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Recent Post

theWord Bible Software

Category

거절된 그리스도

Robin McKeown

들머리

저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하는데 이틀 밤만 갖는 것을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로지 열중해서 온 주간을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밤 저는 매우 귀한 시편 2편을 상고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시편 2편 전체를 읽겠습니다.

시편 2:1-12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 기름 받은 자를 대적하며 우리가 그 맨 것을 끊고 그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도다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저희를 놀래어 이르시기를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네가 철장으로 저희를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관원들아 교훈을 받을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다 복이 있도다

 

시편 1편과의 관련

저는 오늘 밤 다시 여러분께 여러분의 성경을 펴 놓으시기를 요청드리고자 합니다. 때때로 여러분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집회에서 성경구절을 읽고서 읽은 성경 구절을 말하지 않는 사람들을 아실 것입니다. 저는 그런 것을 도무지 이해 못합니다. 우리는 시편 2편을 읽었습니다. 저는 시편 2편에 대해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가 그것(시편 2)을 말씀 드릴 때 여러분께서 시편 2펀에 대해 상당한 비침을 받으셨으면 합니다.

이것은 메시야적인 시편입니다. C. H. 스퍼전은 사실 시편 2편을 메시야 곧 왕에 대한 시편이라 불렀습니다. 지금 여러분께서는 지난밤에 제가 시편 1편과 2편이 밀접하게 연결되었다고 말씀 드린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사실 히브리어 성경에는 그것들(1-2)이 실제로 같이 함께 있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두 시편 사이의 연관을 한 두 가지 말씀 드리겠습니다. 시편 1편은 우리에게 완전한 사람을 나타냅니다. 그것이 3개 구절입니다. 저는 지난 저녁에 엄밀히 말해서 시편 처음 3개 구절은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 자체는 우리들이 어제 밤에 살펴본 우리들에 대한 실제적인 적용을 나타냅니다.

만일 시편 1편 처음 구절들이 그리스도가 완전한 사람이신 것을 나타낸다면 2편은 그리스도를 거절된 분으로 나타냅니다. 1편에서는 율법(말씀)이 강조되었습니다. 여러분께서는 1 2절에서 그의 즐거움이 여호와의 율법에 있는 것을 우리가 보았음을 아실 것입니다. 시편 2편은 예언에 관한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는 때때로 구약성경이 이와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는 것을 아십니다. 그것은 율법과 예언입니다.

요한복음 1 45절에서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았을 때 그는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여러분께서 시편 1편은 복 있는(Blessed)이라는 말로 시작되는 것을 다시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시편 2편은 복이 있도다(blessed)로 끝나는 것을 주목하십시오. 그래서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이 두 시편을 하나로 취급합니다. 복 있는(blessed)으로 시작해서 복이 있도다(blessed)로 끝납니다.

시편 1편 처음 구절들은 우리들에게 그리스도의 도덕적 영광을 나타냅니다. 시편 2편은 그리스도의 제왕적 영광을 나타냅니다. 그의 왕다운 그리고 그의 왕족적인 (영광을 말입니다.). 크게 봐서 시편 1편은 인성(人性)가운데 계신 그리스도를 나타냅니다. 시편 2편은 신성(神性) 가운데 계신 그리스도를 나타냅니다.

 

신약에 인용

그런데 매우 흥미롭고 매우 의미심장하게도 시편 둘째 편은 신약에 일곱 번 인용되었습니다. 그리고 인용들의 각각은 시편들과 그리스도에 관계됩니다. 그것이 우리가 메시야적인 시편이라고 그렇게 확신하는 이유입니다. 그것은 사도행전 4 25-26절과 13 33절에 두 번 인용됩니다. 4 25-26절에서는 십자가에 못 박힘 가운데 계신 그리스도의 고난과 연관됩니다. 사실 4 25절에서 우리는 이 시편(2)의 저작자에 대해서 압니다. 우리는 거기서 주의 종 다윗의 입으로 말미암은 것을 이해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시편을 다윗이 쓴 것으로 압니다. 이것은 흥미로운데 왜냐하면 시편 2편에서 다윗이 저자였다는 것을 우리는 듣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구약뿐 아니라 신약에 대한 하나님의 영감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그 다음에 사도행전 13 33절에서 다시 사도 바울이 이 시편에서 인용합니다. 그리고 여기서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연관됩니다. 이것은 히브리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두 번 인용이 됩니다. 1 5절과 5 5절인데 (그것이) 히브리서입니다. 그리고 매우 의미심장하게도 요한계시록 2 23절과 12 5절과 19 15절에서 세 번 인용됩니다. 저는 여러분 중에 많은 분들께서 기록하시는 것을 보니 매우 기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께서 (집으로) 돌아가셔서 이 참조들을 대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가지 명칭

이 시편(2)에서 주 예수님은 세 가지 명칭 곧 세 가지 메시야적인 명칭을 갖습니다. 2절에서 주님은 그 기름 받은 자로 불립니다. 여러분께서는 2절 끝에 그 기름 받은 자를 보십니다. 6절에서 여호와께서 나의 왕으로 부르십니다. 그리고 7절에서 여호와께서 내 아들이라 부르십니다. 그리고 12절에서 여호와께서 그 아들이라 부르십니다.

잠시 숨을 돌립시다. 여러분께서는 세 가지 메시야적인 명칭들을 보십니다. 기름 부음 받은 자는 메시야를 의미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세 가지 명칭이) 그리스도 그리고 왕 그리고 아들(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이 세 가지 명칭(이름)이 도전 받은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그들은 만일 네가 그리스도라면 그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만일 네가 이스라엘의 왕이라면 그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만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그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고 말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명칭들1을 몹시 미워(싫어)했습니다.

1 (1) 그리스도 : 15:32, 23:35 참조, (2) 이스라엘(유대인)의 왕 : 27:42, 15:32, 23:37(유대인의 왕) 참조, (3) 하나님의 아들 : 27:40 참조

 

땅에서

여러분을 위해 이 시편(2)을 네 부분으로 나누겠습니다. 이 시편에는 열두 구절이 있으며 각 세 절씩 네 부분이 있습니다. 첫 부분은 1절에서 3절까지입니다. 땅에서 열방(列邦)이 분노하고 있습니다. 4절에서 6절까지는 하늘에서 하나님께서 웃고 계십니다. 7절에서 9절까지는 아드님께서 선언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10절에서 12절까지는 시편 저자 또는 아마 우리는 성령께서 경고하고 계신다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구절들의 세부를 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먼저 말씀을 종 드리고자 합니다. 성경 예언에서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시편입니다. 우리는 오늘 밤 세상(에 있는 것들)을 둘러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정치적인 혼란 가운데 있는, 도덕적 혼란 가운데 있는, 사회적인 혼란 가운데 있는 소란(소동)을 보고자 합니다. 저는 이 세상에서 어린이를 키우고 계신 어머니들과 아버지들을 동정합니다.

세계의 정치적 주목의 초점이 중동에 있다는 것이 매우 흥미롭지 않습니까? 거의 2000년 동안 이스라엘은 그 땅(중동) 바깥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1948년 한 나라(국가)가 다시 되어야 했습니다. 그것은 지구상에 어떤 다른 나라에서도 결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열방들 가운데 흩어져 있는 그들에게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나 동일한 하나님께서 내가 너희들을 다시 모을 것이다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열방 바깥으로 그들(이스라엘)을 쫓아낼 것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휘파람을 불어2 열방 바깥으로 그들(이스라엘)을 부르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1948년에 한 나라(국가)가 다시 되었습니다.

2 10:8 참조.

그리고 말발굽 형국 아래 (있는데) 이스라엘 바로 주변 모든 국가들은 이스라엘에 적대적입니다. 사실 바로 이스라엘의 존재 (그 자체)가 거의 기적입니다. 길이 150마일( 209km) 그리고 너비 약 30마일( 48)인 작은 땅 그것은 조그마한 나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미래는 이스라엘과 함께 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발이 감람산에 닿게 돌아 오실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사람들은 그들의 발이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는 것을 놀라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에베레스트 산은 감람산 높이의 약 11배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산 높이에 관심을 두시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으뜸 산은 후지산이 아니라 감람산이 될 것입니다. 주 예수님께서 땅(지구)으로 돌아 오실 때 주님의 발은 감람산에 닿게(접촉하게) 될 것입니다.

스가랴 14 2절에서 하나님께서 내가 열국을 모아 예루살렘과 싸우게 하리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사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가깝습니다. 그러나 형제자매님들, 이 사건들(이 진행되는) 동안에 우리들은 이 땅에 있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교회를 위하여 공중에 오실 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잠깐 동안에(홀연히) 눈 깜짝일 동안에(순식간에) 일어날 것입니다. 그것은 매우 가까움이 틀림없습니다. 교회는 그 (7) 환난을 통과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 (7) 환난이 개시되기 전에 이 세상에서 취하여 감을 당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 휴거 후에 일어날 시편 2편에 있는 사건을 보려고 합니다.

 

열방 - 민족들 - 군왕들 - 관원들

처음 세 구절들로 갑시다. 저는 여러분께서 1절과 2절을 주목하시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여기에 있는) () 4중 연합을 봅니다. (악의) 4중 연합은 여호와와 그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합니다. 이제 1절을 보십시오. 어찌하여 열방(the nations)이 분노하며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악의) 4중 연합의 첫째 집단(요소)입니다. 민족들(the People)이 허사를 경영하는고라고 말합니다. 이 민족들은 두번째 집단(요소)을 나타냅니다. 이 민족들에 대해서는 우리가 인류에 대해서 포괄적(일반적)인 용어로 부르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제 2절을 보십시오. 우리는 세 번째 집단(요소)인 세상의 군왕들(the kings of the earth)을 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2관원들(the rulers)이 서로 꾀하여 에서 우리는 네 번째 집단(요소)을 봅니다.

이제 저는 여러분께서 1절에서 그것이 어떻게 시작되는지를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어찌하여 열방(the nations)이 분노하며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의문사 어찌하여는 다음 표현 민족들(the People)이 허사를 경영하는고까지 이릅니다. 형제자매님들, 이 처음 세 구절들이 우리들에게 마지막 시대에 있는 세상()의 열방들의 의도와 생각에 대한 참된 통찰력(이해력)을 제공합니다. 우리는 그것이 우리에게 어찌하여라고 묻는 이유를 질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여기서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는가 라고 묻습니다. 그 일어나는 분노는 잠시 동안일 것입니다.

 

어찌하여

(어찌하여) 민족들(the people)이 허사를 경영하는고라고 말합니다. 여러분께서는 그것이 허사(a vain thing)로 불리는 것을 아십니다. 이것은 그것이 쓸데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총체적으로 무의미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어찌하여라고 물으십니다. 어찌하여 그것(허사)을 하고 있느냐라고 (물으십니다). 그것은 무의미합니다. 그것은 가망 없습니다. 그것은 결실하지 못합니다.

1-3절에서 우리가 이미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우리는 세상에서 열방들이 분노하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때때로 우리는 땅에서 통제를 벗어나는 일들이 있는 것을 이상스럽게 여깁니다. 저는 여러분께 (7) 환난 때에 그것이 더 나빠질 것이라는 것을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합니까? 분노하다는 말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그것은 불안, 동요 심지어 격양된 불안의 의미를 수반합니다. 아주 잘 묘사하는 두 가지 비유(은유)가 있습니다.

전쟁 개시를 앞두고 말들이 함께 모여 있을 때 말들은 매우 심하게 동요됩니다. 말들은 들떠 있게 됩니다. 말들의 근육들이 긴장(굴곡)됩니다. 그리고 말들은 앞 발을 쳐들며 콧김을 내뿜습니다. 이것이 열방에 대한 그림 언어입니다. 그들은 불안합니다. 그들은 동요됩니다. 그들은 전쟁을 위해 준비됩니다.

두 번째 비유(은유)는 그것이 격동하는(raging) 바다라는 것입니다.

폭풍우가 일어날 때 그 물결은 불안하게 됩니다. 그 물결들은 거칠어 집니다. 그 물결들에 대해 해일(tsunami)이 어떤지를 가지고 설명할(예를 들) 필요가 있겠습니까? 거기에는 강력한 물결로 인해 불안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멈춤이 없습니다.

 

허사(虛事)

여기에 한 질문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이 이것을 하고 있는 이유를 참으로 물으십니다. 그것은 무의미합니다. 여러분께서는 그 이유를 아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여전히 그 보좌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여전히 통제하고 계십니다. 허사(a vain thing)라는 이 표현을 다시 보십시오. 허사가 무엇입니까? 잠시 참아 주시겠습니까? 제가 여러분께 잠깐 동안 이것을 설명 드리겠습니다. 저는 여러분께 그것(허사)이 얼마나 무의미한가를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더구나 해가 떠오르는 것을 멈추게 하려고 (시도)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께서 아시는 바와 같이 저는 바로 최근에 일본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홋카이도(北海道)에는 눈이 많습니다. 그리고 일본은 여러 면에서 매우 선진화된 나라입니다. 저는 한국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요점은 이것인데 곧 눈 내리는 것을 막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그것은 헛될 것입니다. 그것은 무의미할 것입니다. 심지어 저 어마어마한 해일(츠나미)이 왔을 때 조차도 그들(사람들)은 그것을 멈추게 할(막을) 수 없었습니다. 해가 지는 것을 막으려고 시도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자연법칙을 역행하려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바로 이와 같이 이 사람들(1-2)이 이루려고(성취하려고) 하는 것은 무의 미 하며 헛됩니다.

허사에 대해 상고합시다 우리는 2세상의 군왕들(the kings of the earth)로 갑니다. 형제자매님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예언적인 선언입니다. 세상의 군왕들(the kings of the earth)이라는 표현이 요한계시록에 93 나오는 것을 아십니까? 2세상의 군왕들이 (스스로)4 나서며 (세우며)를 주목하십시오.

3 1:5(땅의 임금들), 6:15(땅의 임금들), 16:14(천하 임금들), 17:2(땅의 임금들)

17:18(땅의 임금들), 18:3(땅의 왕들), 18:9(땅의 왕들), 19:19(땅의 임금들), 21:24(땅의 왕들)로 한글 개역 성경에는 나와 있음.

4 흠정역(KJV)에는 The kings of the earth set themselves(땅의 임금들이 스스로 서며(세우며)로 되어 있음.

스스로 세운다는 의미는 그들(왕들)의 지위를 (스스로) 취하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들은 그들의 신분을 (스스로) 취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전투 대형을 취한 상태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허사이며 무의미합니다. 그것은 전혀 하나님의 계획(경륜)을 능가하지 못할 것입니다.

 

서로 꾀하며

이 구절의 다음 표현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를 보십시오. 이 시편(2)에 있는 바로 중심적 착상(의미)은 우리가 이중 표현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2절에서 우리는 이중 표현 세상의 군왕들이 (스스로) 나서며(세우며)관원들이 함께 꾀하여를 봅니다. 그들이 함께 꾀하는 것을 주목하십시오. 시편 1 1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 관원들이 함께 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악인(경건치 않은 자)의 꾀입니다.

저는 1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라는 표현과 관련해서 아마 언급해야 하겠습니다. 경영하다(imagine)라는 말은 꾀하는(묵상하는:to meditate)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시편 1 2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와 또 다른 연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는 경건한 사람의 묵상과 경건치 않은 자(악인)가 허사를 묵상(경영)하고 있는 것을 주의하십시오.

이제 2관원들이 서로 꾀하여로 돌아 가십시오. 우리는 또 다른 이중 언급을 봅니다. 대적하여라는 이중 사용 곧 여호와(를 대적하여)5와 그 기름 받은 자를 대적하여를 주목하십시오. 형제자매님들, 여기서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여호와를 대적한다면 그들은 그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있을 수가 없으며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여호와를 대적한다면 여러분은 그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는 것입니다.

5 흠정역(KJV)에는 Against the LORD, and against his anointed(여호와를 대적하고 그 기름 받은 자를 대적하여)로 되어 있음.

그래서 이 사람들은 여호와와 그 기름 받은 자를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저로 하여금 요한복음 10 30절을 생각나게 합니다. 거기서 주 예수님께서는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만일 한편을 대적한다면 여러분은 또 다른 편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여호와와 그 기름 부음 받은 자의 하나됨을 지적합니다. 우리는 이 시편에서 흐르는 하나됨을 더 많이 볼 것입니다.

 

것과 결박

저는 여러분께서 다음에 일어나는 것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우리가 그 진행(상황)을 본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는 3절로 갑니다. 그들이 분노하고 있으며 그들이 허사를 경영하고 있으며 그들이 서로 꾀하고 있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이제 그들은 말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허사입니다. 여호와와 그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여 서로 꾀하는 것은 허사입니다. 3절에서 말하는 것을 행하는 것은 쓸데 없는 허사입니다.

우리라는 인칭 대명사의 이중 사용6을 주목하십시오. 우리가 누구입니까? 우리가 그 맨 것을 끊고 (우리가) 그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도다. 여기에 나오는 우리 2절의 군왕들과 서로 피하는 관원들입니다. 이것은 그 협의의 결과입니다. 그들은 그 결정에 도달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기정) 사실화 하기를 원합니다. 그들은 그들의 결정을 행동으로 옮기려고 합니다.

6 흠정역(KJV)에는 Let us break their bands asunder, And (let us) cast away their cords from us(우리가 그 맨 것을 끊고 (우리로부터 우리가) 그 결박을 벗어버리자).로 되어 있음

여기 3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에 그 결정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구절에서 두 번 (들의)(their)라는 인칭 대명사를 보는 것을 주의하십시오. 우리가 (들의) 맨 것이라는 표현을 접할 때 그것은 누구에 대한 언급입니까? 우리가 (들의) 결박이라는 것을 접할 때 누구에 대한 언급입니까?

여러분께서 2절 끝에 이르면 그것은 대답하기가 쉽습니다. 그것은 여호와와 그 기름 (부음) 받은 자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조차도 여호와와 그 기름(부음) 받은 자의 근접함(친밀)을 인정했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여호와와 그 기름(부음) 받은 자의 맨 것 그리고 여호와와 그 기름(부음) 받은 자의 결박(을 말합니다).

3절에 있는 이 것은 매우 심각한 선언입니다. 저는 이것이 (7)환난 초반에 대한 언급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마태복음 24 12절에서 주 예수님께서 이 시편 2편 시대에 대해 언급하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24 12절에서 주님께서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고 말씀 하십니다. 불법이 성하다는 것은 글자 그대로 불법이 증가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의 맨 것과 결박을 끊고 벗어 버리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맨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결박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원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이중 선언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우리가) (들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3절에 있다는 것을 주목하십시오. 여러분께서는 이것에 대한 최종적(궁극적)인 표현이 (7) 환난 시대에 있다는 것을 아십니다. 짐승의 우상이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에 세워질 때가 되는 것은 당연할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온 세상이 그 짐승에게 경배하도록 명령 받을 것입니다.

그 때에 그들이 하나님의 맨 것을 끊고 하나님의 결박을 벗어 버리는 것이 성취될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통제와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이 성취될 것입니다. 3절에 있는 말씀은 그(들의) 맨 것과 그(들의) 결박에 관련됩니다. 그것은 비유적인 말(언어)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수소 혹은 황소에 있는 맨 것과 결박의 의미에서 가져 왔습니다. 멍에 메운 가운데 일을 하게 하기 위해 수소 혹은 황소에 장치하는 맨 것과 결박을 말합니다.

 

나의 멍에를 메고

성경에서 제가 의미하는 바를 설명 드리겠습니다. 주 예수님은 마태복음 11 29절에서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 사람들(2)우리는 당신의 멍에가 필요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맨 것과 당신의 결박을 끊고 벗어버리기를 원하며 총체적으로 우리 자신을 자유롭게 하기를 원한다고(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 밖에 주 예수님께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라고 말씀 하신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 시기에서(2) 열방과 민족들과 군왕들과 관원들은 교만(자랑)으로 그들의 마음을 채우며 반항(반역)으로 그들의 마음을 채웁니다. 형제자매님들, 온유함으로 우리들의 마음을 채워야 합니다. 그리고 반항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해야 합니다.

존 트랩(john Trapp)이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는 성경학자입니다. 제가 그의 책에서 3(2)에 대해 읽은 것을 적으면 그는 이 맨 것과 결박이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의 법이기 때문에 그들이 그리스도의 법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존 트랩은 그리스도의 법이 거듭난 사람에게는 날개가 새에게 짐이 되지 않듯이 더 이상 짐이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말입니다.

작은 새와 그 날개에 대해서 생각합시다. 그 두 날개는 그 작은 새에게 짐이 아닙니다. 그 두 날개는 그 새에게 활력이 생기도록 합니다. 형제자매님들, 그리스도의 법은 우리로 하여금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도록 힘을 부여합니다. 그것은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거듭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오늘 밤 함께 모였는데 바로 이 말씀이 이 사람들이 거절하고 있는 바로 그 말씀인 것을 아십니까? 우리는(3) 하나님의 말씀의 맨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3) 하나님의 결박을 원하지 않습니다. (라고 그들은 말합니다). 3절에서 그들이 하기를 원하는 것은 허사(虛事)이며 총체적으로 무익합니다.

 

하늘에 계신 자가

자 이제 땅에서 하늘로 방향을 바꿉시다. 이 모든 것이 땅에서 진행되는 동안에 하늘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을 봅시다. 4-6절은 하늘에서 여호와께서 웃고 계십니다. 형제자매님들, 저는 여러분께서 오늘 밤에 참된 격려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때때로 우리는 이 세상을 내다볼 수 있으며 우리는 모든 것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의아해할 수 있습니다. 미래 장악(掌握)은 무엇입니까? 미래가 차지하는 것을 염려하지 마십시오. 누가 미래를 장악하고 계신지를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지금 누가 미래를 장악하고 계신지를 보려고 합니다. 4하늘에 (않아)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로 갑시다. 형제자매님들, 이것을 붙잡읍시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동요(動搖) 그리고 모든 경영(또는 묵상(默想) 그리고 모든 책략 그리고 모든 계획에 대해서 생각하십시오. 이것이 모두 허사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늘에 (앉아)계신 자가 웃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시고 웃고 계십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지배하고 계십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요동하지 않으시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있는 모든 일로 인하여 걱정하지 않으십니다. 하늘 보좌에는 당황함이 없습니다. 사실 여호와께서는 않아 계십니다. 거기에는 당황의 기색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않아 계실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보고 웃고 계십니다.

잠시 저와 함께 시편 37편으로 가십시다. 시편 37편으로 책장을 넘기십시오. 우리는 12-13절을 봅니다. 악인이 의인 치기를 꾀하고 향하여 그 이를 가는도다 주께서 저를 웃으시리니 그 날의 이름을 보심이로다. 여러분께서는 특히 13주께서 저를 웃으시리니를 주목하십시오. 왜 그렇습니까? 주님께서 그 날 (곧 보응의 날)의 이름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께서는 시편 2편에서 하늘에(않아) 계신 자(하나님)가 웃고 계신 것을 아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처음과 나중을 아시며 이 사람들의 완전히 망할 그날을 보실 수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2 4절에 있는 이중 표현을 주목하십시오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 위에 계십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보실 수 있는 것 그 이상의 무엇을 말합니다. 여러분께서 4절 끝 표현 (Adonai)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를 보시는데 (여기서) 또 다른 무엇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그것(명칭)이 여호와라는 명칭이 아닙니다. 그것이 히브리어 명칭 (Adonai)입니다. 그것은 여기서 더욱 의미심장합니다. 왜냐하면 히브리어 명칭 (Adonai)는 주권자 주님과 주인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주권자 그리고 주님 그리고 지배자(주인)(라는 명칭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주님께서 그들 모두를 비웃으시려고 하십니다. 사람들의 의도는 하나님의 장래 계획에 위협이 되지 않습니다. 사실 그것은 매우 의미 심장합니다.

하나님의 장래(미래) 계획은 사람들의 의도(의향)를 통해서 똑 같이 (하나님의 계획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성경적인 한 실례를 제공해드리겠습니다. 여러분께서는 바로가 모든 남자 아이는 (물에)빠져 죽게 하도록 명령했을 때를 기억하십니까? 그 일들이 일어났습니까?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여러분께서는 바로와 그 군대가 홍해에 빠져 (죽은) 일이 일어난 것을 아십니다.

하늘에 (않아) 계신 자가 웃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에는 더 심한 예상 외의 전개가 여전히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키우는 것을 돕도록 바로의 딸을 사용하십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도록 명하신 바로 그 사람입니다. 바로의 소란(동요)과 모든 그의 시도(試圖)는 무익했으며 소용 없었습니다.

 

때에

4절로 돌아 갑시다. 오히려 5절로 갑시다. 형제자매님들 5절 시작에서 우리는 그 때에라는 말을 봅니다. 이것은 시간(시대) 참조(언급)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지금 하늘에서 일들이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만일 제가 그 표현을 사용한다면 (그것은) 5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웃고 계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5절에서는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웃으시고 비웃으시는 데서 행동으로 옮기십니다.

5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저희를 놀래어 이르시기를을 주목하십시오. 이것은 흥미롭습니다. 하나님께서 군왕들과 관원들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분을 발하셔서 그들에게 말씀하고 계신 것을 주목하십시오. 그것은 격노라는 말이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웃음이 아니며 그것이 비웃음이 아니며 그것은 분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놀라게 하실 것이라는 것을 주목하십시오. 그 말(놀래어;vex)이 문자적으로 어렵게 하거나 겁나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다시 같은 구절 저희를 (심한 노여움으로) 놀래어(vex them In his sore displeasure)7를 주목하십시오. 다시 5절에 있는 이중 언급을 주목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분노 가운데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려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겁나게 하시고 심한 노여움으로 그들을 무서워하게 하십니다.

7 한글 개역 성경에는 없으나 흠정역(KJV)에는 in his sore displeasure(심한 노여움으로)가 들어 있음.

이제 저는 여러분께서 또 다른 어떤 것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시간(시대)에 대해서 언급된 5절 처음에 관해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시간 곧 하나님께서 땅(세상)에 있는 반역(거역)을 끝내시는 때가 도래합니다. 여러분께서는 주 예수님께서 자라시고 한 회당이 있던 나사렛에 가셨을 때를 기억하십니까? 주님께서 안식일 날 (성경을) 읽으시려고 일어 서셨습니다.

누가복음 4 16-20절에서 주님께서 성경을 닫으신 데()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구두점(句讀点)에서 그 성경을 읽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문장을 다 읽지 않으셨습니다. 만일 한 아이가 학교에서 선생님으로부터 그 책의 단락을 읽도록 요청 받았는데 그 아이가 문장 중간에서 멈추고 그 책을 덮었다면 그 선생님은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 예수님께서는 그 문장을 다 읽지 않으셨습니다. 주님께서 읽으시는 그 말씀은 주님의 은혜의 해(the acceptable year of the Lord) (맞게) 의도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성경을 덮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이 글(성경)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주님께서 그 문장 나머지를 읽으셨다면 문제가 되었겠지만(말입니다). 왜냐하면 그 문장 나머지는 하나님의 신원(伸寃)의 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셨다면(문장 나머지를 읽으셨다면)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실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신원(伸寃)의 해는 아직 이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신원의 해)은 시편 2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에 있습니다.

 

거룩한 시온에

이제 저는 여러분께서 또 다른 것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6절로 갑니다. 여러분께서는 1인칭 단수 (대명사) 6절에서 그리고 7절에서 두 번 그리고 다시 8절에서 보십니다. 이것은 여호와이십니다. 이제 6재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에 인칭 대명사 가 있습니다. 이 인칭 대명사 ()는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세상() 군왕들에게 분노하시는 이유입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통치를 위한 그들의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분노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6내가 나의 왕을‥‥세웠다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나의 왕)은 하나님의 선택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선택을 거절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세상()에 초림 하셨을 때 그들은 (주님을) 거절하여(주님께) 십자가를 지웠습니다. 내가 나의 왕을‥‥세웠다를 주목하십시오. 다비(Darby)씨는 내가 나의 왕을‥‥임명했다로 번역했습니다. 2절 처음 부분 세상의 군왕들이 (스스로) 나서며(세웠으며)로 돌아가 주목하십시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내가 나의 왕을‥‥세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계획을 기각하실 것이며 뒤엎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의 왕을 (보좌에) 앉히셔서 (눈에 안 띄게)무대 옆에서 기다리게 하셨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주님께서 승리하셔서 하늘로 가셨을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를 기억하십니까?

저는 여러분께서 또 다른 것 나의 왕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요한계시록 19 16절에서 주 예수님께서 왕으로 땅으로 다시 돌아오실 때 그 명칭이 만왕의 왕 그리고 만주의 주인 것을 기억하십시오 이제 (하나님께서)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셨습니다). 저는 여기를 여러분께서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이미 이루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아직 지상()으로 (다시)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산가운데에서는 그것은 이루어진 하나님의 선()입니다.

 

너는 아들이라

7-9절로 갑시다. 이제는 말씀하고 계신 분이 그 아드님인 것을 주목하십시오. (세상)에서 그들 곧 군왕과 관원들이 행하고 있었으며 말하고 있었음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들은 3절에서 말하는 자들입니다. 그 다음에 우리는 하늘로 옮깁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여호와께서 행하고 계시며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제 우리는 7-9절로 갑니다. (여기서는) 아드님께서 행하고 계시며 말씀하고 계십니다.

7절의 내가는 다시 또 다른 강조인데 이것은 여호와가 아닙니다. 이것은 아드님입니다.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이것이 매우 흥미롭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여기 하늘에 아드님께서 계시며 아드님께서 아버지를 인용하고 계십니다. 아드님께서 땅(세상)에 계셨을 때 아드님께서는 늘 아버지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이제 아드님께서는 하늘에 계시며 아드님께서 아버지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지금 아드님께서 여기 7절에서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께서는 이 표현이 신약성경 히브리서 1 5절과 5 5절 그리고 사도행전 13 33절에 (도합) 세 번 있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그와 같이 7절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제 7절이 아들 신분과 관련되는 것을 주목하십시오. 우리가 8절로 가면 그것은 후사(상속권)와 관련되는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의 후사(상속자)이십니다. 히브리서 1 2절은 (하나님이)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라고 말합니다.

 

내게 구하라

이와 같이 여기 이 구절들에서 주 예수님으로 우리에게 보이고 있는 것은 땅(세상)에 있는 사람들로 그들이 하고 있는 것이 헛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미 8절에서 아드님에게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라고 요청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여러분께서는 그들의 경영(또는 묵상)이 얼마나 허사(虛事)인지 아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미 그 아드님에게 모든 것(만유)을 주셨습니다. 그들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아드님을) 후사로 정하셨습니다. 열방을 유업으로 그리고 네 소유가 땅 끝까지를 주목하십시오.

이와 같이 8절에서 정말로 말하고 있는 것은 여호와께서 이미 아드님에게 열방을 주셨으며 이미 아드님에게 땅 끝까지 주셨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님들 그리고 사랑하는 자매님들, 여러분께서는 여러분이 얼마나 부한지 생각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여러분께서는 성경이 우리에 대해서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8:16)라고 말하는 것을 아십니까? 어제 밤에 우리가 주님(아드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교훈한 것이 놀랍습니까?

저는 여러분께서 시편 24 1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다. 여호와의 것이로다를 좀 서둘러서 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강력한 구절입니다. 이것은 그들의 경영(또는 묵상)이 허사(虛事)인 또 다른 이유입니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것이거기 충만한 것다 여호와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거기 충만한 것을 저는 땅(지구)의 모든 자원에 대한 언급이라고 봅니다.

저는 2004년에 (아프리카) 보츠와나(Botswana)에 있었습니다. 형제님들이 저에게 1967년 보츠와나 정부가 어마어마하게 산출이 많은 다이아몬드 광맥을 발견했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다이아몬드로 인한 막대한 재산입니다. 사막 모래 아래 있는 모든 석유 자원을 생각하십시오. 여러분께서는 그것들이 그리스도께 속한 것을 아십니까?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다시 시편 24 1절이 말하는 것 곧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를 주목하십시오. 다른 말로 하면 이것들 모두가 주님의 것입니다. 그리고 형제자매님들, 우리도 주님의 것이라는 이것 또한 선한 일()입니다. 저는 주님께서 저의 것이라는 것이 저에게 놀라운 일임을 주의해야 합니다.

 

소유가 끝까지

9절로 갑시다. 우리가 8절에서 여호와에 의해 주어진 수용 명령을 보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들까지 이르리로다라고 말씀 하십니다. 이제 문제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어떻게 수행하실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9절이 시작되는 데에 있습니다.

여러분께서는 그 아드님께서 여전히 네가 철장으로 저희를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라고 선언하고 계신 것을 기억하십니까? 이것은 여호와께서 그 아드님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철장으로 부수시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그 아드님에게 네가. 저희를 깨뜨릴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중 언급을 보십시오. 그리고 9네가 철장으로 저희를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를 보십시오. 형제자매님들, 저는 이것이 아마겟돈 전쟁에 관한 것이라는 것에 조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우리가 5절에서 (하나님이)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저희를 놀래게 하시는 것을 본 데()를 아실 것입니다.

저는 이 사건들이 큰 심판이 땅(세상)에 임할 때인 (7) 환난 기간에 있을 것이라는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 때에 우리는 하늘에 안전하게 있을 것임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 드립시다. 그러나 우리는 9절에서가 아니라 이미 압니다. 저는 우리가 참으로 아마겟돈 전쟁을 (들어서)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다시 제가 이중 언급이 있다고 말한 것을 주목하고자 합니다. 먼저 주님께서 그들을 깨뜨리시고 부수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여기서는 웃고 계시지 않으시며 비웃고 계시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이제 행동으로 옮기십니다.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께서 땅(세상)에 있는 반역을 뒤엎으시는 방법인 것입니다. 그리고 뒤엎음의 결과로 반역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아드님을 나의 왕으로 자리에 앉히실 것입니다.

 

얻으며

이제 서둘러 마지막 세 구절 10-12절로 갑시다 우리는 (이 세 구절이) 시편 저자의 경고이거나 어쩌면 시편 저자를 통한 성령의 경고인지도 모른다고 알고 있습니다. 10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가 어떻게 시작되는지를 주목하십시오. 다시 10세상의 관원들아 교훈을 받을지어다에 있는 이중 언급을 알아 보실 것입니다. 형제자매님들, 바로 동일한 두 그룹에 속한 사람들이 2절에도 있습니다. 세상의 군왕들과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합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경고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미) 말씀하신 것과 바로 앞 구절들에 있는 것들에 의거해서 경고하고 계시며 그들이 교훈을 받도록 설득하고 계십니다.

 

섬기고

11여호와를‥‥섬기고를 보십시오, 여러분께서는 그 의미하는 바를 아십니까? 그것은 그 맨 것을 받아 들이고 그 결박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떨며 즐거워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를 주목하십시오. 형제자매님들, 우리는 즐거워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주님을 두려워(경외)해야 합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들에게 슬픔을 유발(誘發)시킵니다.

 

입맞추라

12그 아들에게 입맞추라를 주목하십시오. 이것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왜냐하면 2절에서 그들이 여호와와 그 기름 (부음) 받은 자 곧 그 아드님을 대적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저는 여러분께서 11-12절에 대해 주의하시기를 바랍니다. 11절에서 그 아드님과 입맞춤 없이는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여기에 있는 그 아드님과 입맞춤의 의미는 그것이 감정(애정)의 의미라기 보다는 오히려 그 분을 공경하며 그 분에게 경의를 보이는 의미를 말합니다.

여호와를 섬기십시오. 그 아드님에게 입맞추십시오. 여러분께서는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10:30)를 아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아드님과 입맞춤 없이는 여호와를 섬길 수 없습니다. 그것은 가룟유다의 입맞춤 같은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또한 신하로서 충성을 맹세하는 의미입니다. 여러분께서는 요셉이 애굽 전국을 총리(總理)하는 자로 임명되었을 때를 아실 것입니다. 요셉이 그 수레를 타고 나타났을 때 무리가 소리를 지르기를 엎드리라( 41:43) 하였습니다. 그 아드님께 입맞추는 것은 엎드리는 것입니다.

(2) 서두 구절들에서 우리는 반역(모반)을 봅니다. 이 구절들을 마감함(끝냄)에서 우리는 회개를 봅니다. 이 시편이 어떻게 끝나는지를 주목하십시오. 우리가 마지막 문장으로 가기 전에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을 보십시오. 여러분을 위한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여러분께서 저에게 질문을 하는 것과 같이 저도 여러분께 질문 드리기를 원합니다.

12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그분이) 진노하심으로(Kiss the Son, lest he be angry)를 보십시오. 저는 이 인칭 대명사 그분(he)이 누구에 대해 언급하는지 여러분께 묻고자 합니다. 여러분께서는 금방 읽으시고 그것이 그 아드님에 대해 언급함이 틀림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그분이 곧 그 아들이) 진노하심으로(라고 말입니다). 글째요 저는 이것이 그것을 의미하는 바이어야 한다는 것이 독단적(교조적)이기를 바라지 않습니다만 그러나 저는 그렇다(아들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그것은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진노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는 포도원을 세주고 그 실과를 받으려고 자기 종들을 보낸 집 주인의 비유(21:33-41, 2:1-9, 20:9-16)를 기억하십니까? 그들(농부들)은 그 종들을 돌로 쳤으며 그 종들을 죽였습니다. 마침내 집 주인은 그들에게 그 아들을 보냈습니다. 농부들이 이는 상속자니라고 발했습니다. 시편 2편에도 그 상속자가 있습니다.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자 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이 아들을 그렇게 취급했기 때문에 그 주인이 매우 진노한 것을 기억하십니까?

그 아드님에게 입맞추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그분 곧 여호와 아버지께서 진노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것에 대해서 독단(교조)적이지 않습니다. 저는 그렇지 않으면 (그분 곧 여호와가) 진노하심이라는 표현을 보는데 있어서 마음이 어떻게 기우는지를 우리들에게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를 주목하십시오. 1편 마지막 구절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를 보십시오. 그리고 다음으로 그 진노가 급히 불 붙는 때를 주목하십시오, 형제자매님들, 아주 종종 우리는 성경에서 어떤 경고를 시간과 관련 지어 받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진노가 급속하게 도래하기 때문에 즉시 회개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이 시편이 끝나는 아름다운 방식에 주목하십시오. 제가 이미 시편 1편이 시작되는 방식이 2편 마지막에 있다고 여러분께 말씀 드린 대로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는 사람인 것을 여러분은 기억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2장 마지막으로 갑니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다 복이 있도다 사실 주님께서 택하시는 의지(trust)라는 말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이것은 종종 피난처(reruge)로 번역됩니다. 우리가 이 시편에서 언급된 모든 심판에 대해 생각한다면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한 피난처입니다. 저는 여러분 찬송가에 있는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그것은 아름다운 찬송가인데 만세 반석 열리니 내가 들어 갑니다.8입니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다 복이 있습니다.

8 Rock of Ages, cleft for me, Let me hide myself in Thee만세 반석이 나를 위해 갈라졌습니다. 나 자신이 그 안에 숨겠습니다.로 옮길 수 있음.

 

마무리

이것으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밤 이 모임에 아직 구원 받지 않으신 분들이 계신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경고를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만일 여러분께서 구원 받으시기를 원하신다면 지금이 그 시간()입니다. 머지않아 이 땅에 일어나려고 하는 사건들이 있습니다.

첫 번째 사건은 주님의 (공중에) 오심이 될 것입니다. 구원 받은 모든 사람들이 주님을 만나기 위해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준비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시편에 따라 여호와를 의지하는 모든 자들은 복이 있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오늘 밤 여러분의 죄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셔야 합니다. 제가 한국을 떠나기 전에 만일 귀한 영혼이 구원 받는 것에 대해 듣는다면 저는 매우 기를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여러분의 친절과 이렇게 잘 참석해주신데 대해 감사 드립니다. 저는 여러분의 경청하심에 매우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저는 아일랜드로 돌아 갈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의 하나님의 말씀과 관련되는 민감함에 대해 그들(아일랜드 성도들)에게 말할 것입니다. 여러 면에서 그렇게 빨리 신뢰하시니 저는 죄송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해주시기 바라며 나의 사랑하는 0형제님께 그의 전폭적인 도움과 통역에 대해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주옥같은 말씀들 > 로빈 매키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0) 2008.04.01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0) 2008.03.31
주의 말씀의 영향  (0) 2008.03.29
주의 만찬  (0) 2008.03.28
새벽 사슴 그리스도  (0) 2008.03.27
복 있는 사람  (0) 2008.03.26
하나님의 말씀  (0) 2008.03.25
하나님의 일  (0) 2008.03.25
posted by 징검 다리