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Recent Post

theWord Bible Software

Category

기도

노시로 키요지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성경에 나오는 기도의 실제적인 예에 대해서 배우고자 합니다. 먼저 다니엘서를 열어주시기 바랍니다. 다니엘서 1 1~7절입니다.

유다 왕 여호야김이 위에 있은 지 삼 년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그것을 에워쌌더니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기구 얼마를 그의 손에 붙이시매 그가 그것을 가지고 시날 땅 자기 신의 묘에 이르러 그 신의 보고에 두었더라 왕이 환관장 아스부나스에게 명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왕족과 귀족의 몇 사람 곧 흠이 없고 아름다우며 모든 재주를 통달하며 지식이 구비하며 학문에 익숙하여 왕궁에 모실 만한 소년을 데려오게 하였고 그들에게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방언을 가르치게 하였고 또 왕이 지정하여 자기의 진미와 자기의 마시는 포도주에서 그들의 날마다 쓸 것을 주어 삼 년을 기르게 하였으니 이는 그 후에 그들로 왕의 앞에 모셔 서게 하려 함이었더라 그들 중에 유다 자손 곧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가 있었더니 환관장이 그들의 이름을 고쳐 다니엘은 벨드사살이라 하고 하나냐는 사드락이라 하고 미사엘은 메삭이라 하고 아사랴는 아벳느고라 하였더라

다니엘에 대해서 나타나 있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으로 데려감을 당했습니다. 오늘날 용어로 말하면 포로입니다. 느부갓네살은 우수한 사람들을 택해서 자기를 섬기게 했습니다. 느부갓네살은 자기를 섬기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든 바벨론의 풍습들을 익혀서 바벨론화시키려고 했습니다. 원래부터 다니엘은 재능이 있었습니다. 먼저 다니엘의 사상 즉 다니엘의 사고방식을 바꾸기 위해서 바벨론의 문학을 가르쳤습니다. 바벨론화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왕의 진미를 먹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름도 바꾸었습니다. 히브리인이라고 하는 사고를 없애려 했습니다. 왕의 진미 곧 바벨론 음식을 먹게 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바벨론 진미를 거절했습니다. 생각이 되는 것은 구약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증한 동물들의 음식을 먹으면 안되기 때문에 그것으로 자기를 더럽게 하지 않으려고 거절했습니다. 다니엘은 왕의 명령을 순종하지 않고 자기의 믿음을 지키려고 결심했습니다. 우리는 외국에 가면 외국인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절대로 바벨론 사람이 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놓여진 그 자리에 있어서도 충성스러웠습니다. 바벨론 왕에게 충성스럽게 섬겼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유대인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그러한 환경에서 이렇게 되는 것은 굉장한 것입니다. 우리들은 이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속한 자는 아닙니다. 세상에 여러 영향이 있지마는 우리가 하나님께 속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더 놀라운 것을 나타내는 것은 6장으로 가시게 되면 9절입니다. 이에 다리오 왕이 조서에 어인을 찍어 금령을 내니라

4절도 읽겠습니다. 이에 총리들과 방백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소할 틈을 얻고자 하였으나 능히 아무 틈, 아무 허물을 얻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그는 놓여진 그 자리에 있어서도 충성스러웠고 정치적으로나 그리고 자기가 하는 일에 남으로부터 고소를 당할만한 일들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함께 일하던 총리들과 방백들이 시샘을 했습니다. 시샘하는 사람들은 바벨론인인데 바벨론 사람도 아닌 사람이 총리직의 높은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그리고 결점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질투를 했습니다. 그래서 뭔가를 꾸몄습니다. 이제부터 30일 동안은 어떤 자에게도 구하면 안되고 왕에게만 구해야 된다는 법령을 세웠습니다. 왕이 이것을 받아들였습니다. 다니엘은 매일 세 번 예루살렘을 향해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무엇을 기도했겠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이 포로가 되어서 수치를 당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에 욕을 돌리는 것이 되기 때문에 빠른 회복을 다니엘은 기도했습니다. 다니엘은 피곤할 때라던지 남이 보던지 또는 30일 동안 구하면 안된다는 법령이 정해졌든지 간에 하루에 세 번 기도했습니다.

저하고 다니엘은 비교할 수 없습니다. 저 같으면 피곤하면 피곤하다고 기도를 게을리하고 졸리면 졸음에 져서 기도를 게을리하고 남이 보고 있으면 기도를 머뭇거리기도 하지만 다니엘은 하루에 세 번씩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실망했을 때 그리고 어려워서 기도에 불충실 했을 때 다니엘을 모본으로 삼는다면 도움이 되겠습니다. 다니엘의 기도가 하나님께 닿았겠습니까? 언제 귀환이 되는 지 9장에 나타나 있습니다. 또 이방나라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기 전까지 어떻게 전세계를 경영하는지도 분명하게 가르침을 주님께로부터 받았습니다. 이 기도는 헛되지 않았습니다. 왕은 다니엘의 생활을 잘 보고 있었습니다. 사자굴에 갇혔을 때에 네가 늘 섬기는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실 것이라고 왕이 말했습니다. 왕은 다니엘이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라고 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사자굴에 들어갔지만 건짐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구약성경에 대한 기도의 실 예로서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을 열지 않겠습니다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해서 최초로 맞이하는 대적 아말렉과 싸운 적이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사우는 사람이기 때문에 싸우러 나갔습니다. 모세는 높은 곳에 가서 손을 들었기 때문에 손을 든 것은 기도의 자세를 나타내므로 기도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손을 들고 있을 때에는 이스라엘이 승리했습니다. 피곤해서 손이 내려오면 이스라엘이 졌습니다. 아론과 훌이 모세의 팔을 떠받쳤습니다. 그래서 승리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기도로 도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대단히 복된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가지고 영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을 돕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모임을 위해서 일하는 형제님들을 위해서 또는 말씀 때문에 초청받는 형제님들을 위해서 기도로 돕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기도는 형제자매들 상관없이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신약에도 기도의 실 예가 있기 때문에 성경을 펴겠습니다. 사도행전 12 1~4절입니다.

1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2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3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일이라

4 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사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내고자 하더라

여기서 헤롯이 모임을 핍박해서 요한의 형제인 야고보를 죽였습니다. 이 일이 유대인들에게 기쁨을 주었기 때문에 베드로까지도 처형하고자 감옥에 넣었습니다. 야고보는 죽임을 당했지만 베드로는 건짐을 받았다는 기사입니다. 야고보는 왜 빨리 죽임을 당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만 야고보의 형제 요한은 오래 살았습니다. 열 두 제자 가운데 가장 장수한 사람이 요한이었습니다. 요한이 90대에 요한계시록이 쓰여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형제 중 야고보는 일찍 죽임을 당하고 요한은 장수했습니다. 우리는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의 뜻입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야고보가 일찍 죽임을 당한 것은 모임에 기도를 가르치기 위해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야고보가 죽임을 당했기 때문에 모임은 열심히 기도했다고 생각합니다. 기도의 인도하심을 따라 야고보는 순교를 당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것은 엄청난 장면입니다. 이것은 정치적인 박해였습니다. 종교적인 박해도 있습니다만 예를 들면 주님에게 한 박해는 종교적인 박해가 컸습니다. 헤롯왕은 자기의 정치적인 입장을 가지기 위해서 정치적인 이유로 해서 야고보를 죽였습니다. 그래서 헤롯은 정치적인 힘을 펼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정치적인 이유로 야고보를 죽였기 때문에 5절에 보면 교회는 간절히 빌더라고 했습니다. 야고보와 베드로가 둘 다 죽임을 당한다면 모임은 큰 일일 것입니다. 그래서 모임은 간절한 기도로 인도를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베드로가 들어간 그 감옥은 도저히 도망갈 수 없도록 수비를 견고하게 했습니다. 군사들이 넷씩인 네 편으로 지키고 있고 다리에는 착고를 채워서 도망가지 못하게 했기 대문에 인간적으로는 탈출을 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적으로 만든 견고한 수비에서 베드로를 건져냈습니다. 베드로도 자기가 구출을 받고 나서도 그것이 사실인가 여길 정도로 의외였습니다. 풀려나서 모여 있는 무리에게로 갔습니다. 12절에 있습니다.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모여 기도하더라 여기서는 늘 모이고 있던 데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의 해석에 의하면 이 집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과 만찬을 행한 곳이 아닌가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기서는 모여 있는 사람들이 여성들 같은 인상을 받습니다.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이라고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를 맞으러 나온 사람은 계집아이였습니다. 베드로는 여기서 여자들만 모여 있기 때문에 형제들에게 전하라고 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자매님들이 베드로를 위해서 열심히 기도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모임의 기도였습니다. 사도행전 2장의 지역교회의 실행 가운데 기도하기를 이라는 말이 있는 것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그 가르침을 여기서 실행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는 모임의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가르침 받는 기사라고 생각합니다. 베드로가 건짐을 받았을뿐만 아니라 정치가 변했습니다. 혁명적인 정치력을 가지고 헤롯을 넘어뜨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21,22절을 읽겠습니다.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위에 앉아 백성을 효유한대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는 아니라 하거늘

헤롯의 누룩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헤롯의 누룩의 한 가지는 교만이라고 생각합니다.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에게 자기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보냈기 때문에 뽐내면서 연성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듣는 백성들은 신의 소리라고 해서 헤롯을 높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충으로, 즉 벌레로 헤롯을 제거했습니다. 헤롯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자기가 가로챘습니다. 이런 식으로 해서 하나님이 헤롯을 죽였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베드로를 구출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정치적인 방법이 아니라 충을 통해서 헤롯을 제거했습니다. 왜냐하면 주의 사자가 곧 치니라고 되어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헤롯을 제거한 것입니다. 기도로 정치를 바꾼 것입니다. 박해가 이제 사라졌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기도의 능력입니까?

우리는 금방 기도의 응답이 없으면 의심하기도 하고 또한 힘쓰지 않는 어리석은 자들입니다만 성경에 이와 같이 구약시대에서나 신약시대에서나 기도의 놀라움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제가 12장을 읽었을 때 저는 감동했습니다. 박해가 없어졌기 때문에 자유로워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흥왕해졌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이 평안한 가운데 살기를 원하십니다. 박해 가운데 고통스럽게 사는 것을 하나님이 원하시지는 않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께서는 마치 유언처럼 내가 너희에게 평강을 끼치노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바울이 서신을 쓸 때에는 항상 초두에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평강가운데 있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평강가운데서 주님을 섬기고 예배하는 것이 주님의 뜻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의 서신의 처음과 마지막을 보게 되면 늘 평강이 있기를 바란다는 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한복음 17장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기도를 열고자 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하는 것을 보통 주기도문이라고 하지만 실제는 요한복음 17장이 주님의 기도입니다. 17 1절입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맨 먼저 기도한 것은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때가 이르렀사오니 하는 것은 십자가의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이 말은 십자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2,3절을 통해서 십자가라는 것을 판단할 수 있으며 영생을 주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이리해서 십자가는 아버지 하나님의 영화 영광이기도 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화 영광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의와 하나님의 사랑이 완전히 나타났습니다. 여기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 속에 십자가가 성공하기를 하는 생각도 포함되어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우선 첫번째로 영화, 곧 영광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4절을 읽겠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버지가 주신 일을 이루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통하여 영화롭게 하였다고, 영광을 나타내었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는 아버지 하나님의 영화 곧 영광을 위해서였습니다. 죄인들을 사랑하셔서 생애를 보내셨습니다. 기적을 통해서 하나님의 존재와 자신이 구원의 주님이신 것을 증거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앞서는 법도 없고 뒤서는 법도 없었습니다. 완전했습니다.

5절에서 이전에 가졌던 영화 곧 영광을 주십시오라고 기도합니다.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위해서 사람으로 보내심을 받으셨던 것입니다. 창세 전에 가졌던 영화를 가지고 나를 영화롭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산다면 장래에 하나님의 영광에 참예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은 하나님 아버지를 위해서 기도하시고 주님은 당신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시고 이번에는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 말씀을 주셨다고 주님은 기도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을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라고 주님께서는 기도하셨습니다. 이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인들을 존귀하게 다루신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피차간에 하나님의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서로가 존귀하게 여길 것입니다. 소문을 이야기 할 때나 어떤 이야기를 들을 때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8절에 보면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저희에게 주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굉장히 복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데 있어서 말씀을 받았기 때문에 주저할 필요가 없습니다. 만약에 말씀이 있으면 일시적으로 탈선하더라도 말씀으로 돌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도 알고 예수 그리스도도 알 수가 있습니다. 많은 기독교계 교파들은 그 경전 가운데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은 그 말씀을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11절로 뛰어서 가시게 되면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들이 하나가 되기 위해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지역모임에 적용시켜서 말하면 주님의 이름으로 하나가 안되면 하나가 안됩니다. 피차간에 주님을 주로 인정하기 때문에 일치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존귀하신 것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즉 아버지의 권세로, 권위로 저희를 보존하옵소서 라고 기도했습니다.

다 교제드릴 수 없기 때문에 15절로 가시겠습니다.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우리는 기도할 때에 약하기도 하고 세상은 악합니다(여기서 악한 자라고 하는 것은 사단을 말합니다). 그 악한 자로부터 보존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들도 악한 자로부터 보호받게 해 달라고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실제로 사단이 있으며 싸움을 걸어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경험하는 경험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악한 자로부터 보존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17절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성별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말씀은 진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깨끗해지는 것은 역시 말씀으로 말미암습니다. 종교적인 어떤 의식 즉 물을 뿌린다든지 불로 통과한다든지 이런 종교적인 의식을 통해서는 깨끗하게 될 수 없습니다. 성별은 말씀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고 주님께 인도를 받아서 또 말씀을 통해서 보존을 받고 또 악한 자로부터 건짐을 받고 그리고 성별하게 되는 것입니다.

24절로 가보시겠습니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있고 싶다고 기도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내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합니다 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통해서 알게 되는 것은 주님 나라에 가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와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일을 우리가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 자신은 무한하신 분이십니다. 하늘에 가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 우리들도 기쁨으로 충만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드님을 사랑하시고 그 사랑하신 아드님이 우리를 사랑해서 그리고 그 영광을 보게 되므로 아마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모든 것이 되겠습니다만 그것을 맛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이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있도록 그리고 주님께서도 그기 있기를 원한다는 기도로 마무리 하고 있습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를 보고 이 기도를 우리들의 기도에 적용시킨다면 놀랍지 않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들을 아버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자라고 다루어 주신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런 식으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를 잠시 배웠습니다.

2008415 (김포모임)

'주옥같은 말씀들 > 노시로 , 이치가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리스도인들의 은사와 일  (0) 2008.04.30
지역교회의 문제들과 일치됨  (0) 2008.04.29
성경의 중심되신 예수 그리스도  (0) 2008.04.24
베드로를 훈련하신 주님  (0) 2008.04.23
바울의 믿음과 그 삶  (0) 2008.04.21
아브라함  (0) 2008.04.20
하나님의 사랑  (0) 2008.04.19
하나님의 사람  (0) 2008.04.18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