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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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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드 메칼리스터

지난달에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의 생애를 통해 모든 미덕을 온전히 갖추셨음을 보았습니다. 성경에서 신자들은 거룩함, 인내, 사랑, 친절 및 기타 모든 고귀한 특성에서 더욱 덕을 쌓으라고 권면받습니다. 그분에게는 그런 성장이 전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이 땅에 계시는 동안 모든 은혜와 덕에서 완전하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며 다른 가르침을 준다고 주장하는 구절을 인용합니다. 그 중 하나는 그분께서 아들이실지라도 친히 고난받으신 일들로 말미암아 순종하기를 배우사”( 5:8)라는 구절입니다. 그들은 이 구절이 예수님께서 요셉과 마리아, 그리고 권위를 가진 다른 사람들에게 순종하는 법을 배워야 했음을 보여 준다고 말합니다.

 

우선, 히브리서 5:8절은 요셉과 마리아에 대한 순종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에 대한 순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관련된 원칙이 이 사례와 관련이 있으므로 이를 고려하겠습니다. 어린이가 순종을 배운다고 말할 때는 순종하는 방법을 몰라서 가르쳐야 하거나, 방법을 알지만 불순종하는 경향이 있어서 억제하는 법을 배워야 하거나, 방법을 알지만 경험을 통해 배워야 한다는 의미일 수 있습니다. 이 세 가지 모두 자녀 양육에 관여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경우에는 처음 두 가지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아버지나 지상의 모든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과 관련하여 어떤 가르침도 필요하지 않았고 불순종의 암시도 없었습니다. 그분은 경험으로 배운다는 의미에서만 순종을 배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이 땅에 오셔서 이전에 직면하지 않았던 상황에서 순종을 경험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따라서 나사렛으로 가셔서 그들[마리아와 요셉]에게 순종하셨으나”( 2:51)라는 말씀은 그분께서 복종하기 시작하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누가는 예수님이 어린 시절부터 그들에게 전적으로 순종하는, 항상 그랬던 것처럼 계속 그렇게 되셨다고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누가복음 2:52절은 예수님께서는 지혜와 키가 자라면서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호의를 입으셨더라라고 말합니다. 이 구절은 적어도 두 가지 방식으로 잘못 전달됩니다. 첫째, 어떤 사람들은 이 구절이 예수님이 항상 완전한 지혜를 가지고 계시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 진술에 동의하지 않으며 그분의 순종에 대한 설명과 유사하다고 믿습니다. 지혜는 가르침과 경험을 통해 배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에게는 전자는 필요 없었고 누가는 후자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시는 동안 매일 삶의 경험이 늘어났고, 그에 따라 지혜도 필연적으로 따랐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분의 지혜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점점 더 분명해졌습니다.

 

둘째, 그들은 이 구절이 그가 항상 하나님께 완전히 호의적이지는 않았으며 이것이 그가 발전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 준다고 주장합니다. 다시 한 번, 우리는 이 생각과 강하게 다릅니다. 아버지께서는 아들의 성품의 모든 면과 그분이 행하신 모든 일에 대해 100% 이상 기뻐하셨습니다. 주 예수님은 매일 아버지께 기쁨을 드리는 일을 하셨습니다. 따라서 하루가 끝날 때마다 아버지께서 기뻐하실 일이 하루가 시작될 때보다 훨씬 더 많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분은 하나님의 호의가 증가했습니다. 질적인 면에서는 호의가 증가하지 않았지만 양적인 증가는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에 대한 호의가 증가했다는 것은 그분이 더 덕이 많아졌다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사람들이 그분의 합당한 성품과 행동에 대한 더 많은 증거를 목격하게 되어 그분에 대한 존경심이 지속적으로 증가했다는 것입니다.

 

현재 고려 중인 구절은 그분의 가 커졌다고 말합니다. 이 단어는 항상 육체적 키를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때때로 나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어떻게 이해하든, 그분은 나이가 들었고 육체적으로도 성장하셨다는 점에서 발달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기억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담은 창조된 순간부터 성인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는 어른처럼보였고, 지시를 받고, 말을 했습니다( 2:16,20,23). 복되신 우리 주님에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오실 방식에 대한 하나님의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예를 들어, 그분은 작은 아기로 오셨고, 태어나신 날부터 말을 시작하지 않으셨습니다(분명히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신체적으로나 언어 사용과 같은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할 만한 방식으로 발달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 그의 발달 단계는 항상 그 나이에 적합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예수님은 평범한 아이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분명해졌으며, 성전에서 유대인 교사들의 예수님에 대한 반응에서 그 사실이 강조되었습니다( 2:47).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그분의 위대하심을 점진적으로 깨닫게 하셨지만, 그 위대하심은 항상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분의 내재적 완전성과 그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높아지는 것은 서로 다른 것이므로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그분의 육체적 발달이 우리와 비슷했다는 사실 때문에 그분도 덕을 쌓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오류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아니요, 그분은 언제나 온전히 고결하셨습니다.

 

그분이 온전하게 되셨다”( 5:9)는 말씀은 그분이 불완전하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땅에서의 그분의 경험이 어떻게 그분을 우리의 대제사장으로서 기능하는 데 독특하게 적합하게 만들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완전하다는 말은 (그분의 대제사장 사역에) “완벽하게 적합하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그분의 성품이 어느 때라도 완전하지 못했음을 암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의 완전성은 다음 글에서 주님의 뜻에 따라 그분의 오염되지 않은 완전성을 살펴보기 시작할 때 매우 깊이 있게 다룰 것입니다.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