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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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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맥칼리스터

몇 달 동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묻히심과 부활을 생각한 후에 우리는 이제 다음 위대한 사건으로 넘어갑니다. 그분이 하늘로 승천하시고 그로 인한 결과입니다. 기자들이 그분의 승천에 대해 사용하는 용어를 관찰하는 것은 흥미롭습니다.

 

“올라가다”

사도행전 1:10에서 우리는 제자들이 “올라가실 때에 하늘을 우러러보더니”라고 읽습니다. 이것은 그분이 더 이상 그들과 함께 계시지 않고 가신다는 명백하지만 중요한 사실에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킵니다. 30년이 훨씬 넘도록 그분은 육체적으로 이 땅에 계셨습니다. 이 기간의 후반부 동안 그들은 끊임없이 그분과 함께 있었지만 더 이상은 아니었습니다. 이날부터 그들의 삶은 결코 예전 같지 않을 것입니다. 그분의 부활과 승천 사이의 40일 동안 그분은 오늘날을 위해 그들을 준비시키기 위해 많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올라가실 때에 하늘을 우러러보았다”는 내용을 읽으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그분의 마지막 모습을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무덤 옆에서 잠시 더 머뭇거리다가 흙으로 덮일 관을 마지막으로 한 번 보고 등을 돌리고 무거운 마음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하지만 "크게 기뻐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24:52) 그 일행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천사들의 기별에서 나온 기쁜 확신이 여전히 그들의 귀에 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하늘로 들어가심을 본 것처럼 그렇게 같은 방식으로 오시리라”( 1:11). 그리고 이것은 우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기쁨의 원천입니다. 그분이 가셨다는 사실 자체가 그분이 다시 오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공중으로 오십니다.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받아들여 내가 있는 곳, 거기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14:3). 그리고 그 후에 그분은 우리와 함께 이 땅에 오실 것입니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모든 성도들과 함께 오실 때에”(살전 3:13). 그분의 백성들과 이 세상은 확실히 그분의 마지막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데려가다"

사도행전 1장에서 우리는 그분의 승천과 관련하여 이 말씀을 네 번 읽지만, 네 번 중 세 번(2, 11, 22) 다른 곳에서 “받아들였다”(나중에 참조)로 번역된 문구입니다. 나머지 하나는 9절에서 찾을 수 있으며 승천과 관련된 유일한 경우입니다. “그분께서 그들이 보는 동안 들려 올라가시니 구름이 그분을 받아들여 그들이 보지 못하게 하더라. 신약성경에 나오는 대부분의 경우 "들어 올려진"으로 번역됩니다. W.E. 바인은 이 단어는 "일으켜 세우다, 들어 올리다, 들어올려진 것을 짊어지고 나르다" 또는 "어떤 것에 부착된 것을 떼어내다, 제거하다"를 의미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두 단어 모두 이 위대한 사건과 관련이 있습니다. 은혜와 겸손으로 이 죄 많은 땅에 살도록 정하신 그분은 세상에서 분리되어 올려지셨고 그 땅에서 들어 올려 옮겨지셨습니다. 여기에 전적으로 그분께 어울리는 출애굽이 있었습니다. 얼마나 위엄 있고 질서 정연한가요때때로 우리는 신자의 죽음과 그 죽음의 상황에 대해 들을 때 “잘 가셨네요”라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가장 좋은 길은 그분이 가신 길이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분이 오실 때 우리가 아직 살아 있다면, 이것이 우리가 갈 방법입니다: 들어 올려지고, 이 땅에 대한 우리의 애착에서 분리되고, 공중에서 그분을 만나고, 영원히 함께하기 위해, 그분에 의해 들어 올려질 것입니다.

 

“옮겨지다”

누가복음 24:51절에 다음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을 축복하실 때에 그분께서 그들을 떠나서 위로 들려 하늘로 들어가시니라.” “운반되다”라는 이 용어는 “짊어지다”를 의미하는 단어에서 파생되었으며, 항상 도움이 되는 W.E. 바인의 말을 다시 인용하면 "이 용어는 '사람을 더 높은 곳으로 인도하는 것'에 사용되며, 이 점에서 주님의 승천( 24:51)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이전 용어("데려가다")는 그분이 어디에서 데려가셨는지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끌지만, 이 구절은 그분이 도착하신 곳으로 우리의 생각을 이끌며, 그곳은 분명히 "더 높은 곳"입니다. 불과 몇 주 전만 해도 그분은 악한 손에 의해 수치스러운 십자가에 달리셨지만, 이제 그분은 영광스럽게 높이 들림받으셨습니다. 그분이 "하늘보다 더 높이 되셨느니라"( 7:26)고 생각하니 우리 마음에 얼마나 큰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분의 뜻에 대해서는 다음 달에 더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받아들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이 단어는 사도행전 1장에서 세 번이나 "영접되다"로 번역되었으며, 마가복음 16:19절에도 "주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신 뒤에 들려서 하늘로 들어가시고 하나님 오른쪽에 앉으시니라"는 구절에 사용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바인의 말을 인용하자면, 이 단어는 "자기에게 데려가다, 받아들이다"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분명히 그분이 하늘에 다시 도착했을 때 그분에게 주어진 영접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루살렘 시민들의 그분에 대한 태도와 얼마나 달랐습니까? 그들은 "그를 없애버리소서"라고 외쳤습니다( 19:15). 이제 땅의 거부는 하늘의 영접으로 응답되었습니다. 그분이 땅을 떠나신 것과 하늘에 도착하신 것 사이에는 얼마나 대조적인가요. 그분의 소수의 사람들이 그분을 배웅하기 위해 도시 외곽의 언덕에 서 있었지만, 그분이 집에 도착했을 때 얼마나 많은 회중이 그분을 열렬히 맞이했는지!

 

의심할 여지없이 하늘에 계신 모든 분이 그분의 영광스러운 귀환을 환영하셨지만, 다른 모든 분들보다 지극히 높으신 한 분, 그분을 더할 수 없는 기쁨과 즐거움으로 "자기에게로 데려가신" 그분의 아버지께서 계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의 기쁨을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바울의 장엄한 말을 인용하는 것 외에는 더 나은 방법이 없습니다. "논쟁의 여지가 없이 하나님의 성품의 신비는 위대하도다. 하나님께서 육체 안에 나타나시고 성령 안에서 의롭다 인정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이방인들에게 선포되시고 세상에서 사람들이 믿는 분이 되시고 들려서 영광으로 들어가셨느니라"(딤전 3:16).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