기 하나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다니엘서 3장에 또 나와 있습니다. 다니엘 세 친구가 풀무불에 던져지게 됩니다. 그런데 느부갓네살이 그 풀무불을 보게 될 때에 다른 한 사람을 더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다른 한 사람은 세 친구와는 다른 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네 번째 사람에 대해서 마치 하나님의 아들과 같도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구약에 나온 많은 예 중에 제가 몇 가지만 3 더하기 1을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그리고 동일한 것이 반복적으로 신약에 나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에게 한번 이것을 기억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마가복음 4장에서 이런 기록이 있는 것을 생각합니다. 이 특별한 장에서 주님께서는 네 개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마가복음 4장 마지막과 그리고 그 다음 장에서 네 개의 기적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네 개의 기적이 네 개의 비유 뒤를 따라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먼저 첫 번째 비유는 씨 뿌리는 비유입니다. 우리는 여기에 네 개의 다른 종류의 밭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세 개의 밭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밭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의 밭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다시 3 더하기 1입니다. 그런데 네 개의 기적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그 네 개의 기적이 무엇인지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4장 마지막에 있는 기적은 바람과 바다를 잔잔케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5장 초반에는 귀신 들린, 군대귀신 들린 자가 나옵니다. 혈루증에 걸린 여자가 두 번째로 나옵니다. 그리고 야이로의 딸이 나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3 더하기 1의 기적입니다. 세 개의 기적은 사람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하나의 네 번째 기적은 바람과 관련된 기적이었습니다.

계속해서 성경은 이와 같은 조합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단지 2 더하기 2가 아니라 3 더하기 1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구약에서 네 개가 그룹으로 나오는 것과 또 신약에서 네 개가 그룹으로 나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구약에서는 네 개의 대 선지자입니다. 그리고 신약에서는 네 개의 복음서입니다. 우리가 비록 이 시간에 그 모두를 자세히 다룰 수는 없지만 분명히 특별히 나온 특징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구약의 이 4명의 대 선지자를 알고 있습니다. 이사야, 예레미야 그리고 에스겔, 다니엘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이 4명의 선지자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는 중요한 것입니다. 이사야는 66장으로 된 성경을 기록하였습니다. 예레미야는 52장으로 된 성경을 기록하였습니다. 에스겔은 48장으로 된 성경을 기록하였고 다니엘은 12장으로 된 성경을 기록했습니다.

우리는 왜 하나님께서 이 네 선지자를 통해서 이렇게 많은 분량의 계시를 하셨는지 질문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먼저 기억해야 되는 것은 이 4명의 선지자가 아주 격동의 시기 가운데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 가운데 많은 변화가 있었던 시기입니다. 이사야는 앗수르 제국이 이제 번영하던 때에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다른 3명의 선지자들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은 바벨론 제국이 융성하던 때에 살았던 선지자들입니다. 앗수르 제국은 기원전 700년 전에 있었고 바벨론 제국은 기원전 600년 전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두 제국은 그때 당시에 많은 영토를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앗수르 제국은 그들의 군대가 아주 잔혹한 것으로 명성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계속해서 한 나라를 멸망시키고 그 연이어서 다른 제국을 멸망시키고 그렇게 확장되어 갔습니다. 100년 후에 바벨론 제국이 다시 번영하게 됩니다. 이때 당시에 많은 제국들이 사라지고 국제 지도가 다시 그려졌던 것입니다. 참으로 정치적으로 급격하게 변동되던 시대여서 불확실한 가운데에 살고 있었던 시대입니다. 모든 사회가 요동하던 그러한 시대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들의 믿음을 굳게 하고 보존하기 위해서 어떤 것이 필요했습니까?

 

그리고 바로 이 시기에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방식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 성경에 상당한 분량의 말씀이 바로 이 짧은 격동의 시대에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이 4명의 선지자는 모두 하나님의 보좌에 대해서 언급하게 됩니다. 이때 당시에 다른 많은 나라의 보좌들은 전부 멸망하였습니다. 그 땅에 많은 보좌 왕국들이 전부 패하고 사라져갔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결코 붕괴하지 않는 보좌가 있다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결코 쓰러지지 않는 그 왕국이 있다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땅에 있는 보좌들은 모두 흔들리고 무너질지라도 하늘의 하나님의 보좌는 견고하게 섰다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도 역시 이 변화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전쟁들과 극심한 변화 가운데 우리가 놓여 있습니다. 우리는 시장이 붕괴되는 어떤 나라들을 보게 됩니다. 지진과 화산과 그리고 쓰나미들이 재앙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모든 것 위에 하나님의 보좌는 영원토록 견고하게 서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목적으로 이 네 선지자가 말씀을 전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보좌에 대해서 4명의 선지자는 각각 다른 각도에서 조망하게 됩니다.

우리가 이사야서 6장 1절부터 4절까지 읽도록 하겠습니다.

1 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2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3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4 이같이 창화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이사야가 하나님의 보좌에 대해서 강조했던 것은 그 보좌의 은혜입니다. 이사야가 자신의 죄를 자백하였을 때 즉시로 그 죄가 속하여졌음을 보게 됩니다. 이 앗수르 제국과 바벨론 제국은 다른 대적들에게 전혀 자비를 베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보좌는 이 자비로 가득 차 있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17장 12절입니다. “영화로우신 보좌여 원시부터 높이 계시며 우리의 성소이시며”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보좌에 그 존귀하고 고귀한 영화로움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보좌에 대해서 원시부터 높이 계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에스겔은 어떤 면을 기록하고 있습니까? 사실 예레미야와 에스겔의 장은 성경에서 굉장히 좀 어

려운 장입니다. 여러분께서 이제 편안하게 그것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 에스겔에서는 많은 천사들이 또한 바퀴가 달린 어떤 물체들을 말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에스겔서 1장에 보면 바퀴가 달린 어떤 생물에 그 위에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에스겔이 말하고 있는 하나님의 보좌의 특징은 이동성입니다. 하나님의 보좌는 어느 순간에나 어느 공간에나 필요가 있는 곳에 즉시로 이동하는 보좌입니다. 그래서 이 보좌가 바퀴 위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 여기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바퀴가 이렇게 네 면으로 되어 있습니다. 제가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하는데요. 여러분이 자동차를 운전할 때에 핸들을 돌리면 그쪽 방향으로 차가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보좌 아래에 있는 그 바퀴는 수직으로 직각으로 2개의 바퀴가 겹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차 핸들을 돌릴 때 방향을 꺾기 위해서 차가 이렇게 회전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바퀴는 수직으로 되어 있어서 원하는 방향으로 즉시로 방향을 바꾸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좌는 순간적으로 즉시로 이동이 가능한 그러한 보좌입니다.

 

그리고 다니엘서에서는 하나님의 보좌에 대해서 다른 측면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다니엘에 나온 하나님의 보좌는 하나님의 능력을 강조합니다. 다니엘이 10대 시절에 바벨론의 큰 도시에 오게 되었습니다. 바벨론에 도착했을 때 다니엘은 느브갓네살이 세운 큰 성전과 궁궐들을 보게 됩니다. 다니엘이 그의 고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그 수많은 군대들을 그는 눈으로 보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다니엘에게 하나님은 더 능력 있는 하나님의 군대를 보여주십니다.

영어 성경에 영어 찬송가에 “하나님께서 영원토록 보좌에 계시니”라는 찬송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큰 위안이 되는 그러한 찬송가입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보좌 가운데 영원토록 가장 높은 위치에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큰 위안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좌는 굳게 서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어떠한 변화가 일어난다 할지라도 그것은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것도 그 하나님의 보좌를 흔들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좌는 영원토록 동일하며,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주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네 선지자가 하나님의 보좌에 대해서 언급했고, 바로 하나님께서 이 격동하는 세계를 모두 주관하고 계신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의 숫자가 이 세상의 숫자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와 같이 구약 성경에 흥미로운 네 개의 그룹으로 책이 묶여져 있습니다.

 

이제 그것과 비슷한 신약에서 네 개의 책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것은 사복음서를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이것은 3 더하기 1로 되어 있습니다. 마태, 마가, 누가가 우리가 이제 공관 복음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주로 우리 주님께서 갈릴리에서 사역하신 것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은 그런 것과는 다르게 우리 주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사역한 것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네 개의 모든 복음서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우리 구주를 각각 다른 방면에서 비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 시간에 특별히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그 각각의 복음서를 기록한 그 인간 저자들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아들에 대해서 나타내시기 위해서 4명의 다른 사람을 택하셔서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우선 마태복음입니다. 우리가 다 알다시피 마태는 세리였습니다. 그것은 오늘날로 치면 세무 공무원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당시에 이제 왕에게 속한 왕의 신하입니다. 그는 로마 왕 가이사에게 속한 신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왕의 신하를 사용해서 왕이신 주님에 대해서 그 왕의 주권이 주권을 가지고 계신 분을 기록하게 하십니다. 그분은 로마 제국의 황제보다 높으신 분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바로 왕의 주권을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

 

그리고 마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마가가 한때 실패한 종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가 한때는 바울과 함께 전도 여행을 시작했지만 도중에 돌아가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이 실패한 종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온전한 종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누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누가는 공적인 종입니다. 그는 의사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른 사람들을 대상으로 일하였습니다. 그 사람들이 병에 걸린 것 아픈 것을 낫게 해주는 그런 종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누가조차도 다른 사람들의 어려움을 도울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하나님께서는 온전한 구주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구주를 누가를 통해서 기록하게 하십니다. 이 구주께서는 다른 사람들의 고칠 수 없는 병이 없는 것입니다. 그분이 고칠 수 없는 다른 사람들의 병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네 번째 복음서를 기록한 요한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요한은 사랑받은 제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은 왕의 종이라기보다는, 실패한 종이라기보다는, 공적인 종이라기보다는, 그는 가정 안에서의 종입니다. 우리가 요한을 처음 등장하게 되는 모습을 보게 될 때 그는 아버지의 일을 돕고 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세베대였습니다. 그 형제 야고보와 함께 아버지의 배에서 일을 돕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 요한을 사용하셔서 하나님께서는 온전한 아들을 기록하게 하십니다. 요한은 예전에 그의 형제 야고보와 함께 가정에서 아들로서 일을 돕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 요한이 독생자에 대해서 그 아들에 대해서 기록하게 된 것입니다. 요한은 자기의 형제와 같이 일했지만 이 독생자는 그분과 같이 일하시는 다른 아들이 없는 것입니다. 유일한 독특한 자리를 차지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와 같이 3 더하기 1 또는 2 더하기 2에 대해서 말씀을 그리고 그 두 가지 모두 여기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은 평행하게 비슷하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그것과 꽤 다릅니다. 그런데 또한 우리는 여기서 2 더하기 2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기서 마태와 요한이 직접 주님과 함께 따라다니면서 눈으로 본 증인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사도들입니다. 그런데 마가와 누가는 그런 사도가 아닙니다. 그래서 사도로서 복음을 기록한 저자와 사도가 아니면서 기록한 두 제자를 보게 됩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구약 성경의 네 개와 신약 성경의 네 개를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구약에 있는 네 개와 신약의 네 개를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사야서 9장입니다. 우리는 이 계시에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을 보게 됩니다.

이사야서 9장 6절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구주의 네 개의 이름입니다. 사실 이 위대한 9절 6절에서는 일곱 개의 문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가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낫고” 언뜻 보았을 때 그냥 일반적인 그런 진술과 같습니다. 매일매일 수많은 아기들이 나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아기는 결코 한 번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앞 장에서 이사야는 이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이를 낳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문장에서 죄 없는 구주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두 번째 문장입니다. 단지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나온 것이 아니라 또한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다. 마리아의 아기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첫 번째 절에서는 우리 주님의 인성을 말했고 두 번째 절에서는 우리 주님의 신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그 어깨의 정세가 메웠다 그분의 일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네 개에서 그 주님의 능력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여기에 5개의 이름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지만 저는 이것을 네 개로 보고 있습니다. 어떤 영어 성경과 또한 한국어 성경도 그러리라 생각되지만 여기에 기묘자라, 모사라 이렇게 2개로 나눠져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믿기로 이 두 개의 표현은 하나로 연결돼야 됩니다. 그래서 놀라운 모사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전능하신 하나님, 그리고 세 번째로 영존하시는 아버지, 그리고 네 번째로 평강의 왕입니다.

그리고 이 네 개의 우리 주님의 호칭 모두 그분의 능력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능력으로 우리 주님께서는 이 세상의 정사를 그 어깨에 멜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정부들이 모두 어려워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대통령들과 정치인들은 다음에 자신들이 어떻게 해야 될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사이에 여러 부분에서 그 많은 문제들을 다루기 어려운 것입니다

 

참으로 이 세상에 위대한 사람들도 이러한 문제 가운데서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정치적인 세상을 둘러봐도 그렇습니다. 사회적인 것도 문제도 마찬가지고, 금융과 관련된 문제들도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사람이 다루기 어려운 그런 문제들이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의 정사는 점점 더 무너져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성경은 이것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세상을 완벽하게 통치하실 분이 오십니다. 한 나라뿐만 아니라 온 세상을 세계를 통치하시는 것입니다. 모든 각 나라가 그분의 통치 아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대륙이 그분의 통치 아래에 놓여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도대체 온 세상을 그렇게 통치하실 수 있는 분이 누구가 될 것인가라고 질문하게 됩니다. 이 세상 어떤 위대한 정치인도 온 세계는커녕 작은 한 나라조차도 통치하기를 어려워합니다. 우리가 감사하게도 이제 곧 장래 이 온 세상을 다스리실 그 통치자가 그리고 지금 현재 우리의 구주시라는 것입니다.

이 네 개의 호칭은 그분께서 통치자로서의 능력을 말해주는 호칭이었습니다. 그분께서는 이 신성을 가지고 계시고 또한 인성을 가지기 때문에 그분께서는 이 능력을 가지고 온 세상을 통치하는 온전한 통치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이제 이 네 개의 호칭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분께서는 놀라운 모사이십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땅의 정치인들은 사실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 무엇이 해답인지를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 예수께서는 이 모든 문제에 대한 완벽한 해답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가 주님께서 이 땅 가운데 계실 때에 사람들이 많은 질문을 그분에게로 가지고 온 것을 보게 됩니다.

사람들은 주님께 아주 이상한 질문을 종종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분께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기묘자요, 모사인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실 뿐만 아니라 그분께서는 모든 다른 힘들을 복종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때때로 사람들은 이 땅에 정부가 어떤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실행할 능력이 없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분께서는 전능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분의 행정에 대해서 거역하는 다른 힘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구주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에 그 모든 반대하는 세력들은 이제 잠잠하게 될 것입니다. 그 모든 대적들 위에 계시는 분이 바로 이 구주이십니다.

 

그리고 영존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사실 이 호칭은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주님께서 온전하게 경건하신 분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시편에서 아버지께서 그분의 자녀들을 긍휼히 여기신다는 표현을 보게 됩니다. 이 땅에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능력을 가지고 있을 때 굉장히 위험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이분께서는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시는 것입니다. 많은 역사 가운데 그런 독재자들, 폭군들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런 권력을 쟁취한 후 그 권력을 이용해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학대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그분의 많은 능력 가운데서 사람들에게 이제 긍휼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네 번째로 그것은 평강의 왕입니다. 주님께서는 이제 우주적인 평강을 이루어 내십니다. 이 평강이라는 단어는 성경에서 아주 아름다운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 이사야서에서 그 평강이라는 단어가 다른 성경에서보다 더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30회 이상에 걸쳐서 이사야에서 이 평강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것은 샬롬이라는 아름다운 히브리어 단어입니다. 이 살롬이라는 단어는 단지 전쟁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악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모든 선한 것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 단어입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모든 것이 조화롭게 존재하고 있는 것을 말해주는 단어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적절하게 존재하고 있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우주적으로 이러한 것들이 번성하는 풍요로운 시대를 우리는 얼마나 놀랍게 기대하고 있습니까? 아이들이 구원받게 됩니다. 그리고 나이 많으신 분들이 그들을 돌보게 됩니다. 다시 전쟁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이상 지진이나 쓰나미가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기근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병들이 다 낫게 됩니다. 이 땅에 평강이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왕이 보좌에 앉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한 구절에서만 주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네 개 호칭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이중적인 호칭입니다. 그분은 단지 모사일 뿐만 아니라 놀라운 모사입니다. 그분은 단지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그분은 단지 아버지이실 뿐만 아니라 영존하시는 아버지입니다. 자녀들을 돌보시는 그 돌봄과 그들을 긍휼히 여기시는 마음은 결코 끝나지 않는 것입니다. 왕이실 뿐만 아니라 평강의 왕이십니다. 장차 오실 이 놀라운 왕께서 지금 현재 우리의 구주시라는 것이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이것에 대해서 더 많은 것들이 있지만은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나온 한 구절에서 나온 네 개의 주님의 호칭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신약 성경에서 나온 네 개의 호칭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런데 이 호칭은 우리 주님의 네 개의 호칭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제 전혀 다른 한 그림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것은 사탄의 네 개의 그림입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이것은 한 구절에 나와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0장 1절부터 3절까지 읽겠습니다. 그리고 그 호칭은 2절에 나와 있습니다.

“1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 2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 일천 년 동안 결박하여 3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

 

우리가 읽은 이 구절은 또한 이사야에서 우리가 읽은 그 구절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기 기록된 천 년 동안 보좌에 앉아서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그 천 년 동안 이 땅 가운데서 평화가 있는 이유 중에 하나가 사탄이 결박되어 있는 것입니다.

20장 2절에서 이제 네 개의 사탄에 대한 호칭을 보겠습니다.

첫 번째가 용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가 옛 뱀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가 마귀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네 번째로 사탄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그 악한 현상 가운데 그 뒤에 아주 악독한 한 존재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될 필요가 있습니다. 단지 악할 뿐만 아니라 그것은 어떤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악할 뿐만 아니라 아주 공교한 지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때때로 어떤 사람들이 왜 하나님이 그 마귀를 창조하셨는지 질문하게 됩니다. 마귀가 만들어낸 이 많은 문제들을 보게 될 때 왜 하나님께서 그렇게 마귀를 만드셨는가 물어보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 아주 간단한 대답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귀를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실 천사를 만드셨습니다. 그 천사가 하나님이 뭘 해서가 아니라 그 자신이 선택해서 마귀가 된 것입니다. 천사가 반역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 반역자로서 수세기를 거쳐 하나님의 대적으로서 활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네 개의 호칭은 그의 여러 가지 각도로 그의 성격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계시록에서 그가 용이라고 나옵니다. 그는 일곱 개의 머리와, 열 개의 뿔을 가지고, 그리고 붉은 용이라고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일곱 개의 머리는 그가 가지고 있는 아주 놀라운 지혜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열 개의 뿔은 그가 가지고 있는 악한 힘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용이라는 것은 특별히 그 마귀의 분노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마귀는 하나님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차 있고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차 있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계시록에서 이 마귀의 분노가 특별히 이스라엘을 향하여 나타나게 됩니다. 그리고 장차 올 날에 이 마귀는 그의 분노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쏟아내는 날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 마귀가 하나님의 백성을 미워하는 그 미움의 절정의 날이 될 것입니다.

 

바로를 통해서 그의 적대감이 드러난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에스더서에서 하만을 통해서 그의 적대감이 나온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마귀는 분노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 용이 붉은 용이라고 또한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붉다라는 색깔이 그의 분노가 죽이고자 하는 사례를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 사탄에 대해서 너는 처음부터 거짓말쟁이오 살인한 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두 번째 표현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그에 대해서 옛 뱀이라고 나옵니다. 이 호칭이 나온 것은 성경의 마지막 장에서 세 번째에 위치한 장입니다. 이 옛뱀이라는 단어가 가르치고 있는 것은 성경의 처음 장에서 세 번째 장의 사건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창세기 3장에서 이 뱀은 에덴 동산으로 기어들어오게 됩니다. 그것은 그가 가지고 있는 간교함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는 이제 그 간교함을 가지고 하와와 이야기하게 됩니다. 그의 귀에 그 독이 가득한 말을 속삭이게 됩니다. 이 마귀가 현재에도 여전히 간교하게 그와 같이 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마귀가 할 수 있는 그 파괴력을 우리는 관과해서는 안 됩니다. 그는 아주 악한 그리고 교묘한 우리의 대적입니다.

우리는 베드로가 사탄이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아 두루 다닌다라는 것을 듣게 됩니다. 이 사탄은 항상 쉽게 먹을 수 있는 먹잇감을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영적인 보호막을 놓아버린다면 우리는 그러한 사탄에게 먹잇감으로 내어주게 되는 셈이 되는 것입니다.

그는 항상 우리에게 용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는 사자와 같이 다가오지도 않습니다. 때때로 옛뱀과 같이 광명의 천사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참으로 수세에 걸친 그의 전략을 그는 여전히 동일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바꾸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그 전략이 잘 먹히기 때문입니다. 맨 처음 하와에게 사용한 그의 거짓말을 지금 현재에도 우리에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그런 것들을 많이 말씀드릴 수 있지만은 여기서 또 한 다음 주제로 넘어가겠습니다.

 

다른 몇 가지를 빠르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그 옛뱀이 동산에 들어왔을 때 그는 먼저 누구에게 갔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을 만드시고 그리고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고 아담을 먼저 만드시고 그가 머리가 되게 하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자는 이브는 둘째로 만드신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이 머리입니다. 그리고 이브는 돕는 자입니다. 아담이 첫 번째 자고 이브는 두 번째입니다. 그런데 마귀가 슬며시 들어와서 그 하나님의 질서를 뒤바꿔 놓습니다. 이 뱀은 아담에게 그 머리에게 먼저 간 것이 아니라 이브에게 먼저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브에게 더 높은 자리를 거짓말로 약속하는 것입니다. 금지된 그 실과를 그녀가 먼저 따먹는 자가 됩니다.

마귀는 성별의 그 질서를 뒤바꿔버립니다. 그리고 이 마귀는 2023년 지금 똑같은 것을 하고 있습니다. 이 대적은 이 시대에 그의 모든 화력을 결혼을 파기하는 데 쏟고 있습니다. 그 남성에 대해서 여성에 대해서 사람들이 잘못 이해하도록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 남자와 여자에 대해서 공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역 모임에서도 이 남자 여자의 질서가 타협이 되고 맙니다. 스스로 성경을 읽고 있고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분들이 이 여자가 머리를 가림으로써 나타낸 질서를 따르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 마귀의 거짓말로 말미암아 타락하고 뒤로 타협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옛뱀이 가지고 있는 독에 대해서 주의해야 됩니다. 우리는 이 마귀가 그 에덴 동산을 찾아왔을 때 그는 아주 온화하게 다가온 것을 보게 됩니다. 이 에덴동산에 들어와서 이 동산은 보기도 싫다라고 하면서 들어온 것이 아닙니다. 그냥 그 동산에 들어와서 내가 이 동산을 파괴시키러 왔다 이렇게 하면서 온 것이 아닙니다. 내가 이것을 다 망쳐버리겠다 이러면서 들어온 것이 아닙니다. 아주 그냥 멋진 사람처럼 들어왔습니다. 당신 같은 멋진 그런 여인은 이것보다 더 좋은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당신이 믿고 있는 그런 것들은 당신을 너무 제한하고 있어요. 아주 거기서 자유롭게 놓으면 놓이면 아주 더 좋은 사람이 될 것입니다. 당신과 같이 멋진 여인은 이것보다 더 나은 대접을 받아야 됩니다. 그리고 그 여자 하와는 그 마귀의 아첨을 듣고 그가 가지고 있는 그 독을 못 본 것입니다. 그리고 마귀가 지금도 우리에게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우리에게 내가 이 지역 모임을 파괴하겠다 이러면서 오지 않습니다. 나는 너의 결혼을 파괴시키겠다 이렇게 오지 않습니다.

항상 마귀는 이렇게 옵니다. 지금 당신은 결혼이 좀 어렵지 않습니까? 당신의 남편은 당신에게 친절하게 대하지 않고 있잖아요. 당신은 이것보다 더 좋은 대접을 받아야 됩니다. 여기 다른 남자가 당신을 더 잘해주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결혼에 대해서 말한 것에 대해서 그렇게 신경 쓰지 마세요. 당신을 먼저 생각하십시오. 그래서 그 사람을 데리고 그의 만족을 위해서 다른 결혼 외의 관계로 인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이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마귀는 그가 그 분노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는 아주 교묘한 계략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 호칭이 마귀입니다. 그것은 거짓으로 송사하는 자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참으로 마귀는 송사하는 자입니다. 그는 항상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서 모함하고, 신자들에 대해서 모함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감사하는 것은 마귀는 항상 우리에 대해서 송사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듣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 마귀가 송사하는 모든 송사에 대해서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가 대답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네 번째가 사탄이라는 호칭입니다. 그것은 대적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대문자 A를 가지고 있는 큰 대적입니다. 그는 하나님과 관련된 것이면 무엇이든지 대적하는 그런 존재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대적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에 대해서 중상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에 대해서 모함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모임에 대해서 그는 해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이렇게 다 말했습니다. “우리가 그의 궤계를 모르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심각한 대적에 대해서 깨어 있도록 인도하시기를 바라게 됩니다.

 

이제 빠르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다시 한 번 네 명의 여성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마태복음 1장 21절입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다시 한 번 마태복음 1장 1절도 읽도록 하겠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왜냐하면 1장 1절에 우리는 주 예수의 네 개의 이름을 보고 있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아브라함의 자손, 다윗의 자손 네 개입니다. 예수로서 그분은 사람이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로서 그분은 메시아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여기에 다윗의 자손 아브라함의 자손이 더 붙여져 있습니까? 그리고 우리는 왜 이렇게 순서를 바꿔서 기록했는지 궁금하실 것입니다. 영어 성경에는 다윗의 자손이 먼저 나와 있습니다. 이것은 시간 순서로 기록된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기원전 2천년 전의 사람입니다. 다윗은 기원전 천년 전의 사람입니다. 그리고 아담은 기원전 4천년 전의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아담에게 여자의 후손이 올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4천 년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기원전 2천년 전에 아브라함이 또한 약속을 받습니다. 그리고 기원전 천년 전에 다윗이 약속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때가 차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 영어 성경과 같이 다윗이 먼저 아브라함보다 먼저 기록되어 있습니까? 다윗의 자손은 누구입니까? 그 왕좌에 앉은 솔로몬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은 누구입니까? 아브라함의 아들은 이삭입니다. 이삭은 희생 제사로 드려진 아들입니다. 그분은 그래서 다윗의 아들이라고 말씀되고 있습니다. 그분이 진정한 솔로몬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입니다.

우리는 마태복음 15장에서 솔로몬보다 더 큰 이로 우리 주님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마태복음 16장부터 28장까지는 그분이 이삭보다 더 큰 이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그분은 그 보좌에 앉으신 위대한 왕으로 먼저 제시되고, 그리고 마태복음 후반에서는 그분이 참 이삭으로서 십자가로 가신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에서는 1장부터 15장까지는 다윗의 아들로서 그분의 왕이 되심을 말씀하고 있고, 마태복음 후반부 16장부터 28장까지는 다윗의 아브라함의 아들로서 이삭으로 그분이 십자가로 가신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죄에서 구속받은 백성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이것과 관련돼서 4명의 여자가 있습니다. 2절부터 6절까지 4명의 여자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가 다말이고 두 번째가 라합입니다. 세 번째가 룻이며 네 번째가 우리아의 아내로 언급된 밧세바입니다. 왜 이 네 명의 여자가 우리 주님의 계보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까? 이 네 명의 여자 모두 아주 특별한 그런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를 생각하게 될 때에 우리는 구약의 위대한 여인들이 그 안에 기록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이 됩니다.

예를 들어서 사라, 리브가, 드보라, 한나 이런 여인들은 어떻습니까? 이들 여인들이 구약에 훌륭한 4명의 여인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아니라 다른 네 명의 이름입니다. 왜? 이 네 여인들이 여기 들어와 있습니까? 이것이 바로 우리가 21절에서 읽은 것처럼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라는 것을 설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네 명의 여인들은 각각 그들의 인생 가운데서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다말에 대해서 전체 이야기를 읽을 수는 없지만 창세기 38장에서 그는 속임을 당한 여인이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라합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는 굉장히 큰 위험 가운데 살고 있었던 여인이었습니다. 룻에 대해서는 이방 여인이었습니다. 모압 여인이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이제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는 더럽혀진 여인입니다. 하지만 이런 속임 또는 속임을 당한 또한 위험 가운데 있는 이방 여인인 그리고 더럽혀진 이러한 여인들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역시 우리도 하나님의 복 가운데로 은혜 가운데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역시 이 네 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속임을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위험 가운데 있었던 사람입니다. 타락한 인류의 자손으로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더럽혀진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우리는 이제 왕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 네 여인을 은혜 가운데로 들어오게 한 것이 동일하게 우리에게도 은혜로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단지 죄인일 뿐만 아니라 이방 죄인이었습니다. 다말과 라합은 가난한 여인이었습니다. 룻은 모압 여인이었습니다. 우리가 밧세바에 대해서는 우리아의 아내라고 되어 있는데 그것은 그는 헷족속이었습니다. 이것은 이 네 명의 여인이 죄인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말해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방인에게 베푼 하나님의 은혜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구원하신 것에 대해서 우리는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3 더하기 1을 또 말씀드리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제가 여기 밧세바의 이름을 말하였지만 마태복음 1장에서 밧세바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그냥 헷족속 우리아의 아내라고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우리는 여기서 3 더하기 1을 보게 됩니다. 그의 이름이 기록된 3명의 여인과 그의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한 명의 여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또한 기억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이 마태복음 1장에 이 네 명의 여인이 있는 것뿐만 아니라 다섯 번째 여인이 마리아입니다. 동정녀로 주님을 낳은 그 여인입니다.

 

이제 21절을 다시 한번 상고해 보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그것이 연결돼서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 세 가지 중에 하나는 마리아에게 한 것입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마리아가 한 일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예수님 한 일이 또한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셉이 한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름을 예수라고”

그리고 세 번째로 마리아가 할 수 없었던 일 그리고 요셉이 할 수 없었던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주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우리는 죄사함을 받은 그 주님의 백성들 가운데 지금 우리가 있다는 것에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