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Recent Post

theWord Bible Software

Category

 명령에 따른 걸음걸이

여러분 모두 안녕하십니까? 오늘 이 시간에 성경의 네 번째 책을 또 네 번째로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질서대로 지금 행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교제된 말씀을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민수기 9장과 10장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9장 15-18절까지 읽도록 하겠습니다.

민수기 9장 15절입니다.

“성막을 세운 날에 구름이 성막 곧 증거막을 덮었고 저녁이 되면 성막 위에 불 모양 같은 것이 나타나서 아침까지 이르렀으되 항상 그러하여 낮에는 구름이 그것을 덮었고 밤이면 불 모양이 있었는데 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르는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곧 진행하였고 구름이 머무는 곳에 이스라엘 자손이 진을 쳤으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을 좇아 진행하였고 여호와의 명을 좇아 진을 쳤으며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동안에는 그들이 유진하였고”

 

그리고 10장 1-11절까지입니다.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2 은나팔 둘을 만들되 쳐서 만들어서 그것으로 회중을 소집하며 진을 진행케 할 것이라 3 두 나팔을 불 때에는 온 회중이 회막문 앞에 모여서 네게로 나아올 것이요 4 하나만 불 때에는 이스라엘 천부장 된 족장들이 모여서 네게로 나아올 것이며 5 너희가 그것을 울려 불 때에는 동편 진들이 진행할 것이고 6 제 이차로 울려 불 때에는 남편 진들이 진행할 것이라 무릇 진행하려 할 때에는 나팔 소리를 울려 불 것이며 7 또 회중을 모을 때에도 나팔을 불 것이나 소리를 울려 불지 말 것이며 8 그 나팔은 아론의 자손인 제사장들이 불지니 이는 너희 대대에 영원한 율례니라 9 또 너희 땅에서 너희가 자기를 압박하는 대적을 치러 나갈 때에는 나팔을 울려 불지니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를 기억하고 너희를 너희 대적에게서 구원하리라 10 또 너희 희락의 날과 너희 정한 절기와 월삭에는 번제물의 위에와 화목제물의 위에 나팔을 불라 그로 말미암아 너희 하나님이 너희를 기억하리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저는 이 시간 윌리암 캐리에 대해서 잠깐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는 18세기에 영국 해안에서 출발해서 인디아에 복음을 전파하러 갔습니다. 윌리암 케리 선교사가 그가 마음에 품고 있었던 또 하나의 계획은, 그는 성경을 인디아의 여러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목적을 가지고 그가 살고 있는 마을에서 큰 인쇄소를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812년에 그는 캘커다의 복음을 전파하러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가 여행 중에 그의 친구인 윌리암 워 씨가 그 인쇄소 일을 맡아서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늦은 밤까지 일을 하고 있던 윌리암 워 씨는 뭔가 타는 냄새가 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인쇄소의 아래층에서 불이 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알람을 울렸고, 많은 사람들이 그 불을 끄러 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일렬로 길게 줄을 서서 그 물을 하나씩 떠가지고 옆으로 전달하면서 윌리암 워 씨까지 전달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속도가 너무 느리고 너무 늦었습니다. 그리고 그 인쇄소는 완전히 타버렸고, 전부 불타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윌리암 캐리 씨는 그 인쇄소에서 어떤 사전을 방대한 양의 사전을 인쇄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한 두 개의 문법책을 인쇄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여러 가지 언어에 성경을 인쇄하고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14개의 인디아어로 된 그러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리고 1200롤에 그 인쇄의 종이 롤이 타버리고 없어진 것입니다. 5만 5천 종이의 박스가 다 타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성경 사전에 대한 여러 인쇄물들이 다 타버린 것입니다. 그냥 연기로 다 사라져버리고 단지 재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화재 소식을 윌리암 캐리 씨에게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윌리암 캐리 씨는 아주 이상하게 그것에 대해서 반응하였습니다. 그것은 큰 손실이지만 우리가 그 수고를 다시 하는 것은 처음 할 때보다는 더 쉬운 일이 아니겠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비록 실망하였지만 절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윌리암 캐리 씨는 그의 일기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이것은 엄청난 어려움이다 그리고 앞에는 더 어려운 일들이 전망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전진해야 된다. 우리는 윌리암 캐리씨로부터 우리가 좋은 용기와 힘을 배우게 됩니다. 그는 아주 다른 방식으로 그 일에 대해서 반응하였습니다. 이거 손실은 너무나 커서 이제 다시 그냥 다 포기하고 돌아갈 때라고 말할 수도 있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정반대로 되어있습니다.

‘그 손실은 너무나 엄청나고 그래서 우리는 실망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전진한다. ‘

그것이 바로 비전을 가진 사람의 말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비전이 지금까지도 이 그리스도인들이 계속 명맥을 유지하면서 오게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모두에게도 오늘 밤 동일한 것입니다.

 

2023년도에 이 지역 모임의 진리를 붙잡고 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 어려움은 상당하고 그리고 그것은 더 증가될 것입니다. 이 세상 가운데서 그리스도인에 대해서 매년 계속해서 더욱 환영받지 못하는 것이 커져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 가운데서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그냥 여기서 멈추고 말 것입니까? 이제 돌아가겠습니까? 이제 은퇴하고 말 것입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친애하는 여러분 우리는 이 어려움이 너무나 크지만 우리는 반드시 전진해야 됩니다. 참으로 이 그리스도인들을 방해하는 것이 너무나 엄청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 전진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가운데 어떻게 전진할 것인지 질문하게 됩니다. 그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 우리는 지난 집회 가운데서 민수기의 1장부터 10장까지를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는 이 장에서 이 무리가 연합하여 어떻게 전진할 수 있는지를 배우게 됩니다. 1장과 2장에서는 이 전진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그 질서의 구조를 보았습니다. 그들은 그냥 조직되지 않은, 그냥 모인 무리들이 아닙니다. 모든 지파들이 하나님이 정하신 자리에 위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질서를 따라 하나님께서 조직하셨기 때문에 그들은 전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3장과 4장에서는 이 하나님의 백성의 청지기직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들이 움직일 때 그들은 성막을 함께 운반하게 됩니다. 그 성막을 함께 이동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것은 아주 책임이 큰 업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성막이 언제까지 지속되기를 바라고 계십니까?

첫 번째 세대는 그 성막을 운반하였고 그 일을 이제 두 번째 세대에게 넘겨줍니다. 두 번째 세대는 세 번째 세대에게 넘겨줍니다. 그리고 네 번째 세대까지 넘겨줍니다. 그 다음 세대에 넘겨줍니다. 세대는 계속 바뀌지만 그 성막은 동일하게 유지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제 두 번째 성막을 만들거나 새로운 다른 성막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한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그 성막을 넘겨줄 때 그들은 매우 조심해야 됩니다. 그 성막 그대로를 다음 세대에게 넘겨주는 것입니다. 어떤 보배로운 성막의 일부분 부속품이 빠진 채로 넘겨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그런 비슷한 동일한 상황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도행전에서 그 처음 세대에게 하나님께서 특별한 이 보배를 맡기신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 맡은 것을 또 그 다음 세대에 넘겨줄 것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 두 번째 세대는 세 번째 세대에게 넘겨줍니다. 세 번째 세대는 네 번째 세대에게 넘겨줍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세대까지 넘어온 것입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주님께서는 그 맡은 것을 우리가 계속해서 다음 세대에 그대로 넘겨주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가 이 청지기에게 충성되어 어느 하나도 빠짐없이 다음 세대에 넘겨주기를 원하게 됩니다.

그리고 5장과 6장에서는 이 전진하는 사람들의 그 깨끗함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들이 앞으로 가는 길을 밟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경건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 진 안에 죄가 있다면 그 하나님의 백성들이 전진하는 것을 막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7장과 8장에서는 전진하는 사람들이 그들이 하는 희생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전진을 만드는 사람들은 항상 많은 희생을 동시에 치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 시간에는 전진을 하는 사람들의 걸음걸이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질문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전진을 한다면 어디로 향해 가겠는가? 언제 가야 될 것인가? 그리고 누가 갈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갈 것인가? 바로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9장과 10장에서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두 개의 특별한 신호를 통해서 앞으로 갈 것을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영어 성경이나 한국어 성경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생각이 되지만 10장에서 보면 “발행하다”, “떠나다”라는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는 표현이 7번 나오게 됩니다. 이 장은 앞으로 가는 것에 대해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장입니다.

그리고 잠시 하나님께서 주신 그 두 가지 신호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 전에 우선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9장 초반에 있는 것과 10장 후반부에 있는 그 중요한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두 개의 바운더리 안에 앞에 말씀드린 두 개의 신호가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9장 2절에서 “이스라엘 자손으로 유월절을 그 정기에 지키게 하라”는 말씀을 듣습니다.

그리고 10장 35-36절입니다. “궤가 떠날 때에는 모세가 가로되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들을 흩으시고 주를 미워하는 자로 주의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 하였고 궤가 쉴 때에는 가로되 여호와여 이스라엘 천만인에게로 돌아오소서 하였더라.”

그래서 9장 초반에는 유월절이 있고 10장 후반에는 모세의 기도가 있습니다. 유월절은 이 백성들이 어떻게 구원받았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애굽에서 건져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분명히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또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구원받았고 우리는 다시 그 길로 돌아가기를 원치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앞으로 가는 길을 가게 될 때에 우리는 온전히 하나님께 의지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10장의 마지막에는 하나님에 대한 기도로 마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가 바로 그리스도인의 전진을 위해서 필수적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를 통해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것을 올려드리게 됩니다.

 

그리고 앞에 말씀드린 두 개의 신호가 이 둘 사이에 놓여져 있습니다.

첫 번째가 구름으로 인한 신호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9장에서 찾아보게 됩니다. “구름이 이동할 때에 사람들은 이제 이동할 때가 되었다”라고 알게 됩니다. 이들은 바로 이 구름에 의해 통제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10장에서는 나팔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나팔은 부르는 신호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구름은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자신의 장막의 문을 통해 나와서 보는 것은 구름을 그들이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나팔은 그들이 귀로 듣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시야를 분명하게 해야 됩니다. 그리고 그 나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보는 사람들이고 또한 항상 듣는 사람들이 되어야 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영적인 이 감각을 계속 민감하게 하고 있어야 됩니다.

이 구름은 우리에게 섭리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나팔은 실제적인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구름을 움직이십니다. 그리고 사람이 나팔을 부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현 시대에도 마찬가지로 인도함을 받는 원리입니다. 우리가 인도함을 구할 때에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하나님께서 움직이시는 환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섭리를 보고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사람들의 입술로 통해 정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또한 인도함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가 사람들이 광야를 걸어가는데 그 걸음을 인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구름에 대해서 은혜와 영광에 대해서 잠깐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이 구름이 보호한다는 것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것은 단지 그냥 하늘에 있는 비구름이 아닙니다. 이것은 그냥 안개 낀 구름이 아닙니다. 그냥 사막에 어떤 안개가 피어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특별히 하나님께서 만드시는 구름입니다. 구름은 그 끝이 성막에 놓여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임재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 버섯 모양으로 구름이 피어나서 모든 진을 덮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장막을 친 몇 마일의 몇 수 킬로에 되는 그 거리를 큰 구름이 덮고 있는 것입니다.

사막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뜨거운 견딜 수 없는 태양 광선입니다. 여러분이 시내산에 그 광야에 가보게 된다면 여러분이 오늘 느낀 태양보다 더 뜨거운 빛을 느낄 것입니다.

이백 만이 넘는 사람들이 거기에는 노약자들이 어린아이들이 있는데 그들이 어떻게 그런 뜨거운 태양빛 아래에 견딜 수 있겠습니까? 참 인간적으로 말하기에 그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말한다면 그 많은 사람들을 광야에 데려간다는 것 자체가 그건 자살 행위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인간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하나님은 가능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임재의 구름이 그들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그 아름다운 하나님의 임재 구름 아래에서 그들은 낮 가운데 뜨거운 그런 열기를 피할 수 있는 것입니다.

광야 이 사막에는 또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낮에 완전히 뜨거운 햇빛 아래에 있었던 사막은 이제 밤이 되면 완전히 추운 곳으로 변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낮 동안 그들을 서늘하게 하였던 것이 이제 밤에는 동일한 하나님의 임재가 밤 동안에 그들을 만끽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제 점점 어두워질 때에 구름 기둥은 이제 불기둥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 구름의 빛이, 그 열기가 밤에 추운 것을 막아주는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들 사이에 임재하는 것을 의식한다는 것보다 더 놀라운 것은 없다는 것을 말씀을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임재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서늘하게 보호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가 마찬가지로 우리를 따뜻하게 보호하고 계십니다. 고대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임재가 충분한 것으로, 모든 환경에서 충분한 것으로 가르치신 것입니다. 낮이든지 밤이든지 하나님의 임재는 그들에게 충분한 보호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임재가 이 지역 모임의 삶 가운데서 항상 그와 같은 보호를 가져다주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우리는 때때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수가 많아야지 보호가 된다. 우리가 큰 모임이 된다면 그때 힘을 낼 것이다. 우리는 은사 있는 형제들이 있어야지 우리가 보호된다. 좋은 성경 교사가 있어야지 우리가 강하게 된다.’

하지만 친애하는 여러분, 그것은 완전히 잘못된 생각입니다. 우리는 물론 여기 성도님들이 많아지면 또한 좋은 교사가 많아지면 그것에 대해서 감사를 드립니다. 하지만 항상 기억해야 되는 것은 지역 모임의 힘과 지역 모임의 보호는 항상 주님의 백성들 사이에 임재하시는 주님의 자신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주님의 임재를 가볍게 생각하게 되는 어떠한 다른 방식으로 하지 않기를 바라게 됩니다.

이것이 구름이 보내고 있는 신호의 의미입니다.

 

토요일 집회에 말씀드린 것처럼 그들이 자신의 장막에서 나와서 그 문을 통해서 구름이 성막 위에 올라가는 것을 볼 때에 그들은 이제 움직일 때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구름이 올라갔을 때 이제 움직일 때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은 그러면 이제 어떤 지파가 먼저 움직일 것인가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그래서 나팔이 필요합니다.

이 은 나팔 두 개는 아주 흥미로운 그런 기구입니다. 먼저 이 나팔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이 나팔이 두 개의 나팔이 한 은 덩어리에서 만들어진 것을 듣게 됩니다. 그래서 이 은 나팔 두 개는 복수를 말하고 있지만 또한 하나로 연합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두 개의 은 나팔이지만 한 은덩어리로 만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은 나팔은 무엇입니까? 저는 우리가 들고 있는 이것으로 생각합니다. 우리가 그 다음 그 걸음을 뗄 때 어디로 가야 할지 정할 때에 우리는 바로 이 성경 말씀을 통해서 인도함을 받는 것입니다. 여기서 복수로 나와 있고 또 그것은 하나로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어떤 것입니까?

우리는 성경에 많은 복수가 나와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나팔이 두 개가 있지는 않지만 우리는 두 구약과 신약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두 권이 모두 필요합니다. 구약과 신약입니다. 이 은 나팔 둘이 원래는 한 덩어리로부터 만들어진 것처럼 이 구약과 신약은 놀랍게도 조화롭게 하나로 일치되고 있습니다. 그 두 개가 한 소리를 동일하게 만들어내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이 나팔의 고귀함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들은 순은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우리가 누가 이 성경에 값을 매길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여기에 온전한 순수한 은을 보고 있습니다. 시편에서는 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하나님의 말씀은 일곱 번 단련한 은과 같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그 가치에 대해서 과장해서 값을 많이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이것은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제가 이런 잠깐 다른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성경이 없었다면 우리의 인생은 과연 어떠한 삶일지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 바다 가운데 자그맣게 떠 있는 나무 널판같이 요동하는 사람들의 의견에 요동하는 그러한 인생이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 가운데 어떤 정해진 방향이 없는 그러한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가 무엇을 할지, 언제 해야 될지, 어디서 어떻게 해야 될지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또 다른 나팔이 있었다는 것을 짧은 시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다른 성경 부분에서 양각나팔이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아주 흥미로운 주제이고 또 하나의 집회를 해서 말씀드릴 만한 주제입니다. 이것은 은 나팔입니다. 그 양각 나팔은 소파라고 되어 있는데요 그것은 이렇게 굴곡이 집니다. 이것이 여리고 성을 무너뜨릴 때 이스라엘 백성이 분 나팔입니다.

그런데 이 은 나팔은 양각나팔과 같이 이렇게 휘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곱게 직선으로 만들어집니다. 이것은 직선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이 소리는 아주 수정과 같이 투명한 그 소리를 내게 됩니다. 이 양각나팔은 금속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은 뭔가 더 부드러운 소리를 내게 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분명하게 부는 소리를 혼동하지 않도록 이 은나팔은 분명한 소리를 내게 직선으로 만들어집니다.

우리도 역시 이 성경이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는 것에서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성경이 우리의 인생 가운데 필요한 것들을 정확하게 말하고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개인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사업 간에서도 그렇습니다. 결혼 생활에서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독신으로 살 때도 그렇습니다. 지역 모임에서도 필요합니다. 우리의 인생의 여러 측면에서 바로 이 성경의 분명한 가르침이 우리에게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나팔이 전하는 내용이 무엇인지를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제 이 나팔을 누가 부냐 그 문제를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읽은 구절에서 이 나팔을 부는 사람은 제사장이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성소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이 시대에도 하나님의 성소 가운데 같이 있어서 그가 이제 분명하게 은나팔을 불 수 있는 그런 제사장과 같은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것은 누구나 이 은나팔을 불도록 허용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한 사람이 말씀을 독점해서 전하는 것을 반대합니다. 왜냐하면 신약 성경이 바로 지역 모임 안에서 다른 원칙을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반대로 우리는 모든 사람이 다 말씀을 전한다고 가르치지도 않습니다. 어떤 때는 그냥 순서대로 돌아가면서 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돌아가면서 하는 것이 이 강단 말씀 사역이 아닙니다.

우리가 은사를 받은 것, 은사를 주심을 믿습니까? 모든 사람이 똑같은 은사를 받아서 순서대로 하는 것입니까? 그냥 어떤 분들은 그냥 순서대로 하면서 그냥 유익이 안 되는 그런 복음을 전하는 것을 볼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그냥 아무 은사가 없는 사람에게 말씀을 전하도록 하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단지 내 사촌이기 때문에 말씀을 전하라고 부탁해서는 안 됩니다. 그가 사촌이든지 아니든 간에 그가 은사가 없다면 그에게 강단을 내어줘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되는 것은 우리가 강단에서 전하는 은사가 없다면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다른 사역을 할 수 있는 은사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은나팔을 불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정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또한 이것을 통해서 여러 다른 내용을 나팔을 통해 알릴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 나팔이 불러질 때 이것은 모이라고 불린 것이라고 알게 됩니다. 온 회중이 이제 회막 앞에 모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이 나팔 소리가 경고로 작용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적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아차리게 모든 사람들이 이제 경계 태세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이 나팔을 전진의 신호로 사용합니다. 하지만 다른 상황 가운데 다른 신호로 이렇게 나팔을 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또한 이 말씀을 읽어가게 될 때에 또 다른 세 다른 경우에 이 답을 사용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이 시간에는 이 3가지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다른 상황에서 다른 신호를 보내게 됩니다. 그래서 제사장은 이 상황에서 어떤 신호를 보내는 것이 합당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만약에 어떠한 대적이 오고 있지도 않은데 이 경고의 나팔을 분다면 그것은 잘못된 신호인 것입니다. 그런데 알람을 울려야 되는 순간에 사람들을 모이는 나팔을 분다면 그들이 모여서 공격을 당하기 쉬운 상태로 만들어 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어떤 정확한 상황에 정확한 신호를 보낼 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때에 동일하게 그와 같은 원리를 따라야 됩니다. 말씀을 전할 때 많은 주제를 다룰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형제님은 어느 경우나 똑같은 내용을 주제를 가르칠 때가 있습니다. 예전에 들은 그 똑같은 소리를 또 계속해서 부는 것입니다. 지금 어떤 상황인지에 대한 감각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그 상황에 맞는 어떤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는 그러한 감각이 없는 것입니다. 나팔을 부는 사람은 항상 그 상황에 맞는 그 신호를 보낼 수 있는 감각이 있어야 됩니다.

 

참으로 이와 같이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우리는 이 구름의 신호라는 것과 나팔의 신호라는 두 가지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이 진을 행진하게 하는 나팔 소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성막을 중심으로 여러 진들이 동서남북으로 진친 것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 나팔을 부는 사람들은 동편에 있는 진이 움직일 때를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또 다른 때에 남편에 있는 사람들이 움직여야 될 때를 알고 그렇게 신호를 주게 됩니다. 그리고 이번에 세 번째로 서쪽에 있는 진이 움직일 때를 알고 그것을 부르고, 이제 그 사람들은 그것을 따라 움직이게 됩니다. 그리고 네 번째 신호로 또 한 서편에 있는 진을 움직이게 만듭니다. 그래서 눈으로 볼 수 있는 그 구름의 신호와 그뿐만 아니라 귀로 들을 수 있는 나팔 소리로 인해서 모든 진은 질서 있게 움직이게 됩니다. 그냥 무질서한 사람들의 무리가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신약 성경에서도 사도 바울은 이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인 지역교회에서 마치 이것과 같다고 말을 합니다.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라 질서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10장 후반에 가서 그들이 움직일 준비가 되었음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훈련받은 백성이었습니다. 그것이 1장과 2장입니다. 그리고 3장과 4장에서 그들은 부지런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5장과 6장에서 그들은 헌신된 사람들이었습니다. 7장과 8장에서 그들은 헌금을 하는 드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9장과 10장에서는 그들이 인도함을 받은 백성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이 5가지의 이러한 것들이 있을 때에 그들은 하나님을 향하여 전진하게 됩니다. 우리도 이와 같은 것들을 가지기를 원하게 됩니다.

60만 3550명의 그 많은 사람들이 이제 하나님을 향하여 전진할 준비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슬프게도 이 많은 수 중에 오직 두 사람만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됩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이 이 많은 수가 대다수가 실패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준 원리를 그들이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들어가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 집회를 마치면서 저는 이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9장에서 그들은 보고 있습니다. 10장에서 그들은 듣고 있습니다. 친애하는 신자 여러분, 우리도 그래야 됩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는 구주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는 그 소리를 듣고 있어야 됩니다. 복음 말씀을 통해서 그 나팔소리로 우리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후에 구원의 여정을 가면서 우리는 인도의 나팔 소리를 듣습니다. 그리고 이제 곧 우리는 영광으로 부르는 또 그 나팔 소리를 듣게 될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는 이 지구상에서 다시 만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다시 이 마포에서 이렇게 집회를 갖는 특권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감사한 것은 반드시 우리는 하늘에서 다시 만날 날이 올 것입니다. 우리가 다시 이곳에서 다시 만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영광 가운데 다시 만날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친애하는 신자 여러분, 우리는 동일한 구주를 모시고 있습니다. 우리는 동일한 말씀을 읽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동일한 주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계속 따뜻하게 인도하시길 원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손이 계속적으로 바쁘게 그분을 위해서 수고하게 하시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생각이 그 부분으로 인해서 분명하게 정리되길 원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걸음걸이가 그분을 향해서 계속적으로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분의 영광을 위해서 전진하기를 원합니다. 우리 주님의 임재가 이 가운데 계시는 모든 지역 모임 안에 있을 거라 믿습니다. 우리 주님의 하늘에서 내리는 그 복된 이슬이 모든 지역 모임에 임하기를 원하게 됩니다. 그리고 며칠간에 걸쳐서 여러 집회에서 여러분께서 경청해 주신 것에 대해서 특별히 감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